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보건의료발전협의체(보발협) 내 대체조제 사안을 다루는 의‧병‧약 위원회를 만들어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2일 열린 제12차 보발협 회의에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참석하면서 의‧약 협의 가능성에 쏠렸던 관심을 의식한 발언이다. 양측이 팽팽하게 대립된 사안인 만큼 복지부의 중간다리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복지부가 중재역할을 할 수 있을지조차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복지부 김국일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지난 18일 열린 전문기자단 간담회에서 “대체조제 명칭 문제와 DUR을 통한 사후 통보 등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는 만큼 회장들이 참여하는 보발협에서는 구체적인 논의를 하지 못했다”며 “약계와 의‧병쪽 의견이 나눠져 있기 때문에 보발협 내 대체조제와 관련한 위원회를 만들어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체조제 활성화를 위한 동일성분조제 법안은 약사 출신인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약사법 개정안이다. 대체조제라는 용어를 ‘동일성분조제’로 변경하고, 약사가 대체조제 사실을 처방 주체인 병‧의원이 아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사후 통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대체조제를 둘러싼 의‧약 갈등은 처방권과 조제권 등 의약품 주도권에 영향을 미친다는 찬반 대립이 팽팽한, 의약분업 이후 20년 이상 이어져 온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9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에서 공동생동(생물학적동등성시험) 허가 1+3 제한법과 CSO(영업대행사) 지출보고서 제출 의무화 법안 등은 통과됐지만, 대체조제 활성화를 위한 동일성분조제 법안은 위원간 의견 대립 끝에 결국 문턱을 넘지 못했다.
복지부 하태길 약무정책과장도 “지난달 있었던 법안심사소위에서 대체조제 사안에 대해 서영석 의원과 신현영 의원의 의견 대립이 있었고, 결국 복지부가 의약간 합의안을 도출하라는 주문이 나왔다. 보발협에서 다뤘지만 비급여 얘기가 길어지다보니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용어 문제도 있는 만큼 분과협의체에서 논의될 예정”이라며 “데드라인이 정해진 것은 아니고, 법안소위에서 빨리 처리하라고 주문해 바로 보발협에 상정했으며, 신경쓰고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김국일 과장은 “이 문제에 대해 실무 협의체를 운영하면서 복지부 입장에서는 중간에서, 국민 입장에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 합의를 도출하려고 노력할 것”이라며 “국회 법안소위에서도 복지부가 의‧약간 충분한 의견 수렴을 통해 보고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에 단발성이 아닌 여러 번의 회의를 통해 도출 가능한 방안을 마련해보려고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안소위 사이에 보발협이 2주에 한 번 개최되기 때문에 실무회의 때 우선 논의하고 분과위원회에서 따로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국회 복지위는 국무총리 임명 과정에서 불거진 여야갈등으로 중단된 제2법안심사소위와 공청회, 복지위 전체회의 등 일정을 이번 주부터 다시 진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대체조제 법안은 이번달 일정에서는 논의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면서 6월 이후로 시점이 예상되고 있다.
김국일 과장은 “논의 자체는 의지만 있다면 일주일에 2~3번 할 수 있다. 최대한 합의를 이끌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정민 보건의료혁신TF팀장 역시 “협의체와의 논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포인트가 다르고 의견도 다르다. 정부는 의견수렴을 하는 통로로 활용하고 있고, 여기서 논의되는 내용을 정책화하는 방향으로 담아내려고 하고 있다. 이게 정리가 되면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보건의료와 관련한 발전방향과 계획들을 논의하는 절차를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공식 채널을 통해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도록 추진해나갈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실제로 의협‧병협‧약사회 등 공급자 단체 입장에서는 협의체에서 논의된 내용들이 정책에 반영돼 가시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논의가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 과장은 “복지부는 의견을 상시적으로 받을 수 있는 통로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고, 다양하게 제안한 내용들은 보건의료발전계획에 담을 예정이다. 핵심 내용을 발전계획에 담아서 5년간 진행할 모든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시적 결과를 산출한 내용들이 나올 것이다. 보건의료발전계획은 상반기 중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같은 목표로 공청회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유정민 팀장도 “의견수렴 창구라고 해서 듣는데 그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자체가 정책을 발전시키기 위한 실질적 공감과 소통의 통로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안에 따라 구체적인 안을 제시한 부분은 검토가능한 내용도 있어서 쌍방향 소통을 해나가려고 한다. 실효성 있게 결과물로 도출된다는 원칙 하에 임하고 있다. 상반기 안에는 시안을 제시하는 과정을 작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협 합세한 보발협, 의대정원 이슈 다룰까
그동안 불참 행보를 이어가던 의협이 보발협에 본격 합류하면서 향후 보발협 현안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도 관전 포인트로 떠오른다.
김국일 과장은 “보발협은 의약단체 공통 현안에 대해 사전에 의견수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동안 비급여, PA문제나 국회 법률 추진 사안 등 다양한 보건의료 현안을 다루고 있다”며 “의대 정원에 대해서는 지난해 7월 의대 정원을 지역의사제와 국립의료전문대학원 2개를 추진하면서 의료계와 충분한 의사소통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의대 정원을 포함한 지역의료체계, 필수의료 등은 의정협의의 전제조건이 됐다. 이에 협의체에서도 7차 회의까지 이뤄졌으며, 계속 의료계와 논의할 예정이다. 다만 아직은 코로나19 상황으로 백신접종이 굉장히 중요한 국민적 아젠다로 떠오른 만큼, 코로나19 예방접종에 우선 비중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대정원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아젠다로, 필수의료나 지역의료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제”라며 “이 부분은 의료계와 논의해서 추진해 나갈 것이며, 패싱할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코로나19가 종식에 가까운 수준에 이르렀을 때 의대정원 확대 등을 본격 논의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유정민 팀장은 “의정협의 초기, 코로나19 안정화에 대해 확진자 발생 추이나 거리두기 단계, 의료체계 대응 능력, 치료제와 백신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진행하기로 했다”며 “의대 정원 증원과 의사인력 확충에 대해서는 목적 자체가 필수 의료인력을 강화하고 의료 질을 높이는 취지인 만큼, 9.4 의정합의에서 양자 논의구조에 대해 논의했기 때문에 존중한다. 다만 지역 필수의료 강화와 의료인력의 미래 수급 확충 방안을 같이 논의해야 하기 때문에 기본 방향에 대해서는 보건의료 발전계획을 수립 중에 있다”고 첨언했다.
복지부는 의협이 보발협에 참여해준 만큼 다양한 주제를 다루되, 의정협의체가 필요하다고 공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전 집행부와 어떤 다른 의견이 있는지, 동일한 태도로 유지하는 지에 따라 필요한 부분을 협의할 예정이다.
또한 복지부는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유정민 팀장은 “의료전달체계는 2019년 단기대책을 발표한 이후 그해 11월 중장기 TF를 만들었으나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논의를 많이 진행하지 못했다. 올해는 비공개로 각각의 안을 만들어 논의하고 있다”며 “보건의료발전계획과 의료전달체계가 다수 포함된 내용을 조만간 논의할 것이고, 여기에는 지역필수의료 강화와 보건의료발전계획이 맞닿아있다 보니 지역에서 신뢰받고 이용가능한 중장기 대책을 다루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