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403> 약학의 특성 – 8. 규제
심창구 교수.제약(製藥)산업을 제약(制約)산업이라고도 합니다. 물론 다른 산업에도 규제(規制)는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약산업에 특히 규제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규제는 다들 싫어합니다. 그래서 정부는 선거철만 되면 각종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발표해서 국민의 환심을 사려고 합니다.그러나 규제는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나쁜 규제는 나쁘지만 좋은 규제는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기차와 철로(鐵路, rail)의 관계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기차는 철로 위로만 달리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철로 위로만 달리라고 제한하느냐? 아무 데로나 다닐 수 있게 하자며 철로를 없애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장 기차가 달리 수 없게 되지 않겠습니까?사실 철로는 규제가 아니라 기차가 빠르고 안전하게 달리도록 돕는 가이드라인입니다. 의약품관련 규제도 제약산업의 발전을 이끌어주는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나쁜 규제입니다. 그런 규제는 폭이나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은 철로처럼 기차를 제대로 달릴 수 없게 만듭니다. 제약산업의 발전을 가로막습니다.과거 우리나라의 규제는 품질이 좋지 않았습니다. 앞뒤가 모순되거나 애매하거나 필요한 부분이 누락되어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런 규제에 제약산업이 순응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고생한 사람들은 아예 이런 규제들을 통째로 없애자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그러나 규제를 아주 없앨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의 보장은 정부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우리는 의약품 관련 규제의 품질을 높여 나쁜 규제를 좋은 가이드라인으로 바꾸어야 합니다.우리나라의 의약품 관련 규제의 품질이 불량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규제전문가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의약품에 대한 규제 수준은 의약품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전문가의 안목의 높낮이에 의해 결정됩니다. 따라서 그 동안 우리나라 규제의 품질이 불량했다는 것은 약학자를 비롯한 평가과학 전문가의 수준이 미흡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평가과학 수준이 낮으면 규제의 품질을 높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품질이 불량한 규제 하에서 세계최초의 신약이나 우수한 의약품이 개발되기는 어렵습니다. 새로운 약을 개발하고자 할 때에, 무슨 시험을 어떻게 해서 어떤 결과를 제출하면 정부가 승인해 줄지 미리 알 수 없는 환경에서는, 관련 규정(規定)과 규제는 기업을 괴롭히는 걸림돌에 불과합니다. 정답을 모르는 선생님이 가르치는 반에서 전교 1등 학생이 나올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불량한 규제 밑에서 세계최초의 우수한 의약품이 개발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정교하게 만들어진 규정이 사전에 공지되어 있는 상황이면 개발자는 이 규정대로만 시험을 진행하면 되므로 불필요한 시험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아도 됩니다. 국제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지요. 이 때 비로소 규제가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사실 우리의 규제 수준이 과거에는 좀 험악했습니다.또 개발자가 시험성적서를 규제 당국에 제출하면 그 때부터 규제기관 담당자들이 정답이 무엇일까 공부를 시작하는 바람에 시간이 엄청나게 지연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그러나 수많은 신약개발 경험을 축적한 오늘날 우리나라의 규제 수준도 매우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수준의 규제(선생님)가 있어야 세계 최고의 의약품(우등생)이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스마트한 규제, 즉 부족하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규정이 미리 제시되어 있는 환경 하에서의 신약개발이 최고의 경쟁력을 가질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제 우리나라 제약기업의 개발 수준이 눈부시게 높아졌기 때문에 정부 규제의 품질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여야 합니다.이 시점에서 평가과학(評價科學)의 본산(本山)임을 자처하는 약학은, 우리나라의 의약품관련 규제 수준을 세계 최고로 높이기 위한 노력을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지금 상황이 그렇습니다. 약대 후배 교수님들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2024-10-02 10:27 |
