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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믿음이 배신으로 돌아올 때, 채무자를 사기 혐의로 고소할 수 있을까요?
이종운
입력 2026-06-15 17: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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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배신으로 돌아올 때, 채무자를 사기 혐의로 고소할 수 있을까요?

“이 은혜를 잊지 않고, 꼭 갚겠다”는 간절한 약속을 믿고 내어준 돈이 끝내 돌아오지 않고, 돈을 빌려 간 지인은 어느새 연락조차 피하는 상황. 피해자는 금전적 손실을 넘어 인간적 배신감에 밤잠을 설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사기죄’ 고소를 떠올립니다. 돈을 갚지 않는 행위는 상식적으로 명백한 기망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법의 문을 두드렸을 때, “개인 간의 채무 문제(민사)이므로 형사처벌은 어렵다”는 답을 듣고 좌절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과연 어떤 경우에 단순한 ‘채무불이행’의 영역을 넘어 형사상 ‘사기죄’로 단죄될 수 있는 것일까요? 그 법리의 심층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사기죄의 성패를 가르는 열쇠, ‘기망의 고의’

형법상 사기죄는 차용 당시 상대를 속여 착오에 빠뜨릴 의도를 가지고 돈을 빌렸다는 점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내심의 의사인 ‘편취의 고의’를 어떻게 객관적 증거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법원은 범행 전후의 채무자의 재력, 환경, 범행의 내용, 거래의 이행과정 등과 같은 객관적인 사정 등을 종합하여 판단합니다.

변제 능력의 부재

사기죄 판단의 중요한 척도는 돈을 빌릴 당시 채무자에게 약속한 변제를 이행할 실질적인 능력이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만약 채무자가 이미 과도한 부채로 신용이 파탄에 이른 상태였거나, 별다른 재산이나 수입 없이 ‘돌려막기’로 연명하고 있었다면 편취의 고의를 인정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예를 들어, 이미 누적된 채무로 인해 특별한 자금 조달 없이는 도산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알면서도, 이러한 재정적 파탄 상태를 숨긴 채 새로운 돈을 빌려 기존 채무를 갚는 데 사용했다면, 이는 전형적인 사기 수법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용도의 기망

돈의 사용 목적, 즉 ‘용도’는 채권자가 대여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채무자가 고지한 용도가 사실과 다르다면, 이는 그 자체로 기망행위가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판례는 “사실대로 용도를 고지하였더라면 상대방이 돈을 빌려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에 있는 때에는 사기죄의 실행행위인 기망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합니다. 가령, “어머니의 병원비가 급하다”고 하여 빌려 간 돈을 도박 자금이나 유흥비로 탕진한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그 진정한 용도를 알았다면 결코 돈을 내어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채권자의 동정심이나 선의를 악용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더욱 불량하다고 평가됩니다.

거래 후의 태도

금전 거래 이후 채무자의 행동은 그가 돈을 빌릴 당시에 가졌던 내심의 의사를 추단하게 하는 중요한 ‘정황증거’가 됩니다. 물론 변제기가 지난 후 연락이 잘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사기죄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변제 약속일이 되자마자 연락을 두절하고 잠적하는 행위 ▲“곧 해결된다”는 식의 거짓 해명을 반복하며 시간을 끄는 행위 ▲오히려 채권자를 비난하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행위 등은 상식적인 채무자의 모습과 거리가 멉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돈을 빌릴 때부터 이미 변제 의사가 없었음을 방증하는 유력한 단서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 비록 변제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채권자에게 꾸준히 상황을 설명하고 일부라도 변제하려는 노력을 보인다면, 편취의 고의를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내 권리는 내가 지킨다

돈도 잃고 사람도 잃은 배신감에 무력해지기 쉽습니다만, 감정적 대응만으로는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을 수 없습니다. 냉철한 이성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체계적으로 대응에 나서야 합니다.

첫째, 객관적 증거의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차용증은 물론, 계좌이체 내역, 돈의 사용처와 변제를 약속하는 내용이 담긴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대화, 통화 녹음 등 모든 자료가 법적 다툼에서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형사 고소와 민사 소송의 전략적 활용을 고려해야 합니다. 사기죄 혐의가 명백하다고 판단되면, 형사 고소는 채무자를 압박하여 합의를 통한 피해 회복을 유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형사 절차와 별개로, 채무자의 재산이 있는 경우 가압류 신청과 대여한 돈의 반환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 역시 권리 구제에 도움이 됩니다.

마무리

인간에 대한 신뢰는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러나 그 신뢰를 악용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단호한 법의 심판이 필요합니다. 억울한 피해를 보셨다면 더 이상 주저하지 마시고, 수집된 증거를 바탕으로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으시길 바랍니다.

<필자소개>  심연와 변호사는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했으며 제50회 사법시험 합격 후 사법연수원 41기 수료를 거쳐 현재 법무법인(유한) 한별의 파트너 변호사로 재직 중인 민형사 금융 소송 전문 14년차 중견 변호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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