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중약가인하 기전
제약업계가 어렵다고 한다. 단순히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이윤 창출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약제비 적정화 방안 도입 이후 기존의 약가관리 기전에 새로운 기전들을 추가하고 최근에는 약가제도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유다.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가격의 문제는 곧 생존을 의미하기 때문에 가격에 대한 규제는 곧 기업의 위기로 다가온다. 제약업계는 이 같은 이유로 가슴 졸이며 정부의 정책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때로는 반발을 해보지만 업계의 볼멘소리는 메아리로 돌아오기 일쑤다.
약가제도 변화에 제약 ‘일희일비’
제약업계에서 ‘약가’는 곧 생존을 의미하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약가인하라는 채찍이 큰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의 약가제도나 의약품 유통에 대한 정책변화의 모습을 살펴보면 약가인하를 가장 큰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이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간에 제약업계에서는 여파가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정부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 도입 이후 기존의 약가인하 기전에 새로운 약가인하 기전이 추가됐다.
기존의 약가재평가, 실거래가상환제 사후관리 등의 기전에 기등재의약품 목록정비, 특허만료 의약품 약가인하, 사용량-약가 연동제 등이 새롭게 추가되며 제약업계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약사 약가 담당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고 약가에 대한 심의나 결정이 이뤄지는 약제급여평가위원회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등은 관심의 대상이 됐다.
그리고 정부는 지난해부터 리베이트에 대한 해결을 위해 또 다시 약가인하 카드를 꺼내들었다.
리베이트 제공으로 적발된 의약품은 20%의 약가인하를 하겠다는 것.
즉, 정부는 약제비 관리와 리베이트 척결이라는 명목아래 수많은 약가인하 카드를 내밀고 있는 셈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정부의 취지는 이해하나 약가는 결국 회사의 생존을 좌우하는 부분인데 계속된 약가인하 방침은 제약업계를 키우자는 건지 의문”이라며 “이러한 상황이라면 결국 제약사도 한계에 다다를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핫 이슈’ 고혈압약 목록정비
약제비 적정화 방안 이후 새롭게 도입된 약가인하 기전 중 제약업계에 가장 큰 타격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이는 기전은 ‘기등재의약품 목록정비’를 꼽을 수 있다.
기등재의약품 목록정비은 이미 시범사업을 통해 고지혈증치료제와 편두통치료제의 두 효능군에 대해 목록정비를 마치고 현재 본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본 평가의 첫 번째 효능군이 시장 규모가 가장 큰 고혈압치료제라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거의 모든 제약사들이 의약품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시장 규모가 큰 만큼 목록정비가 진행되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실제 심평원이 진행한 연구용역 결과가 공개되자 제약업계는 불안감이 현실로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냈다.
서울대학교 김진현 연구팀은 고혈압치료제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에서 '고혈압치료제 계열 내 뿐만 아니라 계열간에도 효과의 차이가 명백히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최소 73%의 고혈압치료제가 급여에서 퇴출되거나 대거 약가인하를 해야 한다는 경고를 했다.
이후 제약업계 및 의료계 등에서 재평가를 요청했고 숨죽이며 결론이 어떻게 내려질 지 기다리고 있다.
정부도 파장을 의식해서인지 큰 틀은 유지하되 제약업계와 의료계의 의견을 검토해 사회적 합의를 통한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는 후문이 들려오고 있다.
최근 한 토론회에서 김상희 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기등재약 목록정비가 이미 등재된 약효를 과학적으로 평가해보자는 것보다 약가를 인하하는데 목적이 있는 만큼 종합적인 고민을 하도록 하겠다"며 "약가인하의 당초 취지를 살리면서도 제약산업에 미치는 충격을 고민해서 정책 결정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기등재의약품 목록정비가 이제 첫 발을 내딛은 상황에서 상당한 후폭풍이 기다리고 있고 앞으로 경제성평가 과정을 거쳐야 할 약효군이 산적해 있다는 사실은 제약업계를 충분히 긴장하게 만들 수 있는 상황임에 분명하다.
제약업계 “또야?”… ‘지친다 지쳐’
제약업계는 정부의 약가제도 변화로 인해 또 한 번 홍역을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난해 TF팀을 통해 만든 시장형 실거래가제도를 도입하고 리베이트 척결을 위한 쌍벌제 시행 등을 골자로 하는 '의약품 거래 및 약가제도 투명화 방안'을 공개하며 향후 보건의료계의 판도변화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당장 제약업계는 오는 10월 제도 시행을 앞두고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제도가 시행되면 향후 오리지널과 제네릭의 약가가 상당한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어 제약업계가 느끼는 파장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시장형 실거래가제도 도입으로 매년 정부에서는 요양기관 및 의약품 공급자가 신고 실거래가격을 기반으로 해 1년 단위로 확인해 품목별 가중평균 가격으로 익년도 약가를 인하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약가의 급격한 인하 시 제약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약가인하 면제범위 20%와 최대인하폭 10%를 설정했지만 약가인하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는 제약업계로서는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이어지고 있는 약가인하 정책은 이렇게 제약업계를 옥죄고 있다. 그러나 무조건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카드를 꺼내들 필요는 있다. 다만 숨쉴 틈을 줘야 살 수 있지 않은가. 연이어 계속되고 있는 약가제도 정책이 제약업계를 더욱 지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