[기고] <402> 약학의 특성-7. 외부 전문가 활용의 필요성
심창구 교수. 응용과학, 특히 신약개발, 바이오의약품, 개인맞춤약학, 노인약학 등 최신의 화두가 넘쳐나는 약학에 있어서는 그 교육에 외부 전문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신약개발만 예로 들더라도 연구와 개발의 단계가 얼마나 길고 복잡합니까? 이 모든 단계에 대한 교육을 전임교수만으로 감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더구나 학생수가 적은 약대로서는 전임교수 채용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전문가를 비전임으로라도 모셔서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눈을 학교 밖으로 돌려보면 벤처나 제약회사 등에 신약개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이 계세요. 그분들 중 약대 출신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분들의 경륜이 약학 교육에 피드백되는 경로가 사실상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을 초빙교수 등으로 모셔서 강의도 듣고 학생들이 현장에 가서 실무 훈련도 받게 하고, 또 전임교수들이 그분들과 공동으로 대학원생 지도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이처럼 외부 전문가가 합류하면 전임교수들과 학생들이 신약개발 현장의 치열함, 박진감을 피부로 느끼게 되어 교육과 연구가 한층 효과적이 될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약대가 신약개발의 메카다, 약대 안에 신약개발 관련 전문가가 망라되어 있다’라는 평판을 듣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서울대의 경우, 전임 학장 때 신약개발 최고 전문가인 K 박사님을 초빙교수로 모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자주 학교에 나와 학생들을 가르치고 논문의 지도도 함께 할 의향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세미나 한두 번 부탁한 다음에는 부르지 않는 거예요.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초빙교수로 발령을 받은 분들도 원래 이러는 건가하고 적극적으로 학생 교육에 나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학교의 교수회의나 무슨 토론회 등을 할 때 매번 전임 교수들끼리만 모이는데, 그건 현명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임교수나 초빙교수나 학생을 교육한다는 측면에서 동질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데, 초빙교수를 배제하고 전임교수들끼리만 교육을 논(論)하다니요?초빙교수는 학교측에서 필요해서 어렵게 모셔온 분들인데, 임명 후 방임하는 것 같은 대접은 예의에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 결과이겠지요? 초빙교수들도 본인이 약대 초빙교수임을 잘 밝히지 않습니다. 누가 물어보면 ‘이름만 걸어 놓은 거지 뭐’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합니다. 어느 분에게 왜 초빙교수임을 밝히지 않고 지내냐고 물었더니 ‘뭐 학교에서 하는 일도 없는데 초빙교수라고 말하고 다니기가 쑥스럽다’는 겁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이래서는 약대에 훌륭한 외부 전문가들을 모실 수 없습니다. 이분들의 고견을 약대 학생 교육에 반영함으로써 학생 교육에 참여하게 된 것을 매우 보람 있게 생각하도록 만들어 드려야 합니다.전임교수가 초빙교수에게 소홀한 이유는 우선 전임교수들이 너무 바빠서 초빙교수를 활용할 정신적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신 대학 당국이 나서서 전임교수와 초빙교수 간의 협조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회식이나 무슨 토론회 또는 종강파티 같은 것이 있을 때마다 꼭 초빙교수들을 모시는 것도 협조 분위기를 만드는 첫 단추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또 하나는 전임교수들이 현장 전문가의 필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데에도 원인이 있다고 생긱합니다. 나는 1974년도부터 약 3년간 제약회사에 다닌 경험이 있는데, 회사 현장에서 어려운 일이 발생해도 학교에 달려가 자문을 구할 교수님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어요. 교수님들께 현장 감각이 없다는 사실을 제가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전임교수님들도 수시로 현장 견학을 다녀 보시면, 약학교육에 있어서 현장 전문가를 초빙교수로 모셔 도움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이상에서 1) 다양한 현장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초빙하여 그들의 경륜을 교육과 연구에 반영하고, 2)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약학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한 공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2024-09-19 09:49 |
[기고] <401> 본인이세요?
