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시기 놓치지 않도록”…신속 약가 조정에 팔 걷어붙인 정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 6개월 걸리던 조정 절차 10일로 단축
복지부·식약처·심평원 협업…약가 협의 절차 대폭 간소화
국산화·자가치료 의약품 도입 등 장기 전략도 병행 추진
최윤수 기자 jjysc022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06-19 06:00   수정 2025.06.19 06:08

환율 급등에 따라 공급 차질이 반복되던 희귀의약품 시장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 기존 6개월 이상 걸리던 급여상한가 조정 절차가 10일 이내로 단축되면서, 환자 치료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공공조달 체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는 정부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이하 센터)의 협력 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한 것.

17일 센터는 식약처 출입 전문지 기자단과의 간담회를 통해 “환율 변동으로 인한 공급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공조달 희귀의약품을 중심으로 한 급여상한가 신속 조정 체계를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움직임은 실질적인 정책 변화로 이어졌다. 올해 1월 프랑스산 광견병 백신 ‘베로랍(Verorab)’에 첫 적용됐고, 현재는 저혈당 증후군 치료제 ‘아이벡스프로글리셈(Ivexproglycem)’이 조정 절차를 밟고 있다.

해외 의존도 높은 희귀약, 환율 민감성 커…“1억원 이상 손실 사례도 발생”

희귀의약품 대부분은 국내 생산 기반이 미비해 해외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환율 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문제는 이와 달리 급여상한가는 한 번 책정되면 고정되며, 조정이 필요할 경우 복지부, 심평원, 식약처 등 여러 기관의 검토를 거치는 복잡한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센터는 “최근 3년간 원·달러 환율이 20% 가까이 오르면서 수입가가 상승했지만, 상한가가 변하지 않아 센터가 감당해야 하는 손실이 상당했다”며 “일부 품목은 건당 1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예산의 한계로 특정 희귀약의 공급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상황이 반복됐고, 국내에 대체제가 없는 희귀질환 특성상 환자들이 치료 공백에 직접 노출되는 문제로 이어졌다.

“6개월 걸리던 조정, 이제 10일로”…복지부-식약처-심평원 협업체계 구축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센터는 최근 공공조달 희귀의약품에 한해 예외적 조정 절차를 마련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기존 수개월 이상 걸리던 절차를 생략하고 10일 이내 상한가 조정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센터는 “보건복지부, 식약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사전 협의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베로랍의 경우 신속 조정을 통해 수급 공백을 방지할 수 있었고, 현재는 아이벡스프로글리셈이 같은 절차를 밟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신속 조정 체계는 공공조달 품목 중 ▲국내 대체약이 없고 ▲치료 지연 시 환자 생명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으며 ▲환율 등 외부 요인에 따른 수입가 급등이 확인되는 경우에 적용된다.

기존에는 인상 조정은 평균 6~9개월 이상 소요된 반면, 인하는 매년 6월 1일자로 즉시 반영되어 공급기관의 재정 손실을 가중시키는 불균형 구조였다. 이번 조정 체계는 이 같은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하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치료 지연 막는 ‘시간과의 싸움’…환자 지원 프로그램·해외 연계도 병행

센터는 이번 조정 체계 외에도, 환자 보호를 위한 병행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약가 협상이 지연되는 품목에 대해 제약사와의 협업을 통해 무상 또는 실비 수준의 공급을 유도하는 ‘환자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특히 소아 희귀질환 치료제의 조기 보급을 위해 해외 공급망 연계 강화 및 사전조달 체계도 가동하고 있다.

자가치료용 의약품의 신속 도입 체계 역시 강화되고 있다. 이는 환자 맞춤형 치료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주로 만성 희귀질환 환자를 위한 자가 주사용제, 희귀 유전질환 치료제 등에 적용되고 있다. 향후 비대면 진료 확대와 맞물려 지속적으로 수요가 증가할 분야로 꼽힌다.

장기적으론 국산화·자급화 추진…“희귀약은 생명과 직결된 시간 싸움”

김영림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 원장은 “희귀의약품은 단순히 수급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치료 시점을 놓치지 않도록 신속한 약가 조정 체계를 구축한 것이 큰 의미”라고 평가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희귀의약품 원료 국산화 및 완제의약품 자급화도 추진할 계획”이라며, 국내 바이오 기업과의 기술 협력을 통해 희귀약 생산 기반을 단계적으로 확충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환율에 좌우되던 희귀의약품 조달 체계는 이제 ‘속도’와 ‘협업’을 키워드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정부와 공공기관, 민간이 유기적으로 대응하는 구조가 정착될 경우, 희귀질환 환자들의 치료 불연속성 문제 역시 눈에 띄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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