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 약학이 신약개발과 맞춤약학(임상약학), 사회약학 3개 분야에서 이뤄질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울대 약대 심창구 명예교수는 최근 발간한 '한국약학사'에 수록한 맺음말을 통해 한국 약학의 미래에 대해 전망했다.
심 교수는 "21세기의 약학은 목표가 불분명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신약개발, 맞춤약학, 사회약학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향해 진화하고, 교육과 연구의 방향도 3대 목표에 일치하도록 조정될 것"이라며 "변화를 능동적,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면 21세기 한국 약학이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 교수에 따르면, 과거 1970년대까지는 대학에서 연구를 하려면, 시약은 고사하고 연구할 대상이 되는 약물 사료 자체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연구 주제는 필요성이 아닌 가능성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연구 결과도 겨우 국내에서만 발표될 정도로 국제수준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신약개발이 제약업계 화두가 되면서 제약기업 및 대학에서의 약학 연구도 점차 신약개발에 초점을 맞춰 활기를 띄게 되면서 모든 연구는 그 연구가 신약 개발의 어느 단계에서 어느 어떤 기여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심 교수는 "이미 우리나라 약학은 국내 약대 SCI급 학술잡지에 발표한 논문 수는 약대가 소속된 대학교의 여러 학과 중 최다라는 평을 듣는 등 양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며 "앞으로는 신약개발이라는 좀더 분명한 목표를 지향해 연구 질적 수준도 세계최고를 지향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임상 분야에 있어서는 기존 '임상약학(Clinical Pharmacy)'에서 나아간 '맞춤약학(Individualized Pharmacy)'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약물유전학이 발달하면서 종래 약물요법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는 것. 심 교수는 미국에서 입원한 환자 중 약 10만명이 약물부작용으로 사망한다는 1998년 추계를 인용했는데, 환자 개개인의 유전적인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환자들에게 같은 약을 같은 양(One-Size-Fits-All) 투여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심 교수는 "앞으로의 임상약학은 '환자 개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한 '맞춤약학'의 실현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며 "수십 수만명의 환자 생명을 위협하는 종래 약물요법을 그대로 지속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서 앞으로의 임상약학은 필연적으로 약물유전학(Pharmacogenetics) 또는 약물유전체학(Pharmacogenomics)을 바탕으로 개개인 유전적 특성을 고려한 약물요법 최적화를 지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 교수는 "맞춤약학은 임상시험 시 특수한 유전적 특성을 지닌 환자군을 사전 식별해 시험군에서 제외해 신약 후보물질이 임상시험에서 탈락하는 실패율을 현저히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반대로 특수한 유전적 특성을 가진 환자에게 선택적으로 약효를 나타내는 신약을 개발할 가능성도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약학(Social Pharmacy) 영역과 드라이랩(Dry Laboratory)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심 교수는 "세포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는 세포핵에 들어있지만, 세포가 생존, 분화하기 위해서는 세포핵 외에 세포질과 세포막이 공존해야 한다"며 "이와 마찬가지로 약학 핵심 가치인 신약개발학과 임상약학도 사회약학이나 약사법 같은 주변 환경에 둘러싸여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고사할 수 밖에 없다"고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한편, 종래 약학연구실처럼 존재하는 연구실을 웻랩(Wet Laboratory)에 대비해 실험을 주된 업무로 하지 않는 연구실을 드라이랩(Dry Laboratory)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일본은 이미 120여 년 전에 도쿄대에 '위생재판화학 강좌'가 개설된 이래 현재 약 60개 약대에서 다양한 이름의 사회약학 계열의 드라이랩(의약정책학, 파마코비지니스인벤션, 국제보건약학, 보험약국학 등)이 개설돼 있다고 전했다.
심창구 교수는 "사회약학 영역의 드라이랩이 이처럼 계속 생겨나는 이유는 신약개발학이나 임상약학과 같은 핵심적 가치를 갖는 웻랩만으로는 약학이 효율적으로 생존·발전 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약대에서도 사회약학 영역의 드라이랩이 시급히 개설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몇몇 신설약대에 드라이랩이 신설되고있지만, 그 규모는 필요성에 비춰볼 때 아직 부족하다"면서 "약대에 다양한 드라이랩을 개설하는 일은 약학계는 물론 제약업계와 약사회, 나아가 사회로부터도 호응을 받는 약학의 블루오션이 될 전망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