심창구 교수.오늘은 최근 여기 저기에서 수집한 유머 몇 개를 소개한다.1. 잔소리는 무서워1) 전철에서 할머니가 계속 영감님에게 계속 잔소리를 해 댔다. 영감님이 뭘 잘못하신 모양이다. 오랫동안 잔소리가 끝나지 않자 영감님은 주변 사람들이 신경 쓰여 죽을 지경이었다. 그 때 전차가 역에 서며 차문이 열렸다. 그 순간 영감님이 할머니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 여기서 내려야 해, 얼른 내립시다”. 영감님은 긴가 민가 하는 할머니 등을 밀어 전차 밖으로 나가게 했다.그러곤 영감님은 재빨리 몸을 돌려 전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차문이 닫히자 할머니는 차 밖에서 당황하며 손짓을 했지만 영감님은 모른 척했다. 할머니 모습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영감님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에이, 집에 가서 한번 되게 혼나고 마는 게 낫지 원…”2) 하나님이 남자인 아담을 먼저 만든 후 아담의 뼈로 여자인 이브를 만드셨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사람이 물었다. 왜 하나님이 남자부터 만드셨을까? 라고.이에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여자를 먼저 만드셨으면 남자를 만드실 때, ‘여기를 이렇게 만들어 주세요, 저렇게 만들어 주세요’ 하는 여자의 잔소리 때문에 엄청 고생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어쩌면 아직까지도 남자를 못 만드셨을지도 모르겠단다. 하나님도 여자는 감당하기 어려우신 모양이다.2. 착각어떤 50대 남자A가 어떤 치과를 처음 방문하였다. 대기실에 걸린 치과 의사의 면허증을 보니 30년 전의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와 이름이 같았다. 혹시 그 친구? 하며 진료실 의자에 누웠는데, 나타난 의사를 보니 대머리에 얼굴 주름이 많아 그 친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한번 물어나 보자 생각해서 “혹시 대한 고등학교 나오지 않으셨어요? 물었더니, 의사 왈 “네 맞습니다.” 하는 것이었다.기대에 차서 A가 또 물었다. “몇 년도에 졸업하셨어요?” 그러자 의사가 “19OO년에 졸업했습니다만 그건 왜 물으시죠?” 했다. 그 말을 듣고 확신에 찬 A는 “야 너 우리반이었잖아, 반갑다!!” 라고 소리쳤다.그러자 그 늙고 뚱뚱하고 대머리에 주름투성이인 그 의사가 A를 주의 깊게 살피더니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선생님 혹시 그 때 무슨 과목을 가르치셨지요?” A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우리는 각자 자기가 친구들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줄로 착각하며 산다네요. 3. 중독미국 이야기이다. 몇 년째 매일 아마존에 주문을 하던 아내가 어제 처음으로 아마존에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오늘 아마존에서 배달원이 우리집에 찾아와 노크를 하며 물었다. “사모님, 별일 없으시냐고”.4. 천국과 지옥생물 시간에 선생님이 “고래는 매우 큰 동물이지만 목구멍이 좁아 사람을 삼키지는 못한다”고 가르쳤다. 그러자 작은 소녀 하나가 물었다. “선생님, 성경을 보면 고래가 요나를 삼켯는데요?” 살짝 기분이 나빠진 선생님은 “물리적으로 목구멍이 좁아 사람을 삼킬 수 없다니까”라고 했다.그러자 소녀가 말했다. “제가 천국에 가면 요나에게 물어봐야겠어요. 고래가 삼켰다가 내 뱉어서 산 것 맞냐구요” 그러자 선생님이 말했다. “얘야, 만약에 요나가 천국이 아니라 지옥에 가 있으면 어쩌지?” 그러자 소녀가 바로 대답했다. 그럼 선생님이 요나에게 물어보시면 되겠네요.5.성실어떤 청년이 오랜 공부 끝에 공무원 시험에 붙어 드디어 동사무소에 출근하는 첫날이었다. 감격에 찬 청년은 ‘민원인들에게 잘 봉사해야지’ 하는 다짐을 하며 책상에 앉았다. 그때 한 할머니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한 후 청년이 물었다. “어떤 일로 오셨나요?” 할머니는 “사망신고하러 왔는데요” 라고 하셨다.친절한 청년 공무원이 다시 물었다. “혹시 본인이신가요?” 이 말을 들은 할머니는 깜짝 놀라 되 물었다. “꼭 본인이 와야 되나요?’ 라고. 그러자 청년이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본인이 오시면 수속이 빠르지요”그 후로 그 동네에서는 사망신고까지는 자기 손으로 하고 죽는 게 유족들에게 폐가 되지 않는다는 교훈이 전설로 남았다고 한다.
