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봐야 더 재미있는 고양이 축제의 감상법_뮤지컬 캣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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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오해가 많은 작품이 있다. 뮤지컬 ‘캣츠’가 그렇다. 손바닥이 벌게지도록 박수를 치고 공연장을 나서는 글로벌 관객들과 달리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도 이 작품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무슨 이야기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제대로 감상했다는 방증이다. 뮤지컬 ‘캣츠’는 원작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영국 작가 T. S. 엘리엇이 발표한 시집이 원작이다.
T. S. 엘리엇은 카톨릭 신자였다. 어느 날 그는 종교적 후견인이 되는 대부(Godfather)가 됐고 어린 대자(Godchild)에게 인생의 교훈을 들려주고 싶어졌다. 그런데, 자신의 대자가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래서 고양이를 의인화한 시들을 그에게 전해준다. ‘캣츠’는 바로 그 시들을 담아 만든 시집을 가져다 무대로 만든 작품이다. 영국에서는 아이들이 어릴 때 자기 전에 부모가 꼭 읽어준다는 국민시집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고양이 이야기(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다. 소설도 아니고 시집이 원작이니 줄거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이 작품은 그 유명한 시집 속에 담긴 활자로 된 시구 하나하나가 노래가 되고, 춤이 되고, 이미지로 펼쳐지게 되는 것이 감동적이어서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이다. 당연히 제대로 감상하려면 시집을 꼭 먼저 읽어야 한다.
시집의 우리말 제목도 정확히 말하자면 오류가 있다. 영어로 쓴 원제에는 ‘지혜롭다’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가 언급되게 된 것은 굳이 따지자면 주머니쥐(Possum) 탓이다. 서양 사람들에게 주머니쥐는 지혜의 상징이란 말이 있다. 그래도 굳이 그 의미를 담아 번역하자면 지혜로운 것은 고양이들이 아닌 주머니쥐다. 여기에도 숨겨진 시적 상상력이 있다. ‘영리한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바라본 고양이들의 세계란 의미는 사실 T.S.엘리엇을 의미하는 중의법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부르는 작가 엘리엇의 별명이 바로 주머니쥐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시집의 제목은 지혜로운 주머니쥐의 이야기도 되고, 이제는 나이가 지긋해져 더 현명해진 T.S.엘리엇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시집제목다운 중의법적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곱씹어 생각해볼수록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말 공연이 처음 막을 올릴 당시, 국내 언론지상에선 ‘캣츠’를 두고 창녀 고양이의 사연이 담긴 작품이란 기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늙은 암코양이 그리자벨라를 두고 쓴 표현이다. 대표적인 이 작품의 잘못 알려진 오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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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안에서 그리자벨라가 몸 파는 고양이란 표현은 사실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새벽녘까지 어스름한 번화가 뒷골목을 서성였다는 노랫말은 있다. 저작권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은 해적판 버전이 스스럼없이 공연되던 시절, 하늘로 올라 환생한다는 이야기에 종교적 해석을 덧붙이고 싶었던 국내 제작진에 의해 왜곡된 정체불명의 해석이다. 사실 이런 해석으로는 ‘캣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리자벨라가 창녀 고양이라면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그녀의 노래 ‘추억(Memory)’의 내용은 영 이상해지기 때문이다. 해석하자면 손님들이 몰려왔던 화려한 날들을 그리워하며 환생이라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화류계 최고의 존재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게 된다. 국내 초연 당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제작진이 주축을 이루다 보니 그리자벨라와 막달아 마리아의 이미지를 중첩시키려했던 무리한 해석 탓이 아니었을까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리자벨라는 창녀 고양이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바라보면 미소짓게 됐던 매력넘쳤던 고양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었던가, 이제는 인생의 뒤안길에서 주름만 남은 회한의 삶을 살고 있는 존재가 됐다. 그러니 그녀가 노래하는 찬란한 시절의 추억은 아름답고 그립고 또 애절할 수밖에 없다.
