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녹내장은 어떤 질환인가?
녹내장은 시신경이 서서히 위축되면서 시야가 축소되는 질환입니다. 정확히는 안구 뒤에 붙어있는 시신경의 앞 부분이 특징적으로 손상되며 시야 결손이 대개 주변부(바깥)부터 시작되어 진행하면 중심 시야까지 진행합니다. 시신경은 망막에서 나온 시각 정보와 자극을 뇌(후두엽의 시피질)로 연결해 주는 일종의 '케이블' 역할을 합니다.
대부분의 녹내장은 서서히 진행되는데, 황반변성 같은 질환과 달리 중심 시야는 녹내장 말기까지 보존되는 경우가 많아 환자가 조기에 인지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게다가 양쪽 눈의 진행 속도가 달라 한쪽 눈이 나빠져도 반대편 눈이 보완해 주기 때문에 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젊은 층의 경우 라식, 라섹 등 시력교정술 전 정밀검사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일반 건강검진 패키지에도 안압 측정 및 시신경 촬영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어 조기 발견 사례가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2) 녹내장은 왜 발생하는가?
|
확실하게 증명된 원인은 '높은 안압'입니다. 안구 내 압력이 높아지면 시신경의 앞 부분이 눌리면서 위축이 오게 됩니다. 시신경 앞 부분의 내부에는 콜라겐이 주성분인 '사상판(lamina cribrosa)'이라는 체(Sieve) 모양의 결체조직이 존재합니다. 시신경 섬유 가닥들이 이 사상판을 통과하는데, 사상판이 압력으로 인해 뒤로 휘어지면서 신경의 흐름이 차단되고, 이것이 지속되면 시신경 섬유는 영구적인 손상을 받아 결국 섬유화가 진행됩니다.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는 소위 '정상 안압 녹내장(Normal Tension Glaucoma)'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안압 외의 다른 원인에 대한 연구도 활발합니다. 하지만 '정상 안압'이라는 용어는 임상에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진료실에서 "안압이 정상인데 왜 안압하강제를 써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수차례 받습니다.
안압이 높지 않은데도 왜 시신경이 함몰되고 위축될까요? 이에 대한 답은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사상판 구조의 상대적 취약성입니다. 대다수의 녹내장 전문가들은 시신경을 지지하는 사상판 구조 자체가 취약할 때, 통계적으로 '정상 범위'라 불리는 안압에서도 사상판이 쉽게 휘어지고 손상이 일어난다고 봅니다. 즉, 안압과 사상판의 상대적인 대결에 의해 병태생리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둘째, 안압 측정법의 한계입니다. 우리가 측정하는 안압은 실제 안구 내 압력(Intraocular pressure)입니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안구를 직접 찌를 수는 없으므로, 대개 각막을 통해 간접적으로 안압을 추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각막의 두께나 생체역학적 특성이 측정치에 영향을 줍니다. 예컨대 시력교정술로 각막이 얇고 평편한 환자는 실제 안압보다 낮게 측정됩니다.
셋째, 통계적 '정상 안압' 기준이 정확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안압의 정상 상한선인 21mmHg는 서양인(Caucasian)의 평균 안압 15~16mmHg에 표준편차 3 mmHg의 2배를 더해 만든 대략적인 신뢰구간의 상한선일 뿐입니다.
최근 한국인 대상 역학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안압은 서양인보다 2mmHg 낮은 13~14mmHg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준 상한선 역시 18~19mmHg로 낮추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더구나 안압은 하루 중에도 5~6mmHg 이상 변동폭을 보이며, 체위의 영향도 많이 받습니다.
최근 콘택트렌즈 형태의 장비 등을 활용한 24시간 연속 안압 측정 연구 결과를 보면, 실제 안압의 변동폭은 외래에서 단 한 번 측정하는 것보다 훨씬 다이내믹합니다. 따라서 단편적인 안압 수치에만 집착하기보다 사상판의 형태적 변화, 안압의 변동폭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해야 합니다.