2024-08-30 10:31 |
[기고] <400>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심창구 교수.1967년 학번인 내가 약대에 다닐 때에는 (즉 라떼는) 실습 시간에 견학을 갈 때가 많았다. 종근당이나 한독약품 또는 유유산업 같은 제약회사의 공장은 물론, 삼양라면, OB맥주, 해태제과, 애경유지 같은 식품, 화공(化工) 회사의 공장, 그리고 구의동 수원지(水源池), 신탄진 연초공장, 부여 홍삼 공장 같은 곳에도 견학을 갔었다. 학교 측에서 이처럼 견학을 많이 보낸 것은 나중에 알고 보니 돈 안 쓰고 실습 시간을 때우기 위한 방편이었다. 최근 조윤상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에 의하면, 당시 실습 담당 조교들은 어떻게 하면 돈을 안 들이고 실습을 시킬 수 있을까를 늘 고심했다고 한다. 예컨대 유기제약(有機製藥) 실습에서는 원료 화학약품의 가격이 싸면서 반응 시간이 긴 합성(合成)을 과제로 선택하는 것이 노우하우(know-how)였다. 금방 합성이 끝나는 반응을 고르면, 남는 시간에 다른 실험을 시켜야 해서 다시 돈이 들기 때문이었다.사정이 어떠했든, 학생들은 외부 견학을 학내 실습보다 훨씬 더 좋아했다. 리포트를 쓰지 않아도 되는 견학은 반쯤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견학을 간 곳은 구로동에 있는 종근당 공장이었다. 아마 1967년이었던 것 같다. 그 때 거기에서 처음으로 토끼 항문에 온도계를 꽂아 파이로젠 테스트(pyrogen test)를 하는 장면을 보았다. 이 테스트는 그 후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해보지 못하였다. 그만큼 견학은 지식과 견문을 넓히는데 유용하였다. 그러나 그 날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견학 후 받은 대접이었다. 회사(종근당)는 우리들 전원(약 80명)을 고급(?) 버스에 태워 영등포 시내로 데려가 비싼 설렁탕 한 그릇씩을 사 주셨다. 그 버스가 회사 버스였는지 전세버스였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1969년인가 위생화학 실습시간에 도봉구에 있는 삼양라면 공장을 견학한 일도 기억에 남는다. 삼양라면이 국내 유일의 라면 회사로서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그때는 정부가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쌀 대신 밀가루 음식, 즉 분식(粉食)을 장려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때 ‘삼양라면’은 새로운 형태의 간편 식품(fast food)으로 국민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 면(麵)을 돼지 기름에 튀겼기 때문에 라면을 끓여 놓으면 기름이 동동 뜬 국물이 고소하고 맛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때의 오리지날 ‘삼양라면’을 즐겨 먹는다. 내게는 그 후에 나온 값비싼 사발면이 더 맛이 없었다.라면 공장 건물 밖에는 라면 생산용 돈지(豚脂) 드럼통이 작은 산더미처럼 야적(野積)되어 있었다. 나중에 이 기름이 공업용이냐 식품용이냐 하는 문제로 언론에서 난리를 친 일도 있었다.공장 견학이 끝나자 회사측은 기념으로 라면 다섯개가 들어 있는 포장(德用包裝) 한 개씩을 주었다. 당시 라면 다섯 개는 학생들에게는 큰 선물이었다. 횡재(橫財)를 한 기분에 우리들 너댓명은 버스를 타고 뚝섬으로 갔다. 뚝섬에는 1학년 때 2주에 한번씩 하루 종일 실습을 했던 약초원(藥草園)이 있었고, 그 옆에는 유원지가 있었다.뚝섬에 도착해 보니 벌써 점심 때가 지났다. 배가 고팠지만 돈이 없는 우리들 앞에 라면이나 국수 같은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나타났다. 그 가게에 들어가 “아주머니 라면 5개 다 드릴 테니 2개만 끓여 주실래요?”라고 흥정(?)을 걸었다. 다행이 아주머니가 응해 주셔서 각자 라면을 배불리 먹고 유원지에서 놀다 온 생각이 난다.역시 그해의 위생화학 실습 시간에 영등포역 근처에 있는 OB 맥주 공장을 견학한 일도 생각난다. 거기에서 처음으로 커다란 발효 탱크를 보았다. 그러나 더 기억에 남는 것은 그곳에서 난생 처음으로 맥주를 공짜로 시음(試飮) 할 수 있었던 것과, 견학이 끝났을 때 OB맥주라고 쓰인 유리컵인지 재털이인지를 한 개씩 기념품으로 받은 일이었다.그 당시에는 너무 자주 견학을 다닌 것이 문제(?)였다면, 요즘에는 반대로 너무 현장 견학을 가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2024-08-22 23:14 |
