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요법] 오래된 관이 된 혈관, 세 가지 '보물 약재'와 양생법으로 청소하기
어혈·담음 쌓이면 혈관도 늙는다…한의학이 바라본 심혈관 노화
단삼·치자·삼칠근부터 거풍청혈단까지…혈관 건강 돕는 순환 관리법
전하연 기자 haye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6-04 06:00   수정 2026.06.04 06:01

"오래된 관은 청소하지만, 혈관은 어떠신가요?"

어혈과 담음을 걷어내고
혈관의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한의학의 지혜.


<필자 소개>
​유덕주 유덕경희한의원 원장은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방재활의학을 전공, 학위를 취득했다. 경희대학교 한방병원 한방재활의학과 전공의 과정을 수료했으며 대한한방재활의학과학회 평생회원 및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이자 통증 및 재활의학분야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유덕주 원장은 현재 경기 안양시 소재 유덕경희한의원 대표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편집자>


유덕주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 ©유덕경희한의원

■ 들어가는 글

나이가 들면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분들이 피부 주름이나 흰머리를 떠올리지만, 사실 우리 몸에서 더 조용히, 그리고 더 위험하게 늙어가는 곳은 바로 ‘혈관’입니다. 그렇다면 혈관은 우리 몸에서 어떻게 늙어갈까요?

여기 두 개의 관(管)이 있습니다. 하나는 막 출고된 탄력 넘치는 말랑말랑한 고무호스이고, 다른 하나는 30년 넘게 아파트 벽 속에서 녹슬고 찌든 때가 낀 무쇠 가스관입니다. 슬프게도 우리의 혈관은 매일 전자에서 후자로 변해갑니다. 젊은 혈관은 팽팽하고 유연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혈관벽에 콜레스테롤과 각종 노폐물이 쌓이면서 점차 딱딱하게 굳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심혈관 노화’의 본질입니다.

혈관은 평소에는 존재감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혈관이 딱딱해지고 탄력을 잃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혈압이 오르고 손발이 차가워지며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됩니다. 상태가 심해지면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같은 중대한 질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죠. 그래서 의학계에서는 혈관 노화를 ‘조용히 진행되는 노화’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단순히 나이 때문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피가 맑음을 잃고 끈적하게 정체된 ‘어혈(瘀血)’, 그리고 몸속 대사 노폐물이 뭉쳐 형성된 ‘담음(痰飮)’이 혈관이라는 길을 막은 결과로 해석하죠. 동의보감의 유명한 격언인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則不痛 不通則痛)” 즉, ‘통하면 아프지 않고 막히면 아프다’는 말이 가장 절실하게 적용되는 곳이 바로 심혈관입니다.

오늘은 우리 몸의 중심인 심장과 혈관의 태엽을 거꾸로 돌려줄 수 있는 한의학 속 흥미로운 세 가지 약재 이야기와 함께,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심혈관 양생법을 풀어보려 합니다.


■ 딱딱해진 혈관을 구원하는 세 가지 ‘보물 약재’

단삼. ©구글AI

1. 심혈관을 구하는 붉은빛의 청소부, 단삼(丹蔘)
인삼(人蔘)은 익숙하지만 단삼(丹蔘)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의학에서 혈관과 혈액순환을 이야기할 때 때 단삼은 인삼 못지않게 중요한 약재로 꼽힙니다. 인삼, 사삼, 현삼, 고삼과 함께 한방의 '5대 삼(蔘)'으로 꼽히는 약재로, 뿌리가 붉은색을 띤다고 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옛 의서에는 "한 가지 단삼의 효능이 혈을 보하는 대표 처방인 사물탕(四物湯)과 맞먹는다"고 기록돼 있을 정도입니다. 현대 과학으로 밝혀진 단삼의 매력은 아주 명확합니다. 바로 탁월한 ‘혈관 확장’과 ‘혈전 억제’ 능력입니다.

