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훈 약사 아직도 소화불량 증상에 소화효소제 알약부터 찾는 사람이 많다. 소화효소제를 음식에 넣고, 흐물흐물해지는 걸 보여주는 실험이 가끔 TV에 방송되기도 한다. 하지만 소화효소제 알약은 대부분의 경우 불필요한 약이다. 소화효소제 알약에는 보통 돼지의 췌장에서 추출한 효소가 들어있다.
췌장에 특별히 문제가 있는 일부 환자를 제외하면 건강한 성인은 소화효소제 알약에 들어있는 소화효소의 수십~수백 배 이상의 소화효소를 췌장에서 분비한다. 굳이 다른 동물의 소화효소를 넣어주지 않아도 인체에서 충분한 소화효소를 만들어낸다. 이미 100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1을 보태준다고 별 도움이 될 리 없다.
사실이 이러한 데도 소화효소제 알약을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느낄 수 있다. 플라시보 효과일 수도 있고 소화제에 함유된 다른 성분 때문일 수도 있다. 보통 소화제 알약에는 소화효소 외에도 위에 차 있는 가스를 배출시켜주는 성분이나 지방 소화를 돕는 담즙산 성분도 함께 들어있다. 이들 성분도 소화불량에 두드러진 효과가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다. 약을 먹지 않아도 시간이 경과하고 음식이 위에서 장으로 내려가면 소화불량 증상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가벼운 속쓰림과 소화불량 증상에는 제산제가 소화효소제보다 나은 선택이다. 제산제는 위속에서 직접 작용하여 5분 이내에 빠르게 증상을 완화시킨다. 단, 제산제의 효과는 일시적이며 위속에 제산제가 남아 있는 동안에만 효과가 있다. 속 쓰리다고 빈속에 약을 삼키면 약이 위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서 약효가 반짝하고 사라져버린다. 식후 1시간 이내에 복용해주어야 제산제가 최대 3시간까지 위에 남아 효과를 낼 수 있다. 제산제는 위에서 산을 중화하는 작용을 한다.
히스타민2 수용체 길항제(H2RAs)도 속쓰림과 소화불량 증상에 자주 사용된다. 길고 어려운 이름이지만 약품 포장 뒷면에 라니티딘, 니자티딘과 같은 약 성분이 적혀있으면 다 이런 계열의 약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이런 성분의 약을 복용하면 보통 30분~45분 정도가 지나 약효가 나타난다. 빠른 효과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제산제와 H2RAs 성분이 함께 들어있는 복합제가 더 나은 선택이다.
"소화제를 자주 먹으면 인체의 소화효소 분비 기능이 떨어져 나중에는 약을 안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는 속설이 있는데,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 인체가 만들어내는 소화효소의 1/100에 불과한 소량의 소화효소를 알약으로 먹는다고 소화효소 생산을 중단할 만큼 우리 몸이 허술하지 않다.
하지만 속쓰림, 소화불량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습관적으로 제산제나 위장약을 장기 복용하면 위궤양이나 위암의 초기 증상이 나타날 때 모르고 지나갈 가능성이 있어 위험하다. 소화제 뒷면의 주의사항에 2주 이상 복용하여도 증상의 개선이 없을 경우 의사, 약사와 상담하라는 경고문구가 명시된 이유다.
습관적으로 소화제를 찾는 사람이라면 생활 습관을 조정해보는 것도 좋다. 식후 3시간 이내에는 눕지 말자. 밤늦게 기름진 육류와 술을 배불리 먹고 마신 뒤 바로 잠자리에 들면 음식이 위에 머무는 시간을 늘려서 다음 날 아침 속이 쓰리고 거북한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흡연은 위산 분비를 자극하는데다가 식도와 위를 잇는 하부식도괄약근을 느슨하게 하여 속쓰림 증상에는 이중으로 해롭다. 금연이 최선이지만 그게 안 되면 식후에 담배를 피우는 습관이라도 멈추길 바란다. 뱃살의 압박도 위를 눌러 속쓰림과 역류 증상을 악화시킨다. 체중을 줄이고 가급적 꽉 끼지 않는 옷을 입는 게 좋다.
끝으로 약 복용도 속쓰림, 소화불량 증상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하자. 소염진통제는 식후 즉시 복용해야 부작용으로 속쓰림, 소화불량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감기약이나 알레르기성 비염 약 중에 코막힘 제거약 성분도 하부식도괄약근을 느슨하게 하여 위식도 역류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