[기고] <399> 약학의 특성-6. 목적이 이끄는 강의와 연구
심창구 교수.오늘은 약대 교수님들은 자신의 강의와 연구가 앞에서 언급한 약학교육의 목적과 잘 맞는지 늘 점검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서울대 약대는 다른 단과 대학에 비해 연구를 잘 한다고 소문이 나 있습니다. 초창기에 학문 수준이 낮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약대가 이렇게 발전한 것은 놀라운 발전입니다.그러나 근대 약학 교육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110년이 지난 오늘날, 약대 교수님들의 연구 방향에 제안 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즉 약대의 연구는 인력이나 연구비 같은 자원이 매우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약학 교육의 목적에 초점이 맞도록 연구를 효율화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연구 대상은 무한합니다. 예컨대 전 세계 음식점에 있는 젓가락 개수를 다 조사해서 국가별로 그래프를 그리는 연구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결과를 어디에 써먹겠습니까?근래 비약대 출신 연구자들이 대거 약학대학에 교수로 합류하면서, 나 같은 약대 출신 노교수들이 가끔 우려하는 바가 있습니다. 혹시 비약대 출신들이 ‘나한테 약학 교육 전반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지 마라, 나는 그저 내 전공만 잘 강의하고 논문만 잘 쓰면 돼’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고요.아무래도 비약대 출신 교수들은 약학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테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학교도 비약대 출신 교수들에게 약학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끊임없이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실제로 내가 현직일 때 이분들을 위해 약학의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고급 전문가를 몇 번 초청해서 조찬 강의를 마련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정작 비약대 출신 교수들이 여기에 거의 참석하지 않는 거예요. 살기(?) 바빠서 약학에 대한 개념 정립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몹시 아쉬웠습니다.사실 현장을 잘 모르는 것은 약대 출신 교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창약, 제약, 용약, 사회약학이라는 약학 고유의 목적을 추구하는 현장에 있어서 내 연구와 강의가 어느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아요.이처럼 교육과 연구의 목표가 표적(target)을 지향하지 못하고 있으면, 식당의 젓가락 세기와 같은 쓸데없는 연구를 하게 될 우려가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약대 교수들은 자신의 강의와 연구의 방향이 약학 고유의 목적에 잘 맞도록 조준(照準)되어 있는지 총구(銃口)의 가늠자를 끊임없이 수정해야 합니다. 서울대 약대 동문 중 제약 산업 현장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해마다 모여 ‘제약관악포럼’을 엽니다. 