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을 둘러싼 소비자 피로가 쌓이면서 패키징 전략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단순한 '재활용 가능' 문구만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지고, 포장 자체를 줄이고 실제로 작동하는 재사용 시스템을 설계하는 브랜드만이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민텔(Mintel)이 최근 공개한 '2026 글로벌 패키징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여전히 환경 문제와 지속가능성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브랜드가 강조하는 '재활용' 메시지에 대한 신뢰는 점차 약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텔은 "많은 브랜드가 ‘재활용 가능’이라고 표시하지만 재활용 인프라나 소재 구조 때문에 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소비자들은 이제 '재활용 가능'과 '실제로 재활용되는 것'을 구분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특히 지난 10년간 기업들이 지속가능성 목표를 경쟁적으로 제시해 왔지만 실제 변화 속도는 이에 미치지 못하면서 소비자 인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 ‘100% 재활용 가능’ ‘제로 웨이스트’ '탄소 중립' 같은 표현이 확산됐지만 실제로는 복합 소재 구조나 지역별 재활용 인프라 문제로 대부분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활용을 둘러싼 피로감이 커지면서 재활용 실천도 줄어들기 시작한 것으로 민텔 조사 결과 나타났다. 이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2025년 한해동안 ‘패키징을 재활용했다’는 응답률은 2021년 대비 낮아졌다. 독일은 67%에서 54%로, 스페인은 76%에서 67%로 감소했고 미국도 54%에서 40%로 떨어졌다.
‘재활용 피로’는 포장 의존도가 높은 산업에 더 큰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화장품 산업은 용기 구조가 복잡하고 포장 요소가 많은 업종이다. 펌프나 스프레이처럼 서로 다른 소재가 결합된 부품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구조적으로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도 적지 않다.
소비자들이 환경 문제 해결에서 브랜드의 책임을 크게 보고 있다는 점도 업계 대응 필요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민텔 조사에 따르면 ‘환경 문제 해결에 브랜드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중국 86%, 남아프리카공화국 83%, 멕시코 77%, 프랑스 65%, 캐나다 62%로, 모두 절반을 훌쩍 넘었다.
민텔은 "지켜지지 않는 재활용 시스템의 한계에 실망한 소비자들을 위해 브랜드는 고객과 소통하고 파트너십을 맺는 방법을 재고해야 한다"면서 "투명성 정직성 그리고 실질적 행동을 친환경 패키지의 새로운 가치로 삼아야 한다"고 향후 전략을 제시했다.
먼저 포장 자체를 줄여야 한다. 상당수 플라스틱이 재활용 시스템을 통과하지 못하고 매립되거나 소각되고 있으며, 회수된 플라스틱 역시 동일한 제품으로 다시 사용되기보다 품질이 낮은 다른 제품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다.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 폐기물이 다른 국가로 수출되는 문제도 이어지고 있다.
이를 위해 △단일 소재 구조를 확대하고 △불필요한 부자재를 줄이며 △외부 포장과 이중 포장을 줄이고 △포장 크기를 축소하는 방식 등이 제안됐다.
다음으로 재사용과 회수를 포함한 순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재활용 가능한 용기를 쓰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한 만큼, 용기 반납과 리필, 재사용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하나의 패키지가 여러 번 쓰이도록 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민텔은 선도 기업들이 패키징을 일방향 정보 전달 수단이 아니라 양방향 채널로 전환해야 한다고 봤다. 영국 리테일러 오카도(Ocado)는 2D 바코드를 포장에 넣어 소비자가 재사용·회수 프로그램에 바로 접속하고, 참여에 따른 보상을 받도록 했다. 기업 입장에선 공급망 전반에서 패키징 이동을 추적할 수 있고, 소비자는 단순 분리배출을 넘어 순환 시스템에 직접 참여하는 경험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패키징 지속가능성에 대한 투명성과 커뮤니케이션 강화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소비자들은 ‘포장재 뒷면의 기호나 슬로건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재활용 방법과 실제 효과를 투명하게 설명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재활용 로고보다 실제로 얼마나 회수·재사용됐는지, 어느 정도 폐기물을 줄였는지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중시한다는 것.
예를 들어 영국 바디케어 브랜드 라독스(Radox)는 자사 용기가 ‘50%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해 색이 더 어두워졌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 덕분에 매년 450톤의 신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있다는 점을 함께 공개해 신뢰를 구축했다. 재활용이 완전하지 않다는 점과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오히려 드러내는 커뮤니케이션이 소비자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다.
민텔은 "브랜드와 소비자의 관계는 '설득'에서 '파트너십'으로 이동할 것"이라며 "재활용 신화에서 벗어나 '적을수록 좋다(less is more)'는 원칙에 따라 포장을 설계하는 브랜드가 앞으로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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