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OEM·ODM 생산 방식 보편화로 뷰티 산업의 진입 장벽은 낮아졌지만 경쟁 강도는 더욱 강화됐다. 미국 뷰티산업협회(PBA)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 ‘산업 구조 분석’에서 제조 접근성 확대는 브랜드에게 기회이자 위기라고 진단했다.
뷰티 산업은 오랫동안 대규모 자본과 생산 설비를 전제로 한 구조 속에서 운영돼 왔다. 자체 공장 보유와 대량 생산, 유통망 선점이 시장 진입의 기본 조건이었기 때문에 신규 브랜드 참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OEM·ODM의 등장으로 설비와 생산에 대한 비용 부담이 낮아지면서 자본 규모와 관계없이 제품을 기획하고 시장에 출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제조 공정이 세분화되고 필요한 단계만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생산 옵션이 늘어나면서 브랜드 설립과 제품 출시까지 걸리는 시간과 비용도 크게 줄었다. PBA는 제조 접근성 확대가 뷰티 산업의 진입 장벽을 실질적으로 낮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제조 접근성 확대는 마이크로 브랜드와 인디 뷰티 브랜드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과 이커머스 환경이 확산되면서 브랜드는 초기 단계부터 소비자와 직접 연결되는 구조를 갖추게 됐다. 디지털 채널을 활용한 브랜드 스토리 구축과 커뮤니티 형성은 대규모 유통 계약이나 마케팅 예산 없이도 가능해졌고, 소비자 반응은 제품 개선과 라인업 조정에 빠르게 반영된다. PBA는 이러한 직접 소통 구조가 초기 브랜드의 시장 적응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소비자 인식 변화 역시 제조 접근성 확대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앤컴퍼니(McKinsey & Co)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뷰티 소비자의 47%는 구매 결정 과정에서 ‘해당 브랜드가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지역 기반 사업자인지를 고려한다’고 답했다. 55%는 ‘새로운 브랜드를 구매하는 데 거부감이 크지 않다’고 밝혔다. 같은 조사에서 87%의 소비자는 ‘소규모 사업자가 만든 제품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답하기도 해, 브랜드 규모보다는 가치와 신뢰를 중시하는 소비 성향이 확산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지속 가능한 뷰티' 검색 구글 트렌드. ⓒPBA
지속가능성이 주요 판단 기준으로 자리잡으면서 성분과 제조 과정에 대한 관심도 뚜렷해지고 있다.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Euromonitor International)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소비자의 26%는 매장에서 모바일 앱을 활용해 제품 성분 정보를 직접 확인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어테스트(Attest) 조사에 따르면 Z세대의 67%는 지속가능성을 우선 가치로 인식하고 있으며, 56.2%는 ‘지속가능한 제품에 추가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러한 소비자 태도는 투명한 제조 구조와 소규모 생산 방식을 채택한 브랜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
제조 접근성 확대는 생산 전략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대량 생산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소량 생산이 하나의 운영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소량 생산은 과잉 재고와 폐기 부담을 줄이고, 시장 반응에 따라 생산 규모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용 관리와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한 선택지로 평가된다. 최소 주문 수량 부담이 낮은 생산 환경은 초기 브랜드의 재무적 리스크를 줄이며, 실험적 제품 출시를 가능하게 한다. PBA는 "이러한 생산 방식이 자본 여력이 크지 않은 브랜드의 시장 진입을 현실화하는 조건"이라고 분석했다.
검색 데이터 역시 소비자 관심 변화를 뒷받침한다. 구글 트렌드 기준 ‘인디 뷰티’ ‘소량생산 스킨케어’ ‘로컬 뷰티 브랜드’ 등의 검색어는 최근 몇 년간 검색 빈도가 꾸준히 증가했다. 소비자가 대형 브랜드 위주의 선택에서 벗어나, 생산 규모가 작더라도 제조 방식과 브랜드 배경이 명확한 제품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이제 소비자 선택 기준은 제조 정보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성분 구성, 원산지, 제조 과정, 환경적 영향 등이 구매 판단의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PBA는 "제조 방식과 기업의 운영 태도가 브랜드 신뢰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브랜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조 접근성 확대는 브랜드에 기회이자 위기로 작용한다. 진입 장벽이 낮아진 만큼 경쟁 강도는 높아졌고, 품질 관리와 신뢰 확보의 중요성도 커졌다. 생산이 쉬워졌다는 사실만으로 브랜드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PBA는 "제조 접근성 확대는 브랜드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면서 "매출 규모나 시장 점유율뿐 아니라 소비자와의 관계, 제조 투명성, 환경과 지역 사회에 대한 책임이 브랜드 가치 판단 요소로 작용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