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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ristol Myers Squibb, 이하 BMS)은 오랫동안 심혈관·종양·면역질환 분야에서 글로벌 리딩 파이프라인을 확보해온 제약사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3년간 BMS 전략은 한 가지 방향성을 더욱 선명히 띠기 시작했다. “혁신은 더 이상 특정 지역에서 시작해 확산되는 구조가 아니라, 과학이 생성되는 지점에서 곧바로 구현되는 네트워크형 구조”라는 원칙이다.
이 변화는 BMS가 2024년 말 조직 구조를 전면 개편하며 APAC 전담 조직을 신설한 조치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 조직 개편은 단순한 사내 인사 재정비가 아니라 글로벌 전략 좌표의 이동을 의미했다. 과거 북미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한국·일본·중국·인도·호주 등 APAC 전체가 하나의 Decision Center, 즉 의사결정 권한과 역할을 가진 시장으로 격상된 것이다.
그 중심에는 스티브 스기노(Steve Sugino)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석 총괄 부사장이 있다. 스기노 부사장은 인터뷰에서 BMS의 변화 이유, APAC 전략의 실체, 한국의 역할, AI 기반 R&D 구조, 혁신 생태계에 대한 관점을 명확하게 설명했다.
“혁신 생태계는 연구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스기노 부사장은 혁신을 단일 행위가 아닌 4단계 가치사슬(Value Chain)로 규정했다.
첫 번째는 신약 발굴(Discovery), 두 번째는 임상시험을 통한 개발(Development), 세 번째는 품질·제조·공급망(Manufacturing), 네 번째는 시장 진입과 실제 환자 처방으로 이어지는 상업화(Commercialization)다.
그는 “혁신은 한 단계라도 단절되면 완성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더라도 임상에서 경제성과 규제 허들은 다른 장벽을 만나고, 허가 후 상업적 성공이 실패하면 결국 기술은 사장된다. 즉, 혁신은 논문이나 특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환자에게 도달하는 순간 가치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BMS는 이 4요소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구조를 구축했고, 이 연결 지점에 APAC을 배치했다. 스기노 부사장은 “BMS 파이프라인의 60% 이상이 오픈 이노베이션 기반 기술이며, 과거처럼 한 국가가 전주기를 담당하는 시기는 끝났다”고 말했다.
연구는 어느 국가에서든 시작될 수 있고, 임상은 인구구조와 의사결정 환경이 맞는 국가에서 수행되며, 상업화는 환자 접근성이 높은 시장에서 최종 가치를 발휘한다는 설명이다.
“APAC은 더 이상 ‘신흥시장’이 아니다… 모든 축이 연결되는 성장 엔진”
BMS가 APAC 조직을 신설한 이유는 명확했다.
첫째, 임상시험 경쟁력이다. 그는 향후 글로벌 3상 임상시험 환자의 40%를 APAC에서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상시험 수행 속도, 환자 모집, 임상 결과의 완성도가 향후 신약허가·보험등재 과정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갖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APAC이 글로벌 R&D 허브가 됐다는 의미다.
둘째, 시장 구조 변화다. 한국·일본·중국은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면역질환·암 등 만성질환 치료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치료 패턴이 전문의 기반으로 운영되는 한국은 신약 도입 후 시장 확산 속도가 빠른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셋째, 혁신 인프라다. 스기노 부사장은 “한국은 이미 기술 기반 바이오텍이 글로벌 진입 문턱을 통과하고 있다”며, 오름테라퓨틱스와의 단백질 분해 기반 신약 후보물질 기술 이전 사례를 대표적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본질이 ‘기술이 아니라 검증된 과학’임을 거듭 강조했다.
“한국은 단순 시장이 아니라 전략 공간”
스기노 부사장은 올해에만 네 차례 한국을 찾았다. 그는 이를 단순 방문이 아니라 BMS 조직 운용 방향의 변화가 한국을 축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디지털 헬스, 의료 접근성, 전문 의료진 수준, 병원 네트워크 등 주요 지표에서 APAC 상위권에 위치한다.
특히 40여 개 기관에서 50건 이상의 글로벌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이 더 이상 R&D 외주국이 아니라 전략적 동반자 역할로 전환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그는 도전도 함께 언급했다. 한국의 신약 보험등재까지 평균 46개월이 걸리는 구조는 환자 접근성과 글로벌 상업 전략에 장애가 된다고 지적했다. 스기노 부사장은 “과학이 발전해도 규제가 따라오지 못하면 혁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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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는 국경 없어”… 한국·일본·미국 연결하는 BMS식 오픈 이노베이션
그가 APAC 중에서도 한국 비중을 강조한 이유는 지역별 생태계의 성숙도 차이 때문이다.
