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된 펜플루라민, 소아 뇌전증 치료제로 기대
美 UCSF 연구팀 시험결과 지난달 ‘란셋’ 게재해
이덕규 기자 abcd@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0-01-13 12:51   수정 2020.01.14 10:23

펜플루라민은 한때 비만 치료제로 각광받았다가 심장 위험성 문제로 인해 시장에서 퇴출된 비운의 약물이다.

‘펜-펜’(fen-phen)이라는 약칭으로 통하면서 덱스펜플루라민과 병용하는 비만 치료제로 높인 인기를 누리다가 복용자들 가운데 일부에서 심장판막 이상이 발생함에 따라 지난 1997년 FDA에 의해 회수조치된 약물이 바로 펜플루라민이다.

그런데 이 펜플루라민이 중증 소아 뇌전증을 지칭하는 드라베 증후군(Dravet syndrome)에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요지의 연구결과가 공개되어 이 약물이 다시 한번 주목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플란시스코캠퍼스(UCSF) 아동병원의 조셉 설리번 교수 연구팀(신경의학‧소아의학)이 의학저널 ‘란셋’誌에 지난달 게재한 ‘드라베 증후군에서 발작 증상을 치료하는 데 펜플루라민 염산염이 나타낸 효과: 무작위 분류, 이중맹검법, 플라시보 대조시험’ 제목의 보고서가 바로 그것.

펜플루라민으로 치료를 진행한 드라베 증후군 환자그룹에서 발작건수가 5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요지이다.

드라베 증후군은 유아기에 나타나는 치료제 저항성 뇌전증의 한 유형으로 미국에서 매년 1만5,700여명의 유아들이 진단받고 있는 증상이다. 잦고 오랜 뇌전증과 발달지체, 언어장애, 수면곤란, 행동 및 건강상의 문제 등을 수반하는 특징을 나타낸다.

더욱이 드라베 증후군 환자들 가운데 10~15% 정도가 25세에 도달할 무렵 이전까지 뇌전증과 관련된 불규칙한 심장박동 또는 질식 등으로 인해 돌연사하고 있는 형편이다.

설리번 박사 연구팀은 2~18세, 평균연령 9세의 드라베 증후군 환자 119명을 충원한 후 임상 3상 시험을 진행했었다.

이 시험에는 현재 사용 중인 약물들로 치료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험자 충원 직전 월(月)에 평균 40회에 걸쳐 경련성 발작이 나타났던 환자들을 미국, 캐나다, 호주 및 유럽 각국에서 충원해 3개 그룹으로 무작위 분류한 후 착수됐다.

3개 그룹에는 현재 사용 중인 치료제들에 병행해 각각 펜플루라민 1일 0.7mg/kg 최대 1일 26mg, 펜플루라민 1일 0.2mg/kg 또는 플라시보를 복용토록 했다.

그 결과 펜플루라민 1일 0.7mg/kg 최대 1일 26mg을 복용한 그룹의 경우 플라시보 대조그룹에 비해 월 경련성 발작건수가 62% 낮게 나타난 데다 펜플루라민 1일 0.2mg을 복용한 그룹에서도 32% 낮은 수치를 보여 주목되게 했다.

평균 무발작 간격을 보면 펜플루라민 1일 0.7mg/kg 최대 1일 26mg 복용그룹에서 25일, 펜플루라민 1일 0.2mg/kg 복용그룹에서 15일, 플라시보 대조그룹에서 9일로 각각 집계됐다.

이와 함께 환자 부모들이 평가한 증상 개선도를 살펴보면 펜플루라민 1일 0.7mg/kg 최대 1일 26mg 복용그룹에서 55%(부모 40명 중 22명)가 “매우 개선됐다” 또는 “매우 크게 개선됐다”고 답한 가운데 펜플루라민 1일 0.2mg/kd 복용그룹에서는 41%(39명 중 16명), 플라시보 대조그룹에서 10%(40명 중 4명) 등으로 파악됐다.

물론 설리번 박사팀도 펜플루라민이 일부 복용자들에게서 심장판막 손상이 보고됨에 따라 퇴출된 약물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시험에 참여한 소아환자 피험자들의 부모들에게 발작 증상이 감소했더라도 심장판막 이상이 수반되었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은 결과 위험성을 수용할 것이라고 답변했다고 설리번 박사는 강조했다.

발작 증상이 예상치 못했던 돌연사로 귀결될 수 있는 만큼 위험성을 감수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는 것이다.

설리번 박사팀 또한 심전도 검사에서 심장판막 이상이 발견되었을 경우 시험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등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1일 최대 복용량 상한선을 26mg으로 제한한 것도 같은 취지에서 취해진 조치였다.

체중감소 용도로 ‘펜-펜’을 복용했던 성인들의 경우 펜플루라민을 52~104mg 또는 그 이상의 용량까지 복용했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12주 동안 진행된 시험에서 심장판막 이상 또는 폐동맥 고혈압이 수반된 사례는 관찰되지 않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1년 이상 개방표지 연장시험에 계속 참여한 피험자들의 경우에도 심장판막 또는 폐동맥 고혈압이 발생한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

부작용은 대부분이 경도에서 중등도 수준에 그쳤고, 3개 그룹에서 고루 수반되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체중감소가 관찰되어 펜플루라민 고용량 복용그룹의 경우 20%(40명 중 8명)에서 원래 체중의 7.2~11.4%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소용량 복용그룹에서는 13%(39명 중 5명)에서 8.4~21.9%가 감소했다.

이 중 소용량 복용그룹은 영양사들이 비만관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지도한 결과였다.

설사, 무기력증 및 졸림 등의 증상이 수반된 비율 또한 펜플루라민 복용그룹이 플라시보 대조그룹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설리번 박사는 이 같은 결과와 관련해 벨기에에서 지난 2002년 ‘동정적 사용’ 용도로 펜플루라민을 드라베 증후군 환자들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된 전례가 있음을 상기시켰다.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州 에머리빌에 소재한 희귀질환 치료제 전문 제약기업 조제닉스社(Zogenix)가 드라베 증후군 관련 발작 치료용도로 ‘핀텝라’(Fintepla: 펜플루라민 염산염)의 허가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지난해 4월 FDA로부터 반려를 통보받은 바 있다.

전체댓글 0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