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에서 퀀텀점프까지" 에이비엘바이오 이상훈 대표의 성공 공식
연구자에서 창업가로 이어진 이상훈 대표의 바이오 산업 생존 경험 공유
기술이전 통한 자금 조달과 서바이벌 중심 경영 전략
글로벌 빅파마 협업과 미국 현지 자회사 설립으로 확장 전략 전환
권혁진 기자 hjkw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1-13 06:00   수정 2026.01.13 06:06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 위치한 레드우드 시티 폭스 시어터에서 10일(현지시간) 열린 'UKF 82 스타트업 서밋 2026’에서 에이비엘바이오 이상훈 대표가 ‘Game-Changing Biotech Company’를 주제로 연구자에서 창업가로 이어진 여정과 바이오 기업의 생존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약업신문

미국 실리콘밸리 폭스 시어터. 현지시간 10일 열린 UKF(United Korean Founders) 주최 ‘82 스타트업 서밋 2026’ 무대에 선 에이비엘바이오 이상훈 대표는 성공담부터 꺼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바이오 산업의 냉정한 현실을 먼저 짚었다.

“에이비엘바이오의 성장은 운이 아니라, 오래 버텨온 결과입니다.” 그는 바이오 산업의 현실과 선택의 순간들을 차분히 풀어냈다.

이 대표의 이력은 흔히 말하는 ‘정석 코스’와는 거리가 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 생물과 82학번. 약대 진학에 실패해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는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대학원에 갔다”고 회고했다. 이후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분자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95년 하버드 의대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연봉은 2만2000달러. 생계를 위해 아내는 실리콘밸리로 자리를 옮겼고, 그는 두 번째 포닥을 선택했다.

연구자로 남을 수 있는 길도 있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스탠퍼드 지도교수로부터 “미국에서 교수 자리를 얻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를 받은 뒤 그는 산업계로 눈을 돌렸다. 카이론(현 노바티스 합병), 제넨텍, 엑셀리시스, 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 빅파마와 바이오텍을 거치며 항암제 개발 현장을 경험했다. 이 시기의 축적된 경험은 훗날 에이비엘바이오의 전략을 설계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됐다.

창업의 이상과 현실, 첫 번째 좌절

이 대표는 파멥신 공동 창업을 통해 한 차례 창업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는 “바이오 기업이 과연 어떤 비즈니스 모델로 생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기술이전 중심 산업 구조에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결국 회사를 떠나 한화케미칼 바이오 부문에 합류했다.

그곳에서 마주한 현실은 냉혹했다. 바이오 산업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대기업 조직 안에서 그는 당시를 두고 “인생의 바닥을 찍은 시기”라고 표현했다. 2014년 한화가 바이오 사업 철수를 결정하면서, 그는 14명의 동료와 함께 다시 창업을 선택했다. 에이비엘바이오의 출발점이었다.

“한국에서 사이언스로 넘버원이 되자”

2016년 설립된 에이비엘바이오는 출발부터 분명한 목표를 세웠다. ‘South Korea No.1 Biotech in Science’. 단순한 매출이나 이벤트성 성과가 아니라, 과학 자체로 평가받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기술 선택도 과감하게 진행했다. 이중항체 기반 항체 엔지니어링을 중심으로, 기존 커리어와는 다른 신경 퇴행성 질환 영역에 도전했다. 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병, BBB(Blood-Brain Barrier)를 넘는 항체 전달 기술은 성공 가능성보다 실패 확률이 더 크게 거론되던 분야였다.

중추신경계 질환은 실패 확률이 높고 개발 기간이 긴 분야다. 그럼에도 에이비엘바이오는 항체의 구조적 특성과 수용체 매개 전달 기전을 결합해 BBB 투과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을 택했다. 이는 단기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과학적 경쟁력을 우선한 선택이었다.

초기 시장 환경은 나쁘지 않았다. 한국투자파트너스와 DSC인베스트먼트로부터 2016년 약 90억원을 시작으로, 2017년 200억원, 2018년 7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상장을 통해서는 약 900억원을 조달했다. 그러나 상장 직후 주가는 공모가 1만5000원을 밑돌며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 대표가 말한 “상장은 끝이 아니라, 생존의 시작”이라는 표현이 현실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에이비엘바이오 방향을 바꾼 기술이전

에이비엘바이오의 흐름이 바뀐 시점은 2022년 1월이다.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를 계기로 사노피와 체결한 기술이전 계약은 회사에 실질적인 숨통을 틔워줬다. 업프런트 7500만 달러를 포함해 단기 마일스톤까지 더해지며 의미 있는 현금 유입이 발생했다.

이후에도 기술이전은 이어졌다. 2025년 4월 GSK와 BBB 셔틀 플랫폼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며 5000만 달러의 업프런트를 확보했다. 개별 파이프라인이 아니라 플랫폼 자체의 가치를 인정받은 사례였다. 이어 일라이 릴리와의 협업에서는 업프런트 4000만 달러와 함께, 국내 바이오기업 최초로 글로벌 빅파마 지분 투자를 이끌어냈다.

이 대표는 “바이오 산업은 롱 게임”이라고 강조했다. GSK 딜 역시 수년간 논의가 중단됐다가, 조직 개편 이후 불과 3개월 만에 급물살을 탔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버티는 힘이라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강연에서 바이오 기업의 생존 조건으로 현금 흐름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아무리 경쟁력 있는 기술이 있어도 자금이 바닥나면 회사는 그 순간 더 이상의 선택지를 가질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창업 이후 가장 중요하게 삼아온 기준 역시 “회사가 다음 해까지 살아남을 수 있느냐”였다고 설명했다.

서바이벌 이후 퀀텀점프

현재 에이비엘바이오는 자체 및 공동 개발 파이프라인 8개 이상을 임상 1상 이상 단계에서 운영하고 있다. 컴퍼스 테라퓨틱스에 기술이전된 항암 파이프라인은 담도암 적응증을 중심으로 임상을 이어가고 있으며, 상업화 시 로열티 수령 가능성도 남아 있다. 위암 파이프라인 역시 중장기적으로 주목받는 자산이다.

글로벌 전략도 진화하고 있다. 이 대표는 “한국 기업이 미국에 지사를 두는 방식으로는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에 미국 중심의 자회사 ‘네옥바이오(Neok Bio)’를 설립하고, 현지 CEO 체제와 미국 자본시장을 통한 시리즈B 조달까지 염두에 둔 구조를 설계했다.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엑시트를 통해 자본을 다시 한국으로 환류시키겠다는 구상이다.

강연 막바지에서 이 대표는 ‘Bold and Brave(대담함과 용기)’라는 단어를 꺼냈다. 창업 10년 차에 이르러서야 꺼낼 수 있는 단어였다. 에이비엘바이오의 성장은 단기간의 주가 반등이나 일회성 이슈 성과와는 다른 궤적을 그려왔다. 실패 가능성을 전제로 한 기술 선택과 장기적인 관점의 기술이전, 무엇보다 살아남는 것을 우선에 둔 판단이 지금의 위치를 만들었다.

이 대표는 “바이오에서 성장은 선택이지만, 생존은 필수”라며 “끝까지 버텨낸 기업만이 다시 도약할 수 있다”라는 말을 끝으로 강연을 마쳤다.

에이비엘바이오 이상훈 대표.©약업신문
'UKF 82 스타트업 서밋 2026’ 현장.©약업신문
'UKF 82 스타트업 서밋 2026’ 현장.©약업신문
'UKF 82 스타트업 서밋 2026’ 현장.©약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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