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뷰티 산업에서 맡는 역할이 피부를 분석하는 데서 데이터를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는 단계로 넓어지고 있다. 진단 결과를 연구개발과 제품 선택, 맞춤 제조까지 이어갈 수 있느냐가 개인화 경쟁의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서울시가 24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컨퍼런스홀에서 개최한 ‘2026 서울뷰티포럼’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주요 화두로 다뤄졌다. ‘K-뷰티 2.0, 글로벌 스탠다드를 향한 도약’을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은 22~25일 진행되는 '2026 서울뷰티위크' 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됐다.
‘AI·뷰티테크가 만드는 Next K-뷰티’를 주제로 한 세션에선 강내규 LG생활건강 전무(CTO), 루이스 첸(Louis Chen) 퍼펙트 코프 부사장·최고전략책임자(CSO), 안선희 릴리커버 대표가 연사로 나섰다. 이들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AI를 통한 개인화의 확장 가능성을 언급했으나, “진단 기술의 성능보다 데이터를 얼마나 폭넓게 활용하고, 다시 축적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느냐가 핵심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피부 데이터가 R&D 엔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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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내규 LG생활건강 전무는 “AI 기반 피부 진단이 단순한 분석 서비스가 아닌 바이오 연구와 제품 개발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피부 표면에 나타난 노화 징후를 이미지로 정량화하고 유전체 데이터와 결합하면 개인별 차이를 설명하는 생물학적 원인을 찾고 새로운 효능 성분 개발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LG생활건강은 한국인을 포함한 약 6만명의 글로벌 피부 이미지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일반광과 편광, 자외선(UV) 이미지 등을 활용해 얼굴을 40개 이상의 국소 영역으로 나누고 주름·색소·처짐 등 33개 이상의 피부 특성을 분석했다.
주름 역시 단순한 하나의 지표로 보지 않는다. 비전 AI를 활용해 미세 주름부터 굵은 주름까지 형태를 구분한 뒤 자외선 손상에 취약한 유형, 염증·모공과 관련된 유형, 표정 움직임과 연결된 유형 등으로 세분화한다. 색소도 전체적인 피부 톤과 색소 부위의 크기·분포 등을 함께 분석해 칙칙한 피부 톤형, 넓게 분산된 유형, 국소적으로 밀집된 유형 등으로 구분했다.
이미지 분석은 유전체 연구로 이어진다. LG생활건강은 대규모 이미지 데이터와 유전형 데이터를 결합해 피부 노화와 관련된 후보 유전자 276개를 발굴했으며 관련 연구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한 바 있다.
기존 안티에이징이 주름이나 색소처럼 이미 나타난 노화 징후를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LG생활건강은 노화의 원인을 보다 근본적으로 다루는 연구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에이징 클락(Aging Clock)’을 중심으로 장수 유전자 활성화, 후성유전 조절, 자가포식 활성화, 미토콘드리아 활성화, 세포 노화 조절, 마이크로바이옴 균형, 만성 염증 억제, 세포 구조 유지 등 8개 축을 중심으로 피부 노화를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
선택을 돕는 ‘뷰티 AI’
루이스 첸 퍼펙트 코프 부사장은 AI의 역할을 소비자의 ‘결정 부담’을 줄이는 데서 찾았다. 제품 수를 늘리는 것보다 각자에게 맞는 선택지를 좁혀 구매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K-뷰티의 수출 시장 다변화는 개인화의 필요성을 높이는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2025년 한국 화장품은 202개국에 수출됐으며 수출액은 114억2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2.2% 증가했다. 중국 수출은 19% 감소한 20억2000만 달러였던 반면 미국은 15% 증가한 21억8000만 달러로 최대 시장에 올랐다. 시장이 다양해 질수록 매출 증진에는 유리할 수 있지만, 피부색과 피부 상태, 기후, 사용 습관 등이 다른 소비자를 하나의 방식으로 대응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소비자의 제품 탐색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퍼펙트 코프 조사에 따르면, ‘스킨케어 루틴’에 대한 검색 관심은 전년 대비 395%, ‘헤어 루틴’은 1000% 증가했다. 소비자가 단일 제품보다 여러 제품을 어떤 순서로 조합할지까지 찾기 시작하면서 기존 제품 페이지나 일회성 추천만으로는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됐다.
첸 부사장은 “이런 상황에 필요한 AI는 ‘눈·뇌·손’을 갖춘 뷰티 에이전트”라고 설명했다. 컴퓨터 비전이 얼굴과 피부를 읽는 ‘눈’이라면, 뷰티 영역의 데이터로 학습한 언어모델은 브랜드의 전문성을 반영하는 ‘뇌’다. 여기에 가상 체험이나 제품 추천 등 실제 행동까지 수행하는 기능은 ‘손’에 해당한다.
범용 생성형 AI와 뷰티에 특화된 AI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기도 했다. 공개 인터넷 데이터를 기반으로 일반적인 답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피부 톤과 피부 상태를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검증된 뷰티 데이터와 전문가 지식을 바탕으로 답변해야 추천의 정확성과 브랜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첸 부사장은 “뷰티 산업에서 개인화는 제품에 추가하는 기능이 아니라 제품 그 자체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맞춤 제조까지 닫힌 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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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희 릴리커버 대표는 개인화의 다음 단계로 ‘온디맨드 제조’를 제시했다. 피부를 진단한 뒤 기존 제품 가운데 하나를 골라주는 데서 끝내지 않고 진단 결과에 따라 성분과 투입량을 조정해 현장에서 제품을 제조하고, 사용 결과를 다시 다음 처방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릴리커버는 피부 진단과 처방, 조제, 사용 데이터 축적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하고 있다. 진단 결과에 따라 베이스와 효능 성분, 투입량을 정한 뒤 에센스·로션·샴푸·트리트먼트 등 맞춤 제품을 약 3분 안에 제조하고, 이후 피부 변화를 다시 분석해 다음 제품의 처방을 달리하는 구조다.
현재까지 축적한 글로벌 데이터는 약 78만건이다. 안 대표는 데이터를 쌓아 진단 결과만 제공하는 방식과 달리 제조와 재구매까지 연결해야 개인화가 지속적인 사업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드웨어 한 대를 판매하는 사업이 아니라 진단과 처방 엔진, 원료 공급, 데이터가 계속 순환하는 ‘인프라’에 가깝다는 것이다.
대량 생산을 전제로 한 기존 화장품 산업과의 차이도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동일한 완제품을 많은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대신 한 사람의 상태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적해 처방을 바꾸고 재구매로 연결하면 경쟁 기준이 판매량에서 고객 생애가치로 이동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안 대표는 “제품을 수출하던 K-뷰티에서 개인화를 만드는 시스템 자체를 수출하는 K-뷰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진단과 맞춤 제조를 연결하는 기준을 한국이 먼저 구축할 필요도 있다”며 “데이터 기반 진단부터 즉석 제조까지 이어지는 맞춤형 화장품의 표준화 방안을 정부에 건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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