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검색 방식 B2B로 확산… 포뮬레이터 신호·구조화된 정보 확보해야
화장품 원료 기업의 경쟁력이 제품 자체를 넘어 온라인에서 얼마나 정확하고 풍부하게 발견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원료 탐색과 비교, 추천 과정에 개입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나 영업력보다 구체적인 문제에 답할 수 있는 데이터가 중요해졌다는 분석이다.
퍼스널케어 원료 플랫폼 코발로(Covalo AG)의 얀 칠버스(Yann Chilvers) 창립자 겸 공동 대표이사는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코스메틱스 코리아 마케팅 트렌드 세미나에서 ‘글로벌 뷰티 트렌드와 AI가 성분 발굴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강연했다. 인코스메틱스 코리아는 코엑스에서 지난 1~3일 열린 퍼스널케어 원료 전문 전시회로, 글로벌 뷰티·화장품 전문 전시회 인터참코리아도 함께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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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발 트렌드 확산... 해외 혁신 수용은 더뎌
칠버스 대표는 한국은 글로벌 뷰티 시장에서 ‘혁신자’이자 ‘지각 수용자’라는 이중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에서 시작된 트렌드가 빠르게 세계로 퍼지고 있지만, 다른 시장에서 출발한 흐름을 국내 산업이 받아들이는 데는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진단이다. 그는 “많은 트렌드가 한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됐다”며 “동시에 한국은 다른 지역에서 시작된 트렌드를 채택하는 데 매우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프랑스 뒤를 바짝 쫒는 세계 2위 화장품 수출국으로, 전년 대비 성장률은 12.2%로 주요 수출국 가운데 가장 높다. 미국이 전체 수출의 19.1%를 차지했고 유럽 수출도 54% 늘어 한국발 제품과 트렌드의 확산세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2025년 헤어케어 수출은 39.2% 증가했다.
코발로의 글로벌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두피·모발 건강과 스키니피케이션 관련 검색은 41% 늘어 조사 항목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PDRN·엑소좀·EGF 등 바이오테크 활성성분은 38%, 감각과 텍스처 관련 검색은 22% 증가했다. 칠버스 대표는 “지난해 처음으로 검색과 트렌드 측면에서 헤어케어가 스킨케어를 넘어섰다”며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에서 한국이 매우 효과적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나타난 트렌드는 일본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6~12개월, 미국에는 12~24개월, 유럽에는 24~36개월의 시차를 두고 확산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대로 해외 트렌드가 한국에 들어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본에선 18개월, 스위스 30개월, 독일 36개월, 프랑스 48개월, 미국 60개월이나 걸렸다.
‘해결해야 할 문제’ 중심 검색
칠버스 대표는 시차를 줄이는 역할을 디지털 플랫폼이 맡고 있다고 봤다. 하나의 플랫폼에서 여러 시장의 공급업체와 포뮬레이터가 동시에 연결되면서 소비자 시장에서 나타난 검색 방식도 B2B 영역으로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과거엔 원료를 검색할 때, 주로 INCI명이나 상품명, 효능 표현처럼 이미 알고 있는 대상을 직접 찾는 방식이었다. 새로운 자외선 차단 필터가 필요하다면 곧바로 산화아연을 검색하는 식이다. 검색 데이터만으로는 해당 원료를 찾는 배경이나 해결하려는 문제를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AI 기반 검색에선 사용자가 자신의 상황과 요구 조건을 먼저 설명하면 대화를 통해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원료보다 '문제'가 검색의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하나의 원료도 텍스처 개선, 안정성 확보, 자외선 차단, 성능 향상 등 서로 다른 목적에 따라 별도로 제시된다.
칠버스 대표는 “고객을 앞에 두고 제품 설명을 반복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객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와 제품을 그 문제의 최적 대안으로 어떻게 포지셔닝할지를 생각해야 한다”며 “이제 가시성을 확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련성”이라고 강조했다.
검색 방식의 변화는 영업의 역할도 바꾼다. 과거에는 마케팅 예산과 전시회 등에서의 노출이 제품의 가시성을 결정했고, 영업 인력은 구매 여정 초반부터 개입했다. 현재는 구매자가 사전에 정보를 탐색한 뒤 공급업체와 접촉하기 때문에 영업은 문제를 구체화하고 적합한 해결책을 제안하는 컨설팅 역할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AI 에이전트가 시장, 규제, 가격, 성능, 리드타임, 지속가능성 등의 조건을 바탕으로 원료와 포뮬러를 선제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단계에선 구조화되고 기계가 읽을 수 있는 제품 데이터가 검색 노출을 좌우하게 된다.
데이터 부족이 장벽
기업들의 AI 도입 수준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코발로가 업계 관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선 많은 기업이 생성형 AI에 질문하거나 문서를 작성하는 수준으로 기술을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업무에 AI 도구를 덧붙였을 뿐, 업무 과정 전체를 AI 중심으로 재설계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활용도는 필요한 맥락이 적은 업무에서 높았다. 일반적인 시장 트렌드를 묻거나 이메일을 다듬는 일에는 제한된 정보만으로도 AI를 사용할 수 있다. 반면 포뮬레이션 설계나 규제 검토에는 원료 조성, 임상 결과, 국가별 법규 등 방대한 내부 데이터가 필요해 적용 속도가 느렸다.
가장 큰 장애물은 데이터였다. 자료가 여러 시스템에 흩어져 있거나 최신 상태로 관리되지 않으면 AI가 신뢰할 만한 결과를 내기 어렵다. 내부 전문성 부족도 확산을 제한했으며, 대기업에선 레거시 시스템과 복잡한 인프라, 데이터 보안과 컴플라이언스가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했다.
칠버스 대표는 “많은 기업이 소규모 예산으로 AI 시범사업을 시작하지만 95%가 실패한다”며 “적절한 데이터 기반이 없으면 그 위에 구축하는 모든 것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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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데이터의 중요성은 AI 추천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비즈니스 오브 패션이 제미나이, 클로드, 딥시크, 오픈AI 등에서 1만2000건 이상의 검색을 실시한 결과, 매출 상위 기업과 AI가 자주 추천한 브랜드의 순위는 일치하지 않았다. 로레알과 유니레버 산하 브랜드는 다수 포함됐지만 LVMH 뷰티, 샤넬 뷰티, 코티, 가오 등은 추천 상위 10위에 들지 못했다.
원료 공급업체도 예외가 아니다. 경쟁사에 노출될 것을 우려해 제품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포뮬레이터가 전시회 방문 전에 공급업체를 탐색하고 비교하는 과정에서 후보군에서 제외될 수 있다.
칠버스 대표는 “데이터는 곧 발견 가능성”이라며 “데이터 기반과 온라인 존재감에 투자하지 않는 기업은 점차 보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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