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뷰티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 기준이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소비자들은 가격을 낮춘 제품보다 가격을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요구하고, 기능적 효능을 넘어 위안과 자기표현, 감각적 안정까지 뷰티 제품에 기대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지난달 27~29일 펼쳐진 '코스모뷰티 서울 2026'의 부대행사로 마련된 세미나에선 국내외 뷰티 소비자들이 가격, 효능, 정서적 가치를 더 정밀하게 따지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의 저스틴 최(Justin Choi) 한국 지사장과 글로벌 트렌드 컨설팅사 스타일러스(Stylus)의 리사 페인(Lisa Payne) 뷰티 트렌드 디렉터는 소비자 인식 변화가 시장과 브랜드 전략에 미치는 영향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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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이유’ 설득할 수 있어야
경기 불확실성은 소비를 멈추게 하기보다 더 따져보는 소비를 만들고 있다. 유로모니터 조사에서 아시아 소비자의 47%는 ‘불확실성 속에서 소비를 줄이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같은 시장에서 뷰티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고, ‘웰니스 관련 지출을 늘리겠다’는 응답도 37%로 나타났다. 소비자가 무조건 지갑을 닫는 것이 아니라, 가치가 확인되는 영역에는 돈을 쓰겠다는 의미다.
최 지사장은 "오늘날 소비자들은 단순하게 본인을 예쁘게 보일 수 있는 제품을 선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효과가 증명되고 장기적으로 뷰티와 웰니스를 지원해 줄 수 있는 제품을 찾고 있다"며 "이른바 가치 소비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이커머스 확산은 APAC 뷰티 시장의 채널 구조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APAC 전체 이커머스 침투율은 2020년 25%에서 2025년 33% 수준으로 높아졌다. 한국에선 온라인 구매가 일상화되면서 올리브영을 제외한 뷰티 전문 채널의 입지가 좁아졌다. 대신 오프라인에선 가격 경쟁력이 압도적인 다이소 같은 저가 채널이 부상했다.
이 같은 환경에서 K-뷰티 기업들은 단순한 저가 경쟁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 최 지사장은 "쇼피·라자다·틱톡샵에서 소비자가 초 단위로 가격을 비교하고, C-뷰티가 강력한 공급망을 바탕으로 동남아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며 "프리미엄과 동일한 효과를 10분의 1 가격에 제공한다는 듀프 메시지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고 짚었다.
따라서 가격을 낮춰 경쟁하기보단 왜 이 가격을 지불해야하는지 설득하는 것이 현 시점 K-뷰티의 핵심 과제가 됐다.
결국 가격을 납득시킬 수 있는 제품 설계가 필요하다. K-뷰티 브랜드는 소용량 제품으로 진입 장벽을 낮추고, 멀티 기능 제품으로 선택의 합리성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소비자의 가격 저항을 줄여야 한다. 성분과 효능에 자신이 있다면 패키지 전면에서 근거를 바로 보여주는 전략도 좋다. 핵심은 "소비자가 매장에서 제품을 잡았을 때 3초 안에 가치를 알 수 있게 설계해야 한다"는 것.
효능을 수치로 증명하는 것도 가격 설득의 근거가 된다. 최 지사장은 아시아 소비자의 42%가 이미 더마 코스메틱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며, '클리니컬 컨피던스(Clinical Confidence)'가 주요 트렌드로 떠올랐다고 소개했다.
최 지사장은 "기능성 화장품 인증은 이제 기본값이고, 수치가 제품의 경쟁력"이라며 "임상 테스트를 완료했다면 정확한 수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가장 강력하고 안전한 방식"이라고 제언했다.
뷰티를 건강의 일부로 보는 인식도 확대됨에 따라, 헬스 스팬(Healthspan, 건강수명)을 활용하는 전략도 제시됐다. 유로모니터 조사에서 한국 소비자의 54%는 뷰티를 아름다움이 아니라 '건강해 보이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었다. 환경으로부터 피부를 지키는 방어 제품, 먹고 바르는 제품을 함께 설계하는 이너·아우터뷰티, 40~60대 여성 전용 라인 등이 성장 가능성이 있는 영역으로 꼽혔다.