아울러 혈류 장애(Vascular dysregulation), 신경퇴행(Neurodegeneration), 대사 스트레스(Metabolic stress) 등도 망막신경절세포의 영구적 손상을 일으키는 주요 인자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3) 녹내장의 종류
녹내장은 단일 질환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질환을 묶어서 부르는 총칭입니다. 특별한 원인 없이 발생하는 원발성 녹내장과 다른 안과적, 전신적 질환의 합병증으로 나타나는 속발성 녹내장으로 나뉩니다.
속발성 녹내장의 경우 스테로이드 사용, 안내 염증(포도막염), 안구 내 종양, 당뇨망막병증이나 망막혈관폐쇄로 인한 안내 허혈(신생혈관 녹내장), 안외상, 거짓비늘 증후군 등이 원인이 됩니다. 원인 질환을 함께 치료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안압 조절이 매우 까다로워 수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수의 유출로인 섬유주가 기계적으로 열려있는지 닫혀 있는지에 따라 개방각 혹은 폐쇄각 녹내장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대략 90% 정도는 개방각 녹내장이고 10%를 차지하는 폐쇄각의 경우 섬유주가 갑자기 막히는 급성 폐쇄각 녹내장이 발생할 수 있는 데 이는 안과적 응급 상황입니다.
심한 안통, 두통, 구토, 급격한 시력 저하를 동반하여 응급실을 찾게 되며, 수일 내에 해결하지 못하면 영구 실명에 이를 수 있습니다.4) 발생 연령에 따라 분류할 수도 있는데, 선천성 녹내장이나 유소년 녹내장(Juvenile open angle glaucoma)은 예후가 매우 불량합니다.
특히 선천성 녹내장의 경우 안구가 채 성장하기도 전에 방수 유출 구조의 이상으로 인해 수차례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흔하며, 이 과정에서 백내장, 홍채 손상, 각막 혼탁, 약시 등의 2차적인 난제들을 동반하게 됩니다.
4) 녹내장의 치료
|
현재 전 세계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유일한 녹내장 치료법은 '안압 하강'입니다. 환자의 기저 안압이 어떠하든, 안압을 더 낮추어 시신경 함몰과 위축의 진행을 멈추거나 늦추는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마치 고혈압이나 당뇨 환자가 평생 약을 먹으며 수치를 관리하듯, 녹내장 역시 안압을 평생 관리하는 질환입니다.
앞서 말한 '정상 안압'이라는 용어 때문에 환자들이 안압 치료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것이 임상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약물 치료(안약)중 베타차단제는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약제로 방수 생성을 억제합니다. 효과는 좋지만 심혈관계나 호흡기계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에게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프로스타글란딘 유도체(Prostaglandin analogue)입니다. 1일 1회 점안으로도 우수한 안압 하강 효과를 보이며 전신 부작용이 거의 없습니다. 다만 장기 사용 시 다크서클(안와 주변 색소침착), 속눈썹 길어짐, 눈주위 지방 위축 등의 미용적 부작용이 흔합니다. 안과의사들 사이에서 "눈만 봐도 순응도(Compliance)를 알 수 있다"는 농담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Rho-kinase 억제제 등 최근 여러 종류의 약제들이 도입되고 있으나 대부분의 녹내장 안약은 점안 시 충혈, 작열감 등 불편감을 유발하여 환자의 순응도를 떨어뜨립니다.
안약이 눈을 편하게 하지는 않지만 녹내장 치료를 위해 불가피함을 환자에게 잘 납득시켜야 합니다. 약물로 안압 조절이 안 되거나 녹내장성 손상이 진행될 때는 수술적 치료를 고려합니다. 레이저 치료(선택적 섬유주성형술 등)는 효과가 제한적이어서 결국 수술(Filtering surgery)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섬유주의 일부를 절제해 결막 아래로 방수가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주는 섬유주절제술(Trabeculectomy)이 대표적입니다.
