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정재훈의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약이야기
<127>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
정재훈
입력 2023-02-22 09: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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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운전해서 비탈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도로를 달려가는 느낌이었다. 평균 경사도 29.3%로(16.33°) 기네스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뉴질랜드 두네딘의 볼드윈 스트리트보다 더 경사진 느낌이었다. 게다가 눈길이었다. 차가 가다가 설 때마다 불안했다. 하지만 의아했다. 왜 숨이 차지? 나는 운전석에서 핸들을 잡고 있을 뿐이고 힘을 쓰는 건 내가 아니라 자동차 엔진일 텐데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꿈이었으니까. 그렇다. 나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 

나는 평소 꿈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꿈을 꾸는 건 2~3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그런데 며칠 전 이렇게 생생하게 꿈을 꾼 이유는 뭘까? 음주로 인한 저혈당이 왔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 뒤에 와인을 세 잔 마시고 잤고 이로 인해 혈당이 떨어지다가 결국 새벽4시쯤 가벼운 저혈당이 왔다. 이걸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프리스타일 리브레라는 연속 당 측정기를 사용 중이었기 때문이다. 내돈내산으로 제조기업과는 아무 관계 없이 쓴 글이라는 점을 우선 밝힌다. 

내가 사용한 연속 당측정 시스템은 무채혈 방식이다. 자세히 보면 제품명이 연속 혈당 측정 시스템이 아니라 연속 당 측정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혈액이 아니라 피하지방 세포간질액의 당 수치를 측정하기 때문이다. 세포간질액이란 세포와 세포 사이이 체액을 이루는 액체를 말한다. 혈액으로부터 받은 산소와 영양분을 세포로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세포간질액의 당 수치를 보면 혈당치를 제대로 예측할 수 있다. 직접 혈당을 측정하는 건 아니고 세포간질액을 통해 간접적으로 혈당치를 확인하는 방식이지만 믿을 만하다는 이야기다. 

센서 착용은 쉬운 편이다. 자세한 사용방법은 제품 설명서에 나와 있지만 여기서 몇 가지 주요점을 살펴보자. 센서는 14일 동안 작동한다. 센서를 부착하면 한 시간 동안의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센서는 1분마다 당 수치를 측정하고 15분마다 이를 저장한다. NFC 기능을 지원하는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한 다음 센서 가까이에 대면 신호음이 들리거나 진동이 느껴진다. 이 때 스마트폰으로 그 시점의 측정치와 함께 전에 저장된 당 수치가 함께 전송된다. 센서는 최대 8시간까지만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어서 최소한 8시간에 한 번은 이런 식으로 스캔을 해줘야 한다. 특히 취침 전에 스마트폰으로 한 번 스캔을 하는 게 좋다. 

당 측정을 위한 센서에는 바늘이 들어가지 않는다. 위팔 뒤쪽 피부에 500원 동전보다 조금 크고 동전 2.5개를 겹친 두께의 센서를 삽입기구의 도움을 받아 부착하도록 되어 있다. 삽입기구를 보면 길고 가는 바늘이 하나 보이는데 이 바늘은 당 측정을 위한 더 가느다란 필라멘트가 피부 아래까지 삽입되도록 돕는 가이드 역할이다. 삽입기구와 함께 다시 빠져 나오는 거라서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불행히도 설명서에서 이런 디테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바늘이 센서와 함께 내 위팔에 남아있는 줄 알고 두려움에 떨면서 찾아본 결과 확인한 정보이다. 팔에 필라멘트만 삽입된 상태라는 걸 알고 나니 통증이 사라졌다. 

이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당뇨 환자를 위한 것이며 제조사는 건강한 사람에게 사용을 권하지 않는다. 나는 당뇨가 없다. 직업상 연속 당측정 시스템을 써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한 번 테스트해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매일 손가락 끝을 바늘로 찔러 핏방울을 떨어뜨리는 것은 당뇨 환자에게도 괴로운 일이다. 채혈하지 않고 피부에 부착한 센서로 당을 측정하면 아프지 않다는 것은 커다란 장점이다.

이에 더해 24시간 연속 당 수치를 그래프로 보여주니까 더 쉽고 분명하게 자신의 혈당치 변화를 가늠해볼 수 있다. 내가 이번에 경험한 것처럼 말이다. 음주가 저혈당을 유발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다가 저혈당으로 악몽을 몸소 체험하는 것은 그런 지식과는 또 다른 일이었다.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이용한 디지털 헬스케어라는 말을 들어도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경험하고 나니 다르다. 건강과 관련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행동을 바꾸는 데 제일 어려운 것 하나가 인과성을 납득시키는 일 아닌가. 이제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개인이 스스로 그런 인과성을 이해하고 건강을 관리하게 되는 그런 시대가 왔다. 그렇다면 약사로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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