최 지사장은 "뷰티와 헬스케어의 교차점을 먼저 선점하는 브랜드가 앞으로의 10년을 가져갈 것"이라며 "리세션 플랜의 핵심은 가치 증명, 클리니컬 컨피던스의 핵심은 효능 검증, 헬스 스팬 플랜의 핵심은 뷰티와 헬스케어의 교차점 선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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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소비자, 효능·표현·감각으로 분화
유로모니터가 가격과 효능을 납득시킬 근거를 강조했다면, 스타일러스는 소비자들이 왜 그 근거를 요구하는지에 주목했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뷰티 소비자는 단순한 제품 구매보다 자신의 생활방식과 정서에 맞는 선택을 찾고 있다는 진단이다.
페인 디렉터는 "미래 뷰티 소비자 그룹은 실용적 성능, 파격적 표현, 부드러운 감각성이라는 세 가지 큰 흐름의 영향을 받는다"며 "각 그룹의 인구학적 특성, 주요 영향 요인, 선호 브랜드와 제품, 브랜드가 이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선 시장에서는 '실용적 성능(Pragmatic Performance)'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들은 화려한 마케팅과 매끄러운 스토리텔링보다 사실과 정직함, 투명성에 주목한다. 가장 효율적인 제품과 루틴을 찾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브랜드가 내세우는 가치가 실제로 검증됐는지를 까다롭게 따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 테마의 대표적인 그룹인 '액티브 리커버리 옵티마이저(Active Recovery Optimizers)'는 신체 데이터 측정과 확실한 회복 효능을 기준으로 제품을 선택하는 성향을 보인다. 이와 함께 화장품 성분의 투명성을 까다롭게 따지며 초가공식품과 합성 성분을 전면 거부하는 '진정한 자연주의자(True Naturalists)' 역시 실용적 성능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소비자군이다.
효능 중심의 소비 경향과 달리, 주관적인 자아를 강렬하게 표출하는 '파격적 표현(Disruptive Expression)' 흐름도 뚜렷하다. 이는 젊은 소비자가 메이크업을 정체성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쓰는 현상이다. 파격적 표현을 즐기는 소비자들은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를 넘나들며 애니메이션, 게임, 코스프레, 음악 등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뷰티 스타일로 재조합한다.
일본 마법 소녀 문화와 Y2K, 게임 감성을 결합한 '신비로운 소녀(Magical Girls)'와 고딕, 다크 로맨스, 젠더 유동성을 표현하는 '반항하는 완벽주의자(Chaotic Post-Perfectionists)'가 이 흐름에 포함됐다.
페인 디렉터는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는 젊은 소비자들에게 풍부한 놀이터가 된다"면서 "정치적 격변과 경제적 불확실성, 사회적 도전의 시기에 현실 도피와 노스탤지어, 유쾌한 장식은 이에 대한 대응 방식으로 활용된다"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부드러운 감각성(Soft Sensorial)'은 번아웃과 피로감이 커진 소비자가 뷰티에서 감각적 안정을 찾는 움직임이다. 이들은 향, 바디케어, 자연 기반 원료, 명상과 호흡 같은 경험을 통해 몸과 마음을 함께 관리하려 한다. 뉴로코스메틱, 감정 상태를 겨냥한 향, 어댑토젠 음료, 누트로픽 보충제, 버섯 성분은 이 흐름과 연결되는 카테고리로 언급됐다.
브랜드 경험도 감각적 회복을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기존의 파티형 인플루언서 행사보다 자연과 웰빙을 중심에 둔 리트릿, 사운드 힐링, 호흡 프로그램처럼 소비자가 회복감을 체감할 수 있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빈티지와 장인정신, 클래식 향수, 정교한 패키징에 대한 관심도 빠르게 바뀌는 소비문화에서 벗어나 안정감을 찾으려는 심리와 맞닿아 있다.
페인 디렉터는 "각 소비자 그룹은 저마다 다른 관심사와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모두 현재의 소비 경쟁에서 벗어나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위안과 평온함을 찾고자 한다"며 "브랜드는 원료의 투명성, 디지털 문화와 자기표현의 언어, 감각적 회복 경험과 헤리티지처럼 소비자 그룹별로 반응하는 지점을 다르게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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