내가 참석해 보니까 거기에서 ‘약대의 교육과 연구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등 매우 절실하고 유익한 제안이 많이 나와요.그런데 막상 그 이야기를 들어야할 약대 교수들이 그 모임에 잘 참석하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포럼 측에 ‘그 중요한 이야기를 일회적으로 주장하는 데 그치지 말고 문서로 만들어 약대에 건의해 주면 고맙겠다. 그러면 현실에 둔감한 교수들도 그 의견을 참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여러 번 말했어요. 아쉽게도 아직 건의문을 작성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교수 생활을 하다 보면 각자 내 일하기가 워낙 바빠서 약학의 거시적 목적 등을 생각할 겨를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교육학을 전공한 교수를 한 분 전임으로 모시면 좋겠습니다. 그를 통해 약학 교육 전반을 끊임없이 개혁해 나가야 합니다. 이제 고루(固陋)한 과거 교육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차원에서 약학교육의 미래를 과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약개발 등 현실이 교육을 앞서 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내 경험에 의하면 교수는 부임 5년 이내에 자기 연구를 일정 수준의 궤도에 올려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못한 분은 ‘언젠가 연구에 있어서 홈런을 치겠지’ 기대를 받았던 분도 끝내 별 일(?)없이 정년을 맞더라구요.시간이 흐를수록 약학 고유의 ‘목적이 이끄는 강의와 연구’에 교수의 역량을 집중하지 않으면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내기 어려워집니다.후배 교수님들의 분발을 응원합니다.
2024-07-24 14:13 |
[기고] <398> 요나고 여행과 사무라이
심창구 교수.지난 5월 17-19일 친구 세 부부가 2박 3일의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 사태로 오랫동안 해외 여행을 못한 데다가 내가 작년 11월에 무릎 수술을 받아 잘 못 다닌 한(恨을 풀 겸 간 패키지 여행이었다.인천에서 출발하여 돗토리현(鳥取縣) 요나고(米子) 공항, 사카이 미나토시 (요괴거리), 미사사(三朝) 온천, 모래 미술관, 모래언덕, 구라요시시(倉吉市) 신마치 온천, 아다치(足立) 현립 미술관, 마츠에성(松江城), 유시엔(由志園) 정원을 둘러 오는 일정이었다. 일정도 느슨하고 비용(1인당 100만원 정도)도 큰 부담이 되지 않아 우리 팀에게 적합하였다. 돗토리현 중 우리가 다닌 곳은 일본의 서부 산악지대로 동해를 사이에 두고 우리나라 울진과 마주보고 있는 지방이다.우리 팀 20여명을 안내한 사람은 마치 강의를 하고 싶어 가이드가 된 사람 같았다. 사실 나는 여행 가이드가 말이 많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차창 밖 풍경을 조용히 즐기거나, 피곤할 때 졸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가이드의 설명은 유익한 내용이 많았다.건강의 중요성 외에 그가 강조한 것은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에 대해 잘못된 정보가 입력된 한국 사람이 많다고 하면서 그 오류를 바로잡아 주는데 열심이었다. 예컨대 ‘1) 일본 사람들은 생선회를 좋아하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육류 고기를 좋아한다. 2) 일본인들은 조금 먹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상황이 좋으면 엄청 먹는다. 3) 일본인들은 남을 두려워해서 마트에 가서도 자판기를 통해 물건을 사기를 좋아하며,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등을 힘주어 강조하였다. 마지막 대목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일본인’이라는 내 지론(持論)과 같아서 특히 흥미로웠다.마지막 날에는 최근 일본 국보(國寶)로 지정된 마츠에 성을 구경하였는데, 나무로 지은 천수각(天守閣)이 특히 예뻤다. 