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훈 약사 평소에 잠을 잘 자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잠이 안 오면 당황스럽다. 공포영화나 납량특집 웹툰을 보고 잔 것도 아닌데 무서운 꿈을 영화처럼 생생하게 꾸다가 깨는 일은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흐른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스트레스, 야식 때문에 잠이 안 오는 날도 있다.
하지만 숨은 원인이 약일 수도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카페인은 이해하기 쉬운 예다. 커피나 차를 많이 마신 날 잠이 안 오는 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이 때 섭취량과 시간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오전에 한두 잔은 괜찮은데 하루 3-4잔을 마시거나 오후 3-4시 이후에 마시면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사람이 많다.
잠이 안 올 때 술을 마시면 도움이 된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술은 수면에 방해가 된다.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잠에 들 수 있지만 자다가 중간에 깨는 게 문제다. 알코올이 인체의 수면을 조절하는 체계를 교란해서 잠이 안 오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매일 같이 술을 자주 마시는 습관을 가진 사람일수록 초반에는 잠을 잘 자다가 중반 이후에 깨어나서 다시 자기 힘들어할 가능성이 높다. 알코올 자체도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지만 알코올이 이뇨제로 작용하는 것도 상황을 악화시킨다. 중간에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깨니까 수면의 질이 좋을 수가 없다. 평소보다 생생한 꿈을 꾸거나 걱정, 불안이 가득한 꿈을 꾸게 되기도 한다.
무서운 꿈이나 생생한 꿈을 꾸게 하는 또 다른 숨은 원인은 니코틴이다. 금연 때문에 니코틴 패치를 사용 중인 경우 밤에 자기 전에는 떼고 자는 게 좋다.
밤에 패치를 붙이고 잠이 들면, 수면장애나 악몽 또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 꿈을 꾸는 자각몽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아침에 패치를 붙이면 밤에는 떼고 자도록 권하는 이유다. 술 마시고 담배를 많이 피운 날 액션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한 꿈에 시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무서운 꿈의 숨은 원인 중 하나가 감기약이다. 막힌 코를 뚫어주는 비충혈제거약이 특히 문제가 된다. 감기약 속의 슈도에페드린, 메틸에페드린 같은 비충혈제거제 성분은 뇌 속으로 흘러들어가 중추신경계를 자극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일시적으로 덜 피곤하고 정신이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일부 사람들이 감기와 무관하게 감기약을 습관적으로 마시는 것은 이 때문이다.) 평소에는 차분하던 사람이 약을 먹고 나서 불안해지거나 신경이 과민해질 수 있다.
잠을 자다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깨거나 무서운 꿈을 꿀 수도 있다. 감기약과 카페인 음료를 함께 마시면 이런 효과가 더 증가할 수 있다.
이런 부작용을 줄이려면 자기 직전에 감기약을 복용하기보다 두세 시간 전에 복용하거나 또는 비충혈제거제가 들어있는 감기약은 저녁에는 복용을 피하는 게 좋다.
이런 약 부작용을 모르고 밤에 감기약을 먹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악몽 속에 깨어나 귀신이 보인다며 병원 응급실을 찾는 사례도 종종 들린다.
불면증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약은 그밖에도 많다.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와 같은 우울증 치료약, 기관지를 확장시키는 천식약, 항히스타민제, 스테로이드, 여성호르몬제도 드물지만 불면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니코틴 대체제 외에 금연치료제로 사용되는 부프로피온, 바레니클린도 불면, 비정상적인 꿈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약 때문에 불면증이나 악몽을 꾸는 게 의심된다고 해서 약 복용을 스스로 중단해서는 곤란하다. 자칫하면 치료 중인 질환이 악화될 수 있다. 잠재적 원인 중 하나가 약일 수는 있으나 불면증, 악몽의 원인은 다양하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의 증상으로 잠을 못 이루는 것일 수도 있다.
우선 의사, 약사와 상담을 통해 약이 정말 문제의 원인인지 파악하고 대응하는 게 현명하다. 예를 들어 불면증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약을 저녁에 복용 중일 때는 약을 아침에 복용하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복용 중인 약의 용량을 줄여주거나 다른 약으로 바꿔주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