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훈 약사 높은 산에 올라가면 방귀가 잦아진다. 과자 봉지를 높은 곳에 가져가면 외부 기압이 낮아져서 봉지가 부풀고 내려오면 쪼그라드는 것처럼, 우리 대장 속 가스도 높은 곳에 올라가면 부풀어서 방귀가 더 자주 나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비행기를 타면 뱃속에 가스가 차는 듯한 느낌이 심해질 수 있다. 산 정상에 오르지도 않았고 하늘을 날고 있지도 않은데 뱃속에 가스가 부글거리는 듯하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음식, 약물, 장내 세균총의 변화 또는 질환으로 인해 장내 가스 생성량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뱃속에 가스가 만들어지는 기전은 다양하다. 위와 소장에서 제대로 소화되지 않고 대장으로 넘어온 음식물 찌꺼기가 장내 미생물에 의해 발효되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위산 중화과정이나 영양 성분의 대사과정에서도 생겨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뱃속에는 약 200mL 의 가스가 들어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 트림과 방귀를 통해 제거되는 가스의 양은 적게는 500ml부터 많게는 1.5리터에 달한다.
평소보다 장내 가스가 더 많이 생겨도 별 느낌 없이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조금만 가스가 늘어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먼저 원인이 되는 음식이나 생활습관을 찾아 조정해주는 게 좋지만 약으로 증상을 줄이고 싶다면 시메티콘, 디메티콘 성분의 소포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소포제란 거품을 없애는 약이란 뜻으로 위장에 생긴 가스 기포의 표면장력을 줄여 기포를 터뜨리거나 합쳐지도록 하여 가스 제거를 쉽게 해준다. 시메티콘, 디메티콘은 덩치가 큰 실리콘 중합체여서 체내로 흡수가 안 되어 전신 부작용이 드문 안전한 약이다.
다만 이들 성분이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고,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혹시 장폐색과 같은 심각한 질환이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먼저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
우유 속 유당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유당불내증이 있을 경우는 우유와 유제품 섭취로 인해 가스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이 경우 유제품 섭취를 피하면 제일 좋고 유당을 제거한 우유를 마시거나 우유 대신 발효유를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막상 살다보면 우유와 유제품을 전적으로 피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유당불내증이나 과민성대장증상 환자의 경우에 프로바이오틱스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유제품에 더해 양파, 샐러리, 당근, 양배추와 같은 채소 콩류, 사과, 살구, 자두와 같은 과일도 가스 생성량을 늘릴 수 있다. 무를 먹고 트림하지 않으면 보약이 된다는 농담 속 진실은 무는 장내 가스를 생성하는 식품이란 것이다. 소르비톨과 같은 당알코올 성분이 들어간 껌이나 캔디도 많이 먹으면 가스와 복통을 유발할 수 있다. 지방질이 많은 식품도 장내 가스로 인한 증상을 악화시킨다.
생크림 케이크, 수플레, 스펀지케이크, 밀크셰이크, 탄산음료처럼 자체적으로 공기를 품고 있는 식품도 가스 증상을 악화시킨다. 감기약이나 알레르기약에 들어있는 항히스타민제 성분도 장운동을 늦춰 가스로 인한 증상이 증가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식사 습관도 가스와 관련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음식을 삼킬 때 공기도 삼키게 된다. 그렇다고 밥을 안 먹을 수는 없지만 게걸스럽게 삼키지는 말아야 한다. 음식을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는 습관이 가스를 덜 삼키고 증상을 줄이는 데 좋다. 담배를 피우거나, 껌을 씹거나, 사탕을 빠는 것도 공기를 더 많이 삼키게 하므로 가스 증상을 줄이려면 피해야 하는 습관이다.
장내 가스 증상이 여러 달 지속되거나 너무 자주 생기는 경우, 복통이 심하거나 부위가 갑자기 바뀌는 경우, 40세 이후에 처음으로 증상이 나타난 경우, 위장관 출혈이나 체중 감소를 동반한 경우는 병의원에 방문하여 상담받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