털이 숭숭 빠진 낡은 코트와 큰 옷깃에 의미를 더하는 경우도 있다. 영국에서 이런 옷깃의 의상을 입은 나이든 여성은 역사속 인물을 떠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바로 ‘해가 지지 않던’ 시절의 영국 여왕인 메리여왕이나 엘리자베스 1세다. 어찌보면 화려한 과거에 대한 아련한 추억의 노랫말은 영국인들로 하여금 찬란했던 대영제국의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되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선정성 논란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캣츠’가 등장할 당시 서구 사회에서는 바디 페인팅의 예술성에 대한 적지않은 사회적 반향과 논란이 등장했었다. 퍼포머의 알몸 위에 예술적인 무늬나 그림을 그리는 현대적인 예술 행위인 바디 페인팅은 오늘날 신체를 캔버스 삼아 채색을 시도함으로써 회화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개념미술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캣츠’가 처음 제작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외설과 예술의 경계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불식되지 않았었다. 몸에 딱 달라붙는 무용수의 타이즈 차림에 마치 바디 페인팅을 연상케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그래서 한때 선정성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이같은 논란의 이면에는 사실 서양 사람들의 고양이에 대한 인식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있다. 고양이하면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관능적이고, 섹시하다는 평소의 생각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마치 ‘쿨 캣(cool cat)’이란 표현이 진짜 고양이가 아닌 요염하고 관능적인 멋쟁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영국 록밴드 퀸은 아예 ‘쿨 캣’이라는 노래를 발표한 적도 있다. 물론 느긋하게 매력적인 사람에 대한 노래다).
고양이에 대한 느낌에서 조금 결이 다른 우리나라는 그래서인지 처음 이 뮤지컬이 소개될 당시 극장 안팎으로 비명이 난무하는 별난 풍경을 연출해내기도 했다. 객석 사이로 고양이들이 돌아다니자 여성 관객들이 소름끼쳐하며 소리를 질러댔기 때문이다. 꼬리라도 잡아채보려 손을 뻗는 서양 관객들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 우리나라도 강아지 못지않게 고양이 좋아하는 애묘 인구가 많아졌고, 애완동물에 관련된 산업들도 크게 성장하고 있다. 고양이들의 속성을 알게해주는 TV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한다. 한때 뮤지컬 ‘캣츠’의 공연장 로비에 아기 고양이들을 풀어놓으면 어떨까 싶은 엉뚱한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런 마음이 밑바탕이 되면 더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캣츠’다. 꼭 염두에 두고 감상해보기 바란다.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알고 봐야 더 재미있는 고양이 축제의 감상법_뮤지컬 캣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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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오해가 많은 작품이 있다. 뮤지컬 ‘캣츠’가 그렇다. 손바닥이 벌게지도록 박수를 치고 공연장을 나서는 글로벌 관객들과 달리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도 이 작품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무슨 이야기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제대로 감상했다는 방증이다. 뮤지컬 ‘캣츠’는 원작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영국 작가 T. S. 엘리엇이 발표한 시집이 원작이다.
T. S. 엘리엇은 카톨릭 신자였다. 어느 날 그는 종교적 후견인이 되는 대부(Godfather)가 됐고 어린 대자(Godchild)에게 인생의 교훈을 들려주고 싶어졌다. 그런데, 자신의 대자가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래서 고양이를 의인화한 시들을 그에게 전해준다. ‘캣츠’는 바로 그 시들을 담아 만든 시집을 가져다 무대로 만든 작품이다. 영국에서는 아이들이 어릴 때 자기 전에 부모가 꼭 읽어준다는 국민시집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고양이 이야기(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다. 소설도 아니고 시집이 원작이니 줄거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이 작품은 그 유명한 시집 속에 담긴 활자로 된 시구 하나하나가 노래가 되고, 춤이 되고, 이미지로 펼쳐지게 되는 것이 감동적이어서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이다. 당연히 제대로 감상하려면 시집을 꼭 먼저 읽어야 한다.
