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합니다. 오죽했으면 삶의 터전인 종로통을 버리고 병·의원 인근으로 이전하는 약국이 속출하겠습니까.”
의약분업 시행 1년을 맞은 종로는 과거의 영화는 간 데 없이 대부분의 약국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지난 1년간 종로통을 떠난 약국만 줄잡아 10여곳 이상이 되며, 매물로 나와있는 약국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종로뿐 아니라 대형약국가로 알려진 동대문·영등포 지역도 마찬가지라는 것.
종로 등 대형약국이 퇴색하고 있는 데는 의약분업의 영향이 가장 크다는 지적이다.
의약분업 시행에 따라 전문약 판매가 전면 금지되자 이들의 주 매출 품목군이 사라지고 이에 덩달아 일반약 판매도 격감했기 때문이다. 또 처방전 수용을 위해 처방약을 구비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환자들이 문전약국이나 동네약국에서 조제를 받을 뿐 대형약국까지 흘러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종로 등 대형약국가에서는 `의약분업의 최대 피해자는 대형약국'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
상당수 대형약국들은 드럭스토어형 약국운영을 통해 활로를 적극 모색하고 있지만 의약분업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몰라 방관만 하고 있다.
〈경영난 심화〉
의약분업이 시행될 당시 종로·영등포 등에 대형약국은 분업에 따른 혜택을 상당수 볼 것으로 기대했었다.
이는 기존에 확보한 고객을 바탕으로 인근에 위치한 대형병원에서 처방전이 흘러내려올 것이라는 예상 때문.
그러나 의약분업이 시행된 후 대형약국들의 이 같은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전문의약품은 의사의 처방 없이는 판매가 불가능하다 보니 약국을 찾는 환자들이 절반 이상으로 급감했으며, 이로 인해 일반의약품의 판매도 덩달아 줄었다.
분업 이전 대형약국에서 취급하는 일반의약품은 구색맞추기에 불과했으며, 실질적인 매출은 전문약 판매에서 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전문약 판매가 줄어듦에 따라 일반약 판매도 동반하락하게 된 것이다.
종로의 한 약사는 “분업 이전 대형약국은 전문약 판매가 전체 매출액의 50% 이상을 상회했는데 분업 이후 전문약 판매가 금지되다 보니 매출이 급감하게 돼 일부는 심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분업 초창기에는 소비자들이 일반의약품도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오인해 판매가 줄었으며, 최근에는 동네약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일부 품목은 종로 등 대형약국 수준에 맞춰 판매하고 있어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
〈처방전 수용 저조〉
대형약국들의 처방전 수용 건수도 예상보다 훨씬 저조한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이마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약분업 초창기에는 환자들이 대형약국에 와서 조제를 받는 비율이 높아졌으나 분업 2~3개월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환자들이 병원 근처의 문전약국에서 조제를 받기 때문이라는 것.
종로 6가의 J약국은 “의약분업이 시행된 후 수용한 처방전은 1일 평균 50건 정도였으나 최근 들어서는 하루에 5건도 수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 이 약사는 “약국에 처방전을 들고 온 환자가 오지 않다 보니 일반약 매출도 저조해 매출이 의약분업 시행 전보다 평균 40% 이상 떨어졌다”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처럼 처방전 수용건수가 예상보다 저조함에 따라 일부 약국은 처방전 받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로 등 대형약국에 처방전을 들고 오는 환자들은 인근 병·의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오는데 이들이 가지고 오는 처방전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3,000여종의 의약품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3,000여종의 의약품을 갖추고 하루에 기껏해야 10여건 정도의 처방전을 수용할 경우 약국 관리비용도 건지지 못한다는 것이 이들 약국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조제에 필요한 기본적인 의약품만 구비하고 나머지 의약품은 제약회사와 도매상등에 반품한 곳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전국적인 약국대형화에 영향〉
대형약국들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된 배경에는 약국들의 대형화 추세가 한몫한다.
예전의 경우 대형약국하면 종로·영등포 등을 지목했지만 2~3년 전 부터 약국들의 대형화 현상이 확산되면서 `종로=대형약국'이라는 이미지가 파괴되고 있다.
또 규모의 대형화만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취급품목의 다양화와 가격 경쟁도 동반되다 보니 종로 등 대형약국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게 됐다는 지적이다.
소규모 아파트 단지 입구에 100평이 넘는 약국이 우후죽순 나타나는가 하는 대형약국의 전국화가 이루어지면서 소비자들이 의약품을 구입하러 종로 등 대형약국까지 올 필요성이 없어지게 됐다는 것.
종로 등 대형약국가에는 예전에는 의약품 회전기일 단축을 통해 의약품을 싸게 구입해 적정 마진을 남기고 소비자들에게 판매했지만 최근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대형약국들이 곳곳에 출현한 것도 종로 등 대형약국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처럼 의약분업 시행으로 대형약국들이 경쟁력을 잃게 됨에 따라 약국을 이전하려는 약사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7월과 비교할 때 종로지역의 약국은 약 70~80개가 줄어들었으며, 이중 종로통에 위치한 약국도 줄잡아 10여곳에 육박한다는 것.
또 약국을 이전하려고 내놓은 곳도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지는 등 종로의 대형약국가는 점차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특히 종로지역의 대형약국이 점차 매력을 잃어감에 따라 상가 임대료와 권리금도 분업 이전과 비교할 때 상당부분 떨어진 상태이다.
분업 이전의 경우 종로5가에 위치한 30평대의 약국의 경우 임대료와 권리금을 포함해 4억 이상이었으나 최근에는 임대료에 시설비만 포함되는 수준으로 시세가 결정되고 있다는 것.
이로 인해 일부 약국들은 이전을 계획하다가도 투자한 금액에 대한 미련 때문에 섣불리 결정짓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드럭스토어로의 변신 모색〉
종로 등 대형약국가에서는 의약분업 시행 이후 겪는 심각한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해 선진외국의 드럭스토어형 약국으로 활로 모색을 추진중이다.
이들 지역의 약사들은 종로 등 대형약국들이 과거의 영화를 되찾기 위해서는 결국은 드럭스토어 약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종로의 한 약사는 “처방전 수용과 일반약 판매 저조로 인해 대형약국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선진국형 드럭스토어로의 전환이 시급한 과제”라고 말하고 있다.
또 이 약사는 “그러나 정부의 정책이 불투명해 드럭스토어 약국으로 전환했을 경우 입을 지도 모르는 피해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지적한다.
종로 등 대형약국가는 의약분업 정책이 지난해와 올해 초까지는 의료계의 파업투쟁으로 상당수 변화됐고 최근 들어서는 정치권 일각에서 분업 완전 재검토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종로의 한 약사는 “지난해 실시된 의약분업 수용을 위해 대형약국들이 전문의약품 구비와 약국 레이아웃 등에만 투자한 금액이 평균 1~2억원에 이르고 많은 곳은 3억원에 육박한다”며 “그러나 아직까지 분업 수용을 위해 투자한 비용을 건진 약국은 없는 곳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약사는 “이런 현실에서 어느 약국에서 드럭스로어로의 변신을 위해 비용을 투자하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