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범위확인심판’은 다국적社 약가보존수단?
답안지 주고 시험 보는 꼴…건보재정 누수 등 부작용 우려
손정우 기자 s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08-03-31 06:30   수정 2008.04.01 09:56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화이자, 사노피-아벤티스 두 다국적 제약사가 자사 오리지널 품목의 제네릭에 대한 적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을 청구해 눈길을 끌었다.

사실 이런 경우는 전에 없었던 ‘최초’의 사건인데다, 개량신약도 아닌 제네릭이 오리지널 의약품의 권리범위에 속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는 심판이었기에 왜 심판을 청구했는지 세간의 의문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확인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사실을 두 다국적 제약사가 돈을 들여가며 추진한 이유는 제네릭 진입 時 자사 오리지널 의약품의 20% 약가인하를 막기 위함이었다.

두 다국적 제약사는 지난해 8월 보건복지가족부가 마련한 [약제 상한금액의 산정기준 제1호 가목의(1) 후단규정 시행에 관한 세부지침](이하 세부지침) 상의 “약가인하 시행 후에 제네릭 의약품이 최초등재제품의 특허권을 침해한 것으로 밝혀져 판매 가능한 제네릭 의약품이 없을 경우, 인하된 약가를 원상회복시킴”이라는 문구를 근거로, 적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을 통해 제네릭이 오리지널의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다짐을 받아놓으려 했던 것.

특히 세부지침은 “특허권 침해 여부 확인은 특허심판원의 심결, 사법부의 판결 및 가처분, 재판상 조정, 재판상 화해 등 권한 있는 기관의 판단에 의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두 다국적 제약사들이 특허심판원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어쨌든 특허심판원은 두 다국적 제약사에게 “특허의 존속기간 만료 전 특허제품과 동일한 성분을 가지는 의약품을 제조 혹은 판매하는 등의 행위는 특허권의 효력이 미치고, 적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을 통해 특허의 권리 범위에 속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고 심결 했다.

두 건의 심결 모두에서 관련 국내 제약사들은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기간이 만료된 후 제네릭을 시판하겠다고 밝혔지만, 다국적 제약사들은 ‘예방적 차원’에서 현재 벌어지지 않은 상황에 대해 미리 손을 써둔 것이다.

물론 제네릭社가 입장을 번복하고 제네릭 출시를 강행할 수도 있다는 상황을 고려하면 오리지널社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이런 지점 때문에 다국적 제약사가 특허심판원의 ‘권리범위확인심판’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특허청, “권리범위확인 특허침해여부확인 아니다”

하지만 권리범위확인심판으로 20%인하된 오리지널 약가를 원상회복시켜 주는 것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적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이 특허침해여부를 확인해주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 특허청 약품화학심사과 관계자는 “권리범위확인심판과 특허침해소송은 서로 다른 것”이라며 “엄밀히 말해 권리범위확인심판이 특허침해 여부를 확인해주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특허침해소송이 이뤄지는 일반법원에서는 특허심판원의 적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의 심결을 참고하고, 넓은 의미로 특허침해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다국적 제약사들이 특허심판원의 심판을 청구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둘째로 제네릭에 대한 적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 결과는 당연히도 제네릭이 오리지널 특허범위 내에 있다고 판결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미 화이자, 사노피-아벤티스 두 다국적 제약사의 권리범위확인심판 결과가 그랬고, 심판을 청구한 다국적 제약사 스스로도 “제네릭이 오리지널의 특허범위에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라고 인정할 정도이니, 사실상 권리범위확인심판은 다국적 제약사의 연전연승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마디로 답안지 주고 시험보는 꼴인 셈이다.

따라서 권리범위확인심판을 통해 오리지널 의약품의 약가인하가 원상회복된다면, 법원에서 특허침해소송 첫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오리지널 의약품의 약가를 떨어뜨릴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권리범위확인심판 심결이 나오는 기간을 6개월 정도라고 잡아도, 최소 수십억에서 수백억에 이르는 ‘안 줘도 될’ 건강보험재정을 낭비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오리지널 약가회복 복지부의 입장은?

일단 복지부는 권리범위확인심판만 있으면 무조건 오리지널 약가의 원상회복이 가능하다는 식의 입장은 아니지만, 권리범위확인심판이 권한 있는 기관인 특허심판원의 심결이기 때문에 약가회복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복지부 보험약제과 관계자는 “오리지널 약가회복의 근거가 꼭 권리범위확인심판만 있는 것은 아니고 또 그것만 있다고 가능한 것도 아니다”라며 “다만 권리범위확인심판은 권한 있는 기관인 특허심판원의 심결이고 정부기관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입장에서 약가회복의 근거 중 하나로 사용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하지만 약가가 회복됐다고 해서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고 특허침해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판결의 변화에 따라 다시 약가가 떨어뜨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보건당국 내부에서도 권리범위확인심판에 관한 이견은 존재한다.

익명을 요구한 보건당국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최근 두 건의 권리범위확인심판에 대해 특허심판원에서 다국적 제약사에게 권리범위확인심판의 법률상 이익이 있는 것으로 인정한 점은 다소 의외였다”며 “제네릭이 오리지널 약의 특허범위에 속한다는 심결은 이해가 가지만 그것이 법률적으로 이익이 있다는 심결은 너무 특허권자의 권익을 보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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