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 유통일원화 폐지 주장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최근 병협이 외래조제실 직거래 허용을 주장하는 건의서를 법제처에 전달하며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유통일원화 폐지 주장은 연례행사처럼 진행돼 왔지만, 올해는 규제개혁위원회가 유통일원화 관련 법령정비를 밝힌(지난해) 해로 의미가 각별하기 때문.
더욱이 국내 의약산업 발전과 비용절감을 위해 유통일원화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저의가 의심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직거래에 따른 부조리 제거와 의료비 절감 등 유통일원화를 통해 정부·의약산업·국민이 얻는 유무형의 효과를 등한시하고, 단지 '과거의 영화'을 되찾기 위한 것 아니냐'며 의혹의 눈초리도 보내고 있다.
종합병원 유통일원화는 병원과 제약사간 리베이트수수료 관행 등 의약품직거래에 따른 부조리 제거(단기)와 유통일원화 실현(장기)을 통해 의료비를 절감, 궁극적으로 국민부담 감소 차원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이다.
직거래 부작용 해소 방안
국내보다 의약산업이 발전한 선진국에서도 유통일원화는 대세다.
도매협회가 추정한 '2002년 말 국가별 도매 및 직거래 유통비율'에 따르면 국내는 도매유통비율이 48%에 불과한 반면 일본 92%, 독일 93%, 영국 91%, 프랑스 85%, 미국 79%에 이른다. 심지어 덴마크는 100%.
오랜 세월동안 시행착오와 경험을 바탕으로 유통일원화 방식이 유통비용을 최소화하고 유통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최선의 유통방법임을 터득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유통경제학적으로 볼 때 유통비용은 거래처에 대한 방문 및 거래회수에 비례해 증가한다는 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물류비도 마찬가지. 직거래 체제하에서는 요양기관에 대한 제약업체간 중복배송 등으로 유통비용(물류비) 과다발생이 불가피하다.
또 다품종·소량·다빈도 배송을 특징으로 하는 의약품물류의 특성상 물류설비의 자동화가 용이하지 않아 수 작업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차량의 운송적재효율이 저하될 수밖에 없고, 제품 파손율도 높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국내 의약품산업은 타 산업보다 물류비 비중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매출액 증가율보다 높은 물류비 증가율이 수익성 악화를 초래한다는 점도 거론된다.
예로 1996년 경우 매출액 증가율은 11.5%, 물류비 증가율은 12.6%이며 의약품산업에 있어 물류표준화율은 약 5%로 전제산업 평균치인 10% 보다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었다.
종합병원 유통일원화정책이 없었다면 물류비 증가 추세는 더욱 심화됐을 것이라는 것이 관련업계의 분석이다.
판관비도 벗어나지 않는다. 종합병원 직거래가 허용됐던 1992년 제약업계의 매출액 대비 판매비 및 일반관리비(유통비용의 비중이 큼) 비율은 37.2%로 매우 높았으나 종합병원에 대한 직거래 금지제도가 시행된 1994년 이후부터는 이 비율이 감소하기 시작해 2001년 32.21%로 감소됐다.
감소추세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내 제약사 연구개발 전념 밑거름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업과 유통까지 하려다 보니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미흡, 신약개발이나 신제품개발이 어려웠다는 것은 제약계에서도 지적하는 부분이다.
지금은 연구개발 의욕이 고취되고 있지만 안 쓰고는 못 뱃길 신제품을 개발해 논 곳은 많지 않고, 한 성분의 약을 100여 개 이상의 회사에서 생산해내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
같은 물건을 낼 경우 살아 남는 길은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길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연구개발을 등한시하고 부조리한 판촉에 치중했기 때문이라는 것.
실제 '매출대비 판관비 및 일반관리비 비교'( 2002년 기업경영분석, 한국은행)에 따르면 매출액대비 판관비 비율이 제약사는 평균 32.21% 인데 반해 국내 총제조업 평균은 12.81%에 불과하다.
더욱 문제는 이 상태가 지속될 경우 국내 제약사들은 선진 외국제약사들에 예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제약사 개발부의 한 관계자는 " 유통일원화와 별개로 제품력을 앞세운 외자 제약사들의 점유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고 다빈도처방 의약품도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국내 제약사가 비용절감 등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이 같은 양상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며 " 지금같이 영업 판촉 등에만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하지 말고 연구개발에 집중투자해야 한다. 이렇지 않으면 '외자 제약사 제품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통개혁이 폐지 전제조건
실제 정부의 1994년 종합병원유통일원화 규정은 제약사와 병원간 의약품 채택과 관련한 부조리근절과 함께 도매업소를 통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고, 도매유통을 통하지 않고서는 국내의약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 주 이유였다.