최근에는 미세침습녹내장 수술(MIGS) 이라 불리는 방수 유출을 돕는 다양한 Stent 등이 출시되었고, 좀 더 난치성이거나 재수술의 경우 임플란트 등도 사용되고 있습니다.하지만 어떤 방법이든 방수가 유출되는 결막 아래에서는 섬유화 반응이 일어나고, 그러다 보면 유출로가 다시 폐쇄되고 안압이 상승하여 재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반대로 방수가 과도하게 빠져나가 발생하는 저안압증, 장치 노출, 감염 등의 부작용도 동반될 수 있습니다. 방수 생성을 줄이는 시술(모양체광응고술 등) 역시 저안압으로 인한 심각한 시력 저하 위험이 있어 제한적으로 사용됩니다.
녹내장 수술은 근본적으로 '완치'의 개념이 아닙니다. 수술이 잘되어 안압이 조절되어도 녹내장이 진행할 수도 있고 수술 자체의 불편감 혹은 부작용으로 인해 환자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의사와 환자 모두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수술입니다. 그러나 약물로 조절되지 않는 안압을 방치하면 종착지는 실명이기 때문에, 필요한 순간에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수술적 결단을 내리는 임상적 혜안이 요구됩니다.
5) 결론
녹내장은 과거 '소리 없는 시력 도둑'이라 불렸던 것처럼, 초기 증상이 없고 통계적인 정상 안압 범주 안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특성 때문에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어려운 질환입니다.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정상 안압 녹내장 환자들의 혼란은, 우리가 가진 안압 측정 기술의 간접적 한계와 '정상'이라는 단어가 주는 착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현대 녹내장 진단과 치료의 패러다임은 단 한 번의 단편적인 안압 수치에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환자 개개인의 사상판 구조적 취약성, 안압의 변동성, 각막의 생체역학적 특성, 그리고 시신경 혈류를 포함한 전신적 요인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맟춤형(Tailored) 접근'이 필요합니다.
치료의 핵심은 결국 시신경 손상의 진행을 멈추기 위한 철저한 '안압 하강'과 '적정 안압의 유지'입니다. 프로스타글란딘 유도체나 Rho-kinase 억제제 같은 치료제의 개발과 미세침습 녹내장 수술(MIGS) 및 다양한 스텐트의 도입은 의료진에게 더 넓은 치료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학 기술적 발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환자가 자신의 질환을 정확히 이해하고 치료에 동참하게 만드는 순응도이고, 이를 위해서는 의료진의 세심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녹내장은 완치되는 질환이 평생을 달래며 동행해야 하는 만성 질환입니다.
정기적인 안저 검사를 통한 조기 발견, 그리고 진단 후에는 '정상'이라는 수치에 방심하지 않고 지속적인 검사를 통해 치료 경과를 확인하는 것이 실명이라는 비극을 피하고 삶의 질(QoL)을 유지하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길입니다.
<필자프로필>
|
서울의대 졸업,
서울아산병원 울산의대 교수,
대한민국의학한림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 01 | 바바리안 노르딕‧영국 정부, 엠폭스 백신 공... |
| 02 | 약물 부작용 피해구제 확대…진료비 5000만원... |
| 03 | AI가 여는 디지털헬스케어, “자율성 커진 만... |
| 04 | 에이디켐테크, 차세대 PFS 앞세워 글로벌 패... |
| 05 | “비만약 1년 유지율 고작 10%” GLP-1 경쟁, ... |
| 06 | ‘시신경 보호·방수 유출 경로 회복’ 국내 녹... |
| 07 | 녹내장, 시신경 건강을 지키는 식탁의 지혜 |
| 08 | 또 다른 안과질환 복병 '황반변성'의 진단과... |
| 09 | 녹내장 관리에 응용할만한 건강기능식품 |
| 10 | 녹내장 치료의 핵심은 철저한 '안압 하강'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