시집의 우리말 제목도 정확히 말하자면 오류가 있다. 영어로 쓴 원제에는 ‘지혜롭다’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가 언급되게 된 것은 굳이 따지자면 주머니쥐(Possum) 탓이다. 서양 사람들에게 주머니쥐는 지혜의 상징이란 말이 있다. 그래도 굳이 그 의미를 담아 번역하자면 지혜로운 것은 고양이들이 아닌 주머니쥐다. 여기에도 숨겨진 시적 상상력이 있다. ‘영리한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바라본 고양이들의 세계란 의미는 사실 T.S.엘리엇을 의미하는 중의법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부르는 작가 엘리엇의 별명이 바로 주머니쥐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시집의 제목은 지혜로운 주머니쥐의 이야기도 되고, 이제는 나이가 지긋해져 더 현명해진 T.S.엘리엇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시집제목다운 중의법적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곱씹어 생각해볼수록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말 공연이 처음 막을 올릴 당시, 국내 언론지상에선 ‘캣츠’를 두고 창녀 고양이의 사연이 담긴 작품이란 기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늙은 암코양이 그리자벨라를 두고 쓴 표현이다. 대표적인 이 작품의 잘못 알려진 오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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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안에서 그리자벨라가 몸 파는 고양이란 표현은 사실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새벽녘까지 어스름한 번화가 뒷골목을 서성였다는 노랫말은 있다. 저작권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은 해적판 버전이 스스럼없이 공연되던 시절, 하늘로 올라 환생한다는 이야기에 종교적 해석을 덧붙이고 싶었던 국내 제작진에 의해 왜곡된 정체불명의 해석이다. 사실 이런 해석으로는 ‘캣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리자벨라가 창녀 고양이라면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그녀의 노래 ‘추억(Memory)’의 내용은 영 이상해지기 때문이다. 해석하자면 손님들이 몰려왔던 화려한 날들을 그리워하며 환생이라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화류계 최고의 존재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게 된다. 국내 초연 당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제작진이 주축을 이루다 보니 그리자벨라와 막달아 마리아의 이미지를 중첩시키려했던 무리한 해석 탓이 아니었을까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리자벨라는 창녀 고양이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바라보면 미소짓게 됐던 매력넘쳤던 고양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었던가, 이제는 인생의 뒤안길에서 주름만 남은 회한의 삶을 살고 있는 존재가 됐다. 그러니 그녀가 노래하는 찬란한 시절의 추억은 아름답고 그립고 또 애절할 수밖에 없다.
털이 숭숭 빠진 낡은 코트와 큰 옷깃에 의미를 더하는 경우도 있다. 영국에서 이런 옷깃의 의상을 입은 나이든 여성은 역사속 인물을 떠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바로 ‘해가 지지 않던’ 시절의 영국 여왕인 메리여왕이나 엘리자베스 1세다. 어찌보면 화려한 과거에 대한 아련한 추억의 노랫말은 영국인들로 하여금 찬란했던 대영제국의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되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선정성 논란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캣츠’가 등장할 당시 서구 사회에서는 바디 페인팅의 예술성에 대한 적지않은 사회적 반향과 논란이 등장했었다. 퍼포머의 알몸 위에 예술적인 무늬나 그림을 그리는 현대적인 예술 행위인 바디 페인팅은 오늘날 신체를 캔버스 삼아 채색을 시도함으로써 회화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개념미술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캣츠’가 처음 제작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외설과 예술의 경계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불식되지 않았었다. 몸에 딱 달라붙는 무용수의 타이즈 차림에 마치 바디 페인팅을 연상케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그래서 한때 선정성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이같은 논란의 이면에는 사실 서양 사람들의 고양이에 대한 인식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있다. 고양이하면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관능적이고, 섹시하다는 평소의 생각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마치 ‘쿨 캣(cool cat)’이란 표현이 진짜 고양이가 아닌 요염하고 관능적인 멋쟁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영국 록밴드 퀸은 아예 ‘쿨 캣’이라는 노래를 발표한 적도 있다. 물론 느긋하게 매력적인 사람에 대한 노래다).
고양이에 대한 느낌에서 조금 결이 다른 우리나라는 그래서인지 처음 이 뮤지컬이 소개될 당시 극장 안팎으로 비명이 난무하는 별난 풍경을 연출해내기도 했다. 객석 사이로 고양이들이 돌아다니자 여성 관객들이 소름끼쳐하며 소리를 질러댔기 때문이다. 꼬리라도 잡아채보려 손을 뻗는 서양 관객들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 우리나라도 강아지 못지않게 고양이 좋아하는 애묘 인구가 많아졌고, 애완동물에 관련된 산업들도 크게 성장하고 있다. 고양이들의 속성을 알게해주는 TV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한다. 한때 뮤지컬 ‘캣츠’의 공연장 로비에 아기 고양이들을 풀어놓으면 어떨까 싶은 엉뚱한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런 마음이 밑바탕이 되면 더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캣츠’다. 꼭 염두에 두고 감상해보기 바란다.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