이후 병원계와 제약계가 각종 이유를 대며 폐지를 주장했고, 2002년 규제개혁위원회는 종합병원 의약품직거래 허용 등 법령개정을 2003년 하반기에 추진키로 한 것.
하지만 여기에는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정부는 지난 1997년부터 유통개혁을 추진, 의약품공동물류센터와 의약품유통정보시스템을 등장시켰다.
이 개혁사업이 완성되면 직거래규정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시 정부측 입장이란 사실이다.
지난해 규제개혁위원회도 올 하반기 법령개정을 비추며 '의약품유통개혁 정착으로 유통의 투명성이 확보된 이후 종합병원 의약품 직거래 허용추진'이란 단서를 달았다.
복지부도 같은 입장.
당시 관계자는 " 유통일원화는 제약과 병원간 의약품 채택과 관련한 부조리를 막기 위해 시행됐다. 풀어버리면 같은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 풀어도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을 인프라가 구축되면 언제든 풀겠다"고 말했다.
언젠가 가능하겠지만 우선 국내의약산업 발전을 위해 도매와 제약이 각각 제 기능에 충실해 주는 것이 최선이고, 유통개혁이 이뤄지며 도매업계가 일부 정리되면 간납제도도 환경변화와 함께 자연히 소멸될 것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유지 배경은 이미 수 차례에 걸쳐나 온 상태.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주장의 저의를 의심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종합병원 유통일원화 규정이 제정되게 된 동기 중 하나는 1993년 6월경 경찰이 의약품유통과 관련한 부조리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결과 종합병원과 제약사간 리베이트관행이 드러난 이후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당시 보건사회부는 이 같은 부조리를 근절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찾다가 종합병원의 경우 도매상을 통해 거래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책이라는 결론에 도달, 종합병원 유통일원화 규정을 신설한 것으로 알려진다.
적은 도매마진(5-10%)을 갖고 거액의 거래 부조리 금액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부조리가 사라진다는 것. 즉 의약품 거래에 따르는 부조리한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서라도 유통일원화는 필요했다는 의미다.
도매업계서는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고 있다.
그 동안 관행처럼 받아오던 리베이트수입이 줄어 들어 불만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 불만이 자유주의 표방아래 '경쟁 제한적 규제'라는 잘못된 주장으로 나타나기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도매자정 통해 본 뜻 유지·발전시켜야
물론 자유경쟁, 병원과 거래과정에서 저가납품과 수금% 적용 가능성, 구입가 미만 납품으로 인한 제약사 피해 발생, 유통마진 할인 판매행위 등으로 제약사의 의지와 관계없이 보험약가 인하 등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도매업계에서도 현재 유통일원화의 본 뜻을 잘 발전시키지 못하고 훼손시키는 행동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매업소 과포화, 유통업자로서의 사명감과 제대로 된 시설 인력을 갖추지 않은 도매업소 난립은 도매업계뿐 아니라 관련업계에 피해를 주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도매업계에서도 비판과 갈등이 항상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 수혜를 입으면서 정부의 의도를 개혁과 발전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욱이 도매업소의 난립을 야기시킨 시설면적 기준 폐지 이후에는 관련단체들의 지적이 맞아 떨어지는 모습도 연출되고 있다.
이 때문에 도매업계에서도 정화와 자정 등 각고의 노력을 통해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유통일원화는 전체 의약산업 발전이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 도매업계 주장이다.
더욱이 도매업계에서 벌어지는 일부 부조리의 이면에는 포화를 넘어 과포화가 된 업소수가 무시 못할 비중으로 자리잡고 있다.
결국 정부 제약업계 도매업계가 힘을 모아 문제가 있는 도매업소들을 걸러내는 과감한 작업을 하는 가운데, 근본적으로 다른 목적을 갖고 추진된 유통일원화는 당초 의도와 방침대로 추진되고, 오히려 확대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
도매업계의 시각도 ' 정부와 업계의 노력을 통해 유통개혁이 연속성을 갖고 추진돼 개혁사업이 완료되면 그때 가서 풀어도 된다'는 데로 모아진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물류가 의약품유통의 중심점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병의원 및 약국이 도매상을 통해 의약품을 구입하도록 확대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의약품판매비 및 물류비 절감으로 국민의 약제비 부담을 경감시켜주기 위해 선진 의약품유통체계인 유통일원화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