단삼은 혈관을 부드럽게 이완시켜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혈액이 끈적하게 뭉쳐 피떡(혈전)이 되는 것을 원천 봉쇄합니다. 마치 오래된 배수관에 쌓인 유지방을 녹여내는 친환경 세제처럼, 녹슨 혈관벽을 부드럽게 닦아내고 탄력을 리필해 주는 심혈관 노화 방지의 1등 공신입니다.

2. 스트레스로 타들어 가는 심장을 식히는 소방수, 치자(梔子)
노란 천연 염료로 잘 알려진 치자(梔子)가 심혈관에 좋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한의학에서 치자는 찬 성질을 이용해 몸속의 비정상적인 열을 내리는 대표적인 약재입니다. 특히 ‘심화(心火)’, 즉 심장에 가득 찬 화를 끄는 소방수 역할을 합니다.

현대인들의 심혈관 건강을 위협하는 주범은 다름 아닌 ‘스트레스’와 ‘화(火)’입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이 흥분하면서 혈관이 수축하고, 혈관 내벽에 미세한 염증들이 발생합니다. 치자는 이 과도한 열과 긴장을 완화하고 진정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치자에 풍부하게 함유된 크로신(Crocin) 성분은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합니다. 이 성분은 혈관 세포를 공격해 노화를 촉진하는 유해 산소(활성 산소)를 제거하고, 혈관 염증 반응을 억제해 혈관이 딱딱하게 변하는 ‘동맥경화’의 진행을 늦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마치 브레이크를 밟듯 혈관 노화의 속도를 멈춰 세우는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3. 금과도 바꾸지 않았던 재생의 명약, 삼칠근(三七根)
중국 남서부의 거친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삼칠근(三七根)은 과거 전장에서 장수들이 품속에 지니고 다니던 비약이었습니다. 칼이나 창에 베인 상처에 부어 피를 멈추고 새살이 돋도록 돕는 데 이만한 약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가치가 너무나 귀해 중국에서는 금을 주고도 바꾸지 않는다는 뜻의 ‘금불환(金不換)’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삼칠근이 심혈관 노화 치료의 명약으로 꼽히는 이유는 매우 독특한 ‘이중성’에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지혈(止血)과 활혈(活血, 피를 잘 돌게 함)의 조화라고 부릅니다. 혈관이 약해져 터진 곳이 있으면 출혈을 멈추게 하고(지혈), 반대로 피가 뭉쳐 막힌 곳에서는 시원하게 뚫어주는(활혈) 영리한 작용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현대 한의학 연구에서도 삼칠근은 심장 근육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의 혈류량을 늘려주고, 심장 근육의 산소 소비량을 줄여주는 효과가 입증됐습니다. 노화로 인해 혈관이 좁아지면서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을 다스리는 데 이만한 구원투수가 없습니다.
 

융합의 미학, 과학으로 증명되는 한의학의 지혜

한의학의 묘미는 이처럼 뛰어난 약재들을 단순히 따로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도록 ‘조합’하는 데 있습니다.

최근 한의학계에서는 이러한 심혈관 관련 명약들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과학적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경희대학교 한방병원 연구팀이 개발한 ‘거풍청혈단(祛風淸血丹)’ 같은 처방입니다. "풍(風)을 몰아내고 피(血)를 맑게 한다"는 직관적인 이름을 가진 이 처방은, 앞서 소개한 단삼·치자·삼칠근 등을 핵심 성분으로 배합해 만들어졌습니다.

실제 발표된 임상 및 과학적 연구 논문들에 따르면, 이러한 한방 약재들의 복합 처방은 혈관 내피세포의 손상을 유의미하게 억제하고, 혈중 총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를 낮추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였습니다. 또한 경희대한방병원 연구팀은 거풍청혈단 복용 후 혈관 탄력성을 평가하는 지표인 CAVI(심장-발목혈관지수)가 감소했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쉽게 말해 딱딱하게 굳어가던 혈관이 조금 더 유연해지는 방향의 변화가 관찰됐다는 의미입니다.


