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정재훈의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약이야기
<30> 약의 용도 이야기
정재훈 약사
입력 2019-03-13 09:40 수정 최종수정 2019-03-1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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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약사▲ 정재훈 약사
통증으로 약을 복용 중인데 알고 보니 우울증 치료제다. 간지러움 증상 때문에 받아온 약인데 우울증 치료제다.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 성분이 검색해보니 항암제다. 환자 입장에서는 놀랄 수밖에 없다. 간혹 병원이나 약국으로 항의하러 오는 경우도 있다. 왜 한 가지 약을 여러 용도로 써서 사람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가.

우리 눈에 다양해 보이는 여러 증상의 원인이 하나의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통, 치통, 관절염, 생리통, 근육통은 통증이 나타나는 부위 면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기전은 비슷하다. 통증과 염증, 또는 발열의 원인이 되는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을 줄여주는 약으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동일 성분의 소염진통제(예를 들어 나프록센, 이부프로펜)를 치통에도 쓰고 생리통에도 쓸 수 있는 이유다. 소염제와 진통제가 따로 있는 줄 알고 각각을 찾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렇지 않다.

한 가지 약(NSAID)으로 진통, 소염, 해열 효과를 모두 얻을 수 있다.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이 우리 몸에서 통증, 염증, 발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므로 이 한 가지 물질의 합성을 막는 것만으로 통증, 염증, 발열을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한 가지 약이 여기저기에 가서 작용하기 때문에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신경병 통증에 흔히 사용되는 삼환계 항우울제(TCA)가 대표적 예이다. 통증이 계속되면 우울해지고 우울하면 통증에 민감해지는 악순환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통증 완화에 도움을 주려고 우울증 치료제를 만성 통증과 우울증을 함께 앓는 환자에게 사용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우울증이 없는 사람도 항우울제로 동일한 통증 완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보통 우울증 치료제가 우울 증상을 완화하는 데는 2-4주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만 통증 완화 효과는 훨씬 더 빠르게 1주일 이내에 나타난다.

우울증에 사용할 때와 달리 적은 용량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삼환계 항우울제가 정확히 어떤 기전으로 신경병 통증을 완화하느냐는 아직 모르지만 노르아드레날린 재흡수를 억제하는 것이 관련된 것으로 짐작된다.

걱정을 덜기 위해 하나 정리하고 넘어가자. 우울증이 없는데 신경병 통증에 우울증 치료제를 먹는다고 우울증이 생기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삼환계 항우울제처럼 인체 여기저기에서 작용하는 만큼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여기저기서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단점도 있다. 항콜린 작용으로 인해 입마름, 기립성 저혈압, 변비, 소변 정체와 같은 부작용이 문제가 되고, 과량 복용시 심장 독성의 위험이 있다.

다행히 우울증 치료제로 사용할 때보다 통증에 사용할 때 복용량이 적어서 부작용이 덜하다. 그런 이유로, 삼환계 항우울제를 본래의 용도인 우울증 치료에 사용하기보다 신경병 통증에 쓰는 경우가 더 많이 눈에 띈다.

또 다른 예로, 항암제인 메토트렉세이트(MTX)를 류마티스 관절염, 건선과 같은 자가면역 질환에 사용한다. 이 약을 항암제로 사용할 때와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로 사용할 때는 사용량과 복용 방법이 다르고 작용 기전도 다르다.

관절염에 메토트렉세이트가 효과를 나타내는 정확한 기전은 아직 모르지만 아데노신을 매개로 하는 항염증 효과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절염 치료에 저용량을 사용할 때와 항암제로 고용량 투여 시의 부작용 빈도도 다르다.

그렇다고 부작용이 안 나타난다는 건 아니고, 조심해서 모니터링해가면서 써야하는 약이다. 용량을 적게 쓰면 부작용도 줄어든다는 사실이 약을 복용 중인 분들에게 아주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란다.

가려움증에 독세핀과 같은 항우울제를 쓰는 것도 비슷하다. 독세핀은 삼환계 항우울제이면서 강력한 항히스타민제이기도 하다. 가려움의 원인이 되는 히스타민의 작용을 차단하여 효과를 내기도 하면서 동시에 심리적 요인으로 가려움증에 더 민감한 환자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미타자핀이라는 약도 우울증 치료제이면서 동시에 항히스타민제로서 작용을 나타내어 가려움증 치료에 사용된다. 알고 보면, 약의 세계에도 팔방미인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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