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신재규 교수의 'From San Francisco'
<99> 우울증으로 약을 복용하지 않는 환자
편집부
입력 2022-06-27 14:55 수정 최종수정 2022-06-2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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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GL이 아무 말없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지난 주 초진때처럼 검은색 선글래스를 쓰고 있었다.  

“오늘은 약들을 모두 가져오신 것 같군요.”
그녀는 약병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네.  이 약들이 제가 복용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63세의 GL은 최근 당뇨병이 크게 악화되었다.  2021년초만해도 그녀의 당화혈색소 수치가 6.7%로 당뇨병이 잘 조절되었지만 2022년 2월에 측정한 것은 무려 14.7%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당뇨병이 조절되지 않자 그녀의 일차의료제공자는 나에게 당뇨병 치료에 대한 협진을 의뢰했던 것이다. 

지난 주 초진때 GL은 복용하고 있는 약들을 가져 오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은 환자들이 클리닉을 방문할 때 복용하고 있는 약들을 모두 가져오도록 한다.  그 이유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진료와 치료를 위해 환자의 치료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환자가 집에서 복용하고 있는 약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약을 가지고 오지 않았더라도 자신이 복용하고 있는 약들을 잘 알고 있으면 진료와 치료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GL처럼 잘 모르는 경우에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진료 및 치료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재진때 복용하고 있는 약들을 꼭 가져오도록 요청한다.

GL이 가져온 약들은 다음과 같았다:
메트포민 (metformin) 1000 mg 하루 두 번
엠파글리플로진 (empagliflozin) 10 mg 하루 한 번
프라바스타틴 (pravastatin) 40 mg 하루 한 번
로사탄 (losartan) 50 mg 하루 한 번

약병을 살펴보니 약들이 꽤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 약들은 모두 4개월 전에 약국에서 받은 것들이었다.

“이 약들은 모두 3개월치 분인데 아직도 많이 남아 있네요.  혹시, 이 약들에 대해 우려되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요.”

GL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데 GL의 표정을 살펴보니 좀 피곤하고 어두워 보였다.  낮은 복약순응도, 표정, 행동 등을 고려할 때 우울증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은 슬픈 기분 이외에도 잠자는 패턴과 식욕이 변하는 등 다른 증상을 동반한다.

“혹시, 잠은 잘 주무세요?”
“잘 못 잡니다.”
“식욕은 어떠신가요?”
“잘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몸무게가 5 kg 빠졌습니다.”
“기분이 우울하거나 슬프신가요?”
“네.”


약간 머뭇거리며 대답하던 GL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3년전, GL은 남편과 사별했다.  자신에게 정성을 다해 잘 해 주었던 남편을 잃은 이후 그녀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고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자식들이라도 가까이 살면 이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겠지만 그들은 멀리 텍사스 주에 살고 있었다.  주변에 사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기분과 상황을 여러 번 이야기해 본 것 같았다.  하지만, 친구들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해서 그녀는 더 외롭게 느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누구나 슬픔에 빠진다.  그리고 시간에 지남에 따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GL처럼 3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우울감을 지속적으로 가지면서 우울증과 관련된 다른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치료를 필요로 한다.  

나는 약사이므로 진단을 내릴 수 없다. 그래서, 가정의학과 클리닉 주치의 (attending physician)에게 가서 GL의 상황을 알리고 공식적인 진료를 요청했다.  주치의는 나와 함께 진료실로 와서 기다리고 있던 GL을 만나보았다.  그 동안 나는 다른 진료실에서 다른 환자를 보고 있었다.  곧 주치의가 나를 불렀다.

“약사님, GL에게 우울증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우울증 약인 설트랄린 (sertraline)을 처방해서 약국으로 보냈고 인지치료 (cognitive therapy) 의뢰도 넣었습니다.  또, GL의 일차의료제공자도 이를 알고 있어야 하므로 GL이 일차의료제공자를 빠른 시간안에 만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우울증 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GL이 그동안 처방대로 약을 복용하지 않았던 가장 큰 원인은 우울증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저도 약사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우울증 환자들은 복약 순응도가 높지 않다.  기분이 우울하면 자기 자신을 잘 돌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제 시간에 약을 복용하기 위해 필요한 집중력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GL은 약을 처방대로 복용하지 않았고 당뇨병이 악화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우울증이 호전된 다음에야 당뇨병 등의 다른 동반질환의 치료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GL님,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겠지만 우울증은 약물과 인지치료를 통해 호전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의사 선생님이 처방하신 것들을 꼭 따라 주십시요.  그리고, 당뇨병은 우울증이 호전된 다음 본격적으로 같이 치료하기로 합시다.”

*****

6주 뒤, GL이 다시 내 클리닉을 방문했다.

“어서 오세요.”

GL이 진료실을 들어설 때 나는 이전 두 번의 만남에서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미소였다.  오늘은 당뇨병 치료에 대해 이야기해도 될 것 같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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