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약 보호주의'…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 통합 전략 절실
'미국 정책 변화와 한국 임상 개발 재편' 심층 진단
김혁중 KIEP 부연구위원, 232조 관세 유예 분석 및 생물보안법 대응 주문
이명화 STEPI 본부장, 최혜국 약가 연동에 따른 국내 시장 파급 효과 경고
김홍식 기자 │ kimhs423@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10-15 06:00   수정 2026.10.15 06:01

미국 행정부가 제약·바이오 산업을 단순한 교역 상품이 아닌 '경제 안보' 및 '전략 자산'의 핵심으로 규정하며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무역확장법 232조 관세 부과, 생물보안법을 통한 대중국 견제, 최혜국(MFN) 기준 약가 인하 등 강력한 보호주의적 규제 정책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가운데,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K-바이오)이 파편화된 대응을 넘어 무역·보건·산업을 아우르는 국가적 통합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서울에서 열린 '2026 KoNECT-MOHW-MFDS 국제 콘퍼런스(KIC 2026)' 2일 차 기조강연에서는 '미국 규제 및 정책 변화가 한국의 임상 개발을 어떻게 재편하는가'를 주제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됐다. 

문한림 메디라마 대표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김혁중 부연구위원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이명화 글로벌전략본부장이 연자로 나서 미국의 정책 지형 변화와 한국의 대응 방안을 입체적으로 진단했다.

(왼쪽부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김혁중 부연구위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이명화 글로벌전략본부장.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232조 관세폭탄 유예기간 확보… "현지 투자와 생물보안법 기회 십분 활용해야"

첫 번째 연자로 나선 김혁중 부연구위원은 트럼프 2.0 행정부의 핵심 제약 정책인 '무역확장법 232조 관세'와 대중국 견제 법안인 '생물보안법'이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상세히 분석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올해 4월 발표된 232조 관세 포고령에 따르면 특허로 보호되는 의약품은 기본적으로 관세 대상에 포함되지만, 다행히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는 다음 대통령 취임 시점인 2029년 1월 20일까지 한시적으로 무관세가 적용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시장 전체적으로 바이오 의약품(HS 3002)과 완제 의약품(HS 3004)이 관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부속서를 통해 관세 적용 품목을 매우 복잡하게 구체화해 두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관세의 파급력과 관련해 김 부연구위원은 "미국 제약 시장 점유율의 약 80%를 차지하는 주요 다국적 제약사들이 이미 행정부와 관세 인하 합의를 마친 상태"라며 "한국 기업들 역시 발 빠르게 미국 현지 투자를 진행하며 생산 기반을 마련하고 있어, 제네릭 및 바이오시밀러 무관세 유예 조치와 맞물려 당장의 직접적인 관세 타격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국방수권법(NDAA)에 포함되어 통과된 생물보안법과 관련해서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김 부연구위원은 "미국 하원 내 중국전략경쟁특위 등 초당적 그룹이 주도하고 있어 중간선거 등 정치적 이벤트나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대중국 견제 기조는 강력하게 지속될 것"이라며, "특정 중국 기업들의 미국 내 사업이 실질적으로 제한됨에 따라, 한국 CDMO 기업 등에게는 새로운 시장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는 명확한 반사이익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최혜국(MFN) 약가 연동의 덫… "글로벌 제약사 한국 약가 인상 압박 스필오버 우려"

두 번째 연자인 이명화 본부장은 미국의 약가 인하 정책과 공급망 내재화, 그리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규제 효율화 동향을 집중 조명하며, 정책 변화가 불러올 파급 효과를 경고했다.

이 본부장은 "미국은 현재 특허 의약품의 53%를 해외 제조에 의존하고 있으며, 원료의약품(API)의 미국 내 제조 비율은 15%에 불과할 정도로 공급망의 대외 의존도가 심각하다"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의약품 공급망 안정화와 약가 통제 정책을 강하게 연동하여 추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산업계에 가장 큰 파장을 예고한 제도는 미국의 '최혜국(MFN) 약가 정책'이다. 이는 미국 공공보험(CMS)인 메디케어 파트 B 의약품 가격을 1인당 GDP 수준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약가 수준으로 벤치마킹해 끌어내리는 제도다. 이 본부장은 "당장 내년 1월부터 병원 처방 오리지널 의약품의 25%를 대상으로 시행되는 '글로브(GLOBE)' 프로그램을 통해 향후 7년간 약 4억 4,000만 달러의 예산을 절감하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본부장은 "가장 우려되는 점은 미국의 19개 참조 국가에 한국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라며 "미국 당국이 약가 기준을 정할 때 한국의 약가를 직접적으로 참조하게 되므로, 반대로 글로벌 제약사들이 미국 내 높은 약가를 방어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한국 시장의 약가를 무리하게 높이려 하거나 신약 출시 시기를 아예 늦추는 식의 심각한 '스필오버(Spillover·파급)' 효과가 국내 시장에 발생할 수 있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이와 함께 이 본부장은 '온쇼어링(Onshoring)' 정책의 양면성을 지적했다. "미국 내 제조 요건을 충족해야만 관세를 0%로 면제해 주는 혜택은 한국 기업들에게 미국 시장 진출과 위탁 생산 물량을 늘릴 기회이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내에 머물러야 할 첨단 제조 기반과 투자 자본이 미국으로 빠져나가 국내 산업 기반을 공동화시킬 수 있는 양날의 검"이라고 덧붙였다.

빠르게 진화하는 미국의 규제 환경 변화도 한국 바이오 산업이 시급히 넘어야 할 산으로 지목됐다.

이 본부장은 "미국 FDA는 의약품 심사 기간을 10개월에서 한두 달로 획기적으로 줄이는 바우처 제도를 운영하고, 동물대체시험법(NAMs)을 통한 임상 축소, 실시간 임상시험 데이터 검토 등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FDA가 '엘사'와 같은 생성형 AI 툴을 전면 도입해 규제 심사를 선진화하고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한국 식약처와 제약 업계 역시 이러한 글로벌 규제 과학의 혁신 스탠더드에 발맞추지 못하면 해외 진출 시 거대한 병목 현상을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파편화된 정책 대응에서 벗어나 통합된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본부장은 "미국의 최근 행보를 보면 약가 통제, 관세 부과, 그리고 규제 효율화가 별개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산업 정책' 틀 안에서 철저히 맞물려 움직이고 있다"며 "우리나라 역시 기존처럼 식약처 등 단일 규제 당국 차원의 대응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무역, 건강보험, 산업 육성 부처가 모두 칸막이를 없애고 머리를 맞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통합형 국가 전략'을 시급히 수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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