일본은 오노약품과의 오랜 공동개발 협력을 통해 옵디보·여보이라는 면역항암제 혁신을 이뤄냈다. 한국은 단백질 분해 기반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텍이 등장하며 글로벌 기술 수출 지형을 바꾸고 있다. 미국은 승인·자본·헬스케어 소비인구 측면에서 가장 큰 시장이지만, 혁신의 출발점이 반드시 미국일 필요는 없다.
스기노 부사장은 “혁신은 기술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며, BMS는 그 이동 경로를 연결하는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즉, APAC은 연구의 원천이자 임상시험 현장이며 상업화 시장까지 포함하는 ‘전주기형 혁신 지대’로 정의되고 있다.
BMS, AI 기반 연구개발 인프라 전면 전환
BMS가 AI를 바라보는 관점은 단순 자동화가 아니다. 스기노 부사장은 AI가 임상 설계, 환자 선별, 데이터 처리, 진단 예측, 실시간 리얼월드 증거 분석까지 확장되며 제약기업 운영 구조를 근본부터 재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비소세포폐암, 골수이형성증후군 진단에서 각각 5~10%, 10~15% 조기진단율 향상을 가져왔다는 점은 AI의 단순 보조를 넘어 치료 패러다임 변화를 입증하는 사례다.
AI는 BMS의 임상개발 기간을 단축시키고, 환자 선별과 후보물질 발굴에서 실패 비용을 줄이며, 허가 전략과 약가 협상 과정에서 데이터 기반 접근을 가능하게 만들면서 제약경제학적 전환점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2030년을 전환 기점으로, AI가 ‘연구 지원 기술’ 수준이 아니라 BMS 내부 운영체계 자체가 되는 구조를 뜻한다.
“한국 바이오텍은 이미 문턱을 넘었다…핵심은 데이터”
그는 한국 바이오텍이 글로벌 진입 과정에서 흔히 범하는 오해도 지적했다. 기술 소개나 파이프라인 규모가 아니라 명확한 작용기전(MoA), 임상적 검증, IP 전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플랫폼 기술이 세계 어디서나 검증될 수 있는 수준이라면, BMS는 과학적 타당성이 확인된 기술에 대해 지역 상관없이 협력을 고려할 수 있다고 명확히 말했다.
“느린 혁신은 의미 없다”
스기노 부사장은 기존 글로벌 제약산업이 ‘특허–연구–승인–판매’라는 직선형 구조였다면, 앞으로는 승인–상업화–리얼월드 데이터–재평가가 순환구조를 형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과정에서 규제 속도는 단순 행정 절차가 아니라 환자 생존권을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그는 한국이 빠른 임상시험과 높은 의료 접근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가·급여·도입 속도 측면에서 글로벌 선진국 대비 뒤처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곧 혁신의 속도를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스기노 부사장이 반복적으로 사용한 표현은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다. 이는 단순한 수사학이 아니라 실제로 BMS의 조직·영업·R&D 구조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APAC은 글로벌 전략 실행의 주변 시장이 아니라, 파이프라인 구축–임상 데이터 창출–환자 접근성 확대라는 세 가지 핵심축이 실현되는 중심 지대다.
이 지대의 출발점에 한국이 있다. 한국은 디지털 의료 인프라, 임상 경험, 환자 접근성, 고도화된 전문 인력의 4요소가 결합된 시장으로 평가되며, BMS는 이를 혁신 생태계의 구조적 기반으로 보고 있다.
BMS의 전략은 단순히 글로벌 제약사의 사업 확장 계획이 아니다. 이는 과학 기반 글로벌 혁신 생태계 구축, 즉 “연결의 구조”를 재조정하는 작업이다. 신약은 연구자에게서 출발하지만, 임상은 환자가 있는 지역에서 설계되고, 시장 가치는 규제와 보험이 결정하고, 최종적 혁신의 성패는 환자가 체감한다. BMS는 이 구조를 아태지역을 중심으로 재배치하고 있으며, 한국은 그 구조의 첫 관문이자 확장 플랫폼이다.
스기노 부사장은 “혁신은 속도이며, 속도는 구조이며, 구조는 지역이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APAC은 더 이상 글로벌 전략의 보조 축이 아니다. APAC이 중심이 될 경우, 혁신의 기회는 한국과 같은 기술 기반 국가에서 가장 먼저 발현된다. 제약 산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으며, 그 벡터는 이미 한국을 향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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