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교수는 세계를 누비던 항공사 출신
<특별한 만남> 해군, 항공사 근무 경험에 스쿠어다이빙까지 김 교수 이야기
양금덕 기자 kumduk@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08-06-30 09:00   수정 2008.07.01 02:41
▲ 김영철 서울대 약대 교수

국내 독성학 분야의 최초 연구자이자 독성학 발전을 위해 활발한 연구활동 중인 김영철 서울대 약대 교수가 교단에 서기 전, 국제선 비행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2003년도 독성학회 회장을 역임한 김 교수의 지금으로부터 24여 년 전, 대한항공에서 근무하던 그 시절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때는 국가에서 인위적으로 해외여행을 통제해서 돈이 있어도 해외를 못 가던 때였지요. 제가 대한항공 17기였으니, 참 오래됐네요.”

70학번으로 서울대 약대를 다니던 김 교수가 약사가 되기 전 겪었던 해군복무, 항공사 근무, 스쿠버 다이빙 등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사관후보생 출신이라는 그는 약사장교가 아닌 항해 장교, 즉 해군으로 군복무에 임했다.

김 교수는 “평생 약사로 살아갈 것이라 젊을 때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어 했다”며 “해군에 가면 배도 타고 해외도 가고, 수영도 가르쳐줄 거라고 생각했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정작 3년 반 동안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할 때까지 그가 탄 배는 국내에만 머물렀다. 그는 “해외여행이 어려웠던 시절이라 장기 사관학교생만 해외로 보내줬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해군생활의 연장선으로 항공사에 입사했고, 국제선을 타며 외국을 다니게 됐다.

김 교수는 “해군을 선택할 때부터 제가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나 보다”며 “배타고 바다를 누비는 것도 좋았지만, 이후에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은 욕구가 컸다”며 젊은 시절을 열정을 회상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그 당시 항공사의 환경도 많이 변했겠지만, 김 교수는 “의사도 근무할 정도로 매력 있는 곳”이었음을 기억했다.

김 교수는 “그당시 이화여대 의대 출신, 서울대 법대, 공대 기계과 등 엘리트 출신 스튜디어스, 스튜어드도 적지 않았다”며 “약사가 근무하는게 특이사항은 아니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항공사에 근무하느라 보낸 1년이란 시간의 가치는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은 소중한 것이었다.

일단, 유학을 갈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

그는 “약학 공부를 계속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항공사에 근무한 1년 동안 유학비도 모으고 생활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보다 더 소중한 계기를 안겨준 것은 평생을 함께할 인연을 만나게 된 것이다.

김 교수는 “항공사 근무하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며 “당시 스튜디어스였던 아내와 연애를 했고, 항공사를 그만둔 해 바로 결혼식을 올렸다”고 말했다.

이후 한 가정의 가장으로 평소 품고있었던 공부의 길을 가기위해 유학을 떠났고 지금에 이르렀다.

화려했던 항공사 경험이 그립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때 그만두지 않고 6~7년동안 근무를 했다면 아마 해외 지점장으로 근무했을 것”이라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럴걸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애초부터 1년만 근무하겠다는 혼자만의 계획을 세웠었다”고 답했다.

부산에서 태어나 소실적을 보낸 김 교수는 스쿠버다이빙이라는 취미도 가지고 있다. 항공사 근무시절, 하와이에서 처음 접한 스쿠버다이빙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

김 교수는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랴, 연구하랴 세상사에 바빠 다 옛날 얘기가 되어버렸지만, 그때 그 시절이 소중한 만큼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회상에 잠겼다.

그는 10년 뒤 정년퇴임을 하면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가 초등학교 동기들도 만나고 바다가 보이는 해변가 집에서 여유를 즐기는 생활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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