■ 혈관의 나이를 거꾸로 돌리는 일상 속 ‘심혈관 양생법’

현대인의 생활습관은 혈관 노화를 앞당깁니다. 늦은 야식, 수면 부족, 스트레스, 운동 부족, 잦은 음주와 흡연까지. 특히 “아직 젊으니까 괜찮겠지”라는 방심이 가장 위험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30~40대에서도 고혈압, 고지혈증, 동맥경화와 같은 심혈관 위험요인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재를 활용하더라도 매일 나쁜 생활습관을 반복한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혈관의 시간을 조금 더 천천히 흐르게 하고 싶다면, 한의학에서 강조하는 두 가지 핵심 양생법을 생활 속에 들여놓아야 합니다.

심혈관에 좋은 비트.©구글AI

1. 식이지계(食餌之戒) : 담음(痰飮)을 막는 맑은 식습관
혈관을 탁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과도한 후미(厚味, 기름지고 자극적인 맛)'입니다. 기름진 음식과 정제 탄수화물 위주의 식습관은 한의학에서 말하는 대사 노폐물인 '담음'을 만들어 혈관을 막습니다.

자연의 색을 드세요: 단삼처럼 붉은색을 띠는 토마토나 비트(안토시아닌, 라이코펜 풍부)는 혈관 탄력에 좋습니다. 또한 담음을 씻어내는 미역, 다시마 같은 해조류는 혈액을 맑게 합니다.
싱겁게, 그리고 따뜻하게: 과도한 염분 섭취는 혈관을 긴장시킵니다. 또한 평소 찬 음료 대신 따뜻한 물이나 차를 마시는 습관은 복부가 따뜻해지면서 전신 혈액 순환의 효율이 극대화됩니다.

2. 기거유상(起居有常) : 어혈(瘀血)을 푸는 생활습관
피는 멈추면 굳고, 움직이면 흐릅니다. 오래 앉아 있는 습관은 혈류 속도를 떨어뜨려 '어혈'을 유발하는 주범입니다.

하루 30분, 가벼운 유산소 운동: 동의보감에서는 "형체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고, 마음은 고요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숨이 약간 찰 정도의 걷기나 자전거 타기 같은 유산소 운동은 혈관 내피세포를 자극해 혈관을 확장하는 물질을 뿜어내게 만듭니다.
수면은 혈관의 휴식 시간: 밤 11시부터 새벽 3시 사이는 한의학적으로 음혈(陰血)이 보충되고 기혈이 회복되는 시간입니다. 이때 깊은 잠을 자야 낮 동안 지친 심장과 혈관 세포가 스스로 재생할 수 있습니다.


■ 맑은 피가 흐르는 젊은 내일을 위해

한의학은 혈관을 단순한 통로로 보지 않습니다. 몸 전체의 균형과 순환 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치료 역시 단순히 혈압 수치 같은 숫자를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몸의 순환을 회복하고 균형을 되찾는 방향으로 접근합니다.

물론 한약이 모든 심혈관 질환을 해결하는 만능 치료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혈관 노화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혈액순환 개선과 염증 조절, 혈류 안정화 측면에서 보완적인 도움 가능성은 충분히 주목해볼 만합니다.

어쩌면 혈관 건강은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얼마나 건강하게 나이 드느냐”와 더 가까운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하루 물 한 잔 더 마시는 습관, 잠시라도 걸어보려는 노력, 그리고 내 혈관 건강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혈관의 시간을 조금 더 천천히 흐르게 하고, 보다 건강한 내일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나의 혈관은 안녕한가요? 오늘부터 기름진 음식을 조금 줄이고, 가벼운 산책으로 혈액 순환을 돕고, 내 몸의 피를 맑게 깨워주는 한의학의 지혜를 빌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혈관의 나이를 거꾸로 돌리는 것은, 결국 매일의 작은 관심과 올바른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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