조그만 배를 타고 성 주위의 해자(垓子)를 유람한 것도 재미있었다.그러나 가장 흥미 있었던 것은 그 성을 구경할 때 가이드가 사무라이(侍)에 관해 설명을 해준 내용이었다.그에 의하면 ‘사무라이는 각 성의 성주(城主)가 성을 지키기 위해 고용한 사람들이다. 누가 외부에서 성을 뺏으러 공격해 오면 이에 맞서 싸우는 무사들이라는 말이다. 나중에 사무라이 일부가 성 주변에 천막을 치고 큰 힘을 휘두르는 바람에 막부(幕府)라는 말도 생겼다고 한다.성을 둘러싼 전투는 사무라이가 전담하는 일이었다. 일반 농민들은 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농민의 입장에서는 성 뺏기 전투가 크게 공포스러울 것도 없었다. 성주가 바뀌면 세금을 새 성주에 바치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농민들이 의병(義兵)을 일으켜 침입자와 싸우는 일 따위는 전혀 없었다.’ 의병과 관련하여 우리나라는 상황이 매우 달랐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왜군이 첫번째로 놀란 것은 도처에서 의병이 일어나 관군(官軍)과 함께 왜군과 싸운 일이었다고 한다. 두번째로 놀란 것은 한양을 함락시키고 보니 성주인 임금(선조)이 의주로 피난을 가 한양성이 비어 있는 일이었다.봉건국가였던 일본에서는 전투에 진 성주는 자결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다른 성으로 도망가 봤자 거기 성주가 살려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은 상황이 달랐다. 중앙집권국가라 전국이 다 임금의 영토여서 임금은 아무데라도 피난 갈 수가 있었다.조선성에 성주인 임금이 도망가고 없다? 왜군은 이런 상황이 매우 당황스러웠다. 임금이 있었으면 임금의 항복을 받아 전쟁을 완벽하게 끝내려고 했는데, 임금이 없어졌으니 누구의 항복을 받아야 하나 혼란스러웠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선조의 도망은 역설적으로 신(神)의 한 수였을지도 모르겠다.가이드에게 그럼 닌자(忍者)는 뭐냐고 물어봤더니 닌자는 사무라이의 정보원 정도로 크게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했다. 아, 그렇구나! 아무튼 이번 여행은 이모저모 재미도 있고 배운 것도 많은 여행이었다. 다만 제대로 배운 것인지는 차차 검증을 해 볼 생각이다.
2024-07-10 13:30 |
[기고] <397> 종속변수의 유비무환(有備無患)
심창구 교수.지난 5월 2일 제대(1974년) 50주년을 기념하여 군대 동기 몇몇이 전주에서 1박2일 모임을 가졌다. 부부 동반으로 만나는 이 모임은 올해로 35회가 되었다.모임 둘쨋날 아침 콩나물 해장국 집에서 함께 아침을 먹고 있을 때였다. 한 전우의 아내가 남자들 식탁에 와서 “콩나물 좀 더 갖다 드릴까요?” 물었다. 남자들은 다들 “됐어요” 라고 사양했다. 그러나 그 부인은 남자들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커다란 콩나물 접시 하나를 갖다 놓으며 “더 드세요” 하는 것이었다. 유레카! 순간 나는 크게 깨달았다.아! 세상의 모든 아내들은 다 남편의 의견을 듣지 않는구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구나, 우리집만 그런 게 아니구나!젊었을 때 아내와 옷을 사러 갔을 때, 아내가 나보고 내 옷을 고르라고 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하나 골랐더니 그건 내게 안 어울린다며 결국 아내 마음대로 내 옷을 샀다. 그 후 나는 옷을 선택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커피숍에 갔을 때 우유 없는 메뉴를 골라 달라고 부탁해 버릇했더니, 이제는 아내 없이 혼자서는 메뉴를 결정하지 못하게 되었다. 식당에 가서 내가 고민 끝에 메뉴를 고르면 아내가 ‘당신 그거 싫어하잖아!’ 하곤 한다. 순간 ‘내가 이거 싫어하던가?’ 헷갈린다. 얼마 전부터는 아예 메뉴 결정권을 아내에게 넘겼다. 얼마나 편한 지 모르겠다.나이가 들수록 아내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다. 그래서 외출할 때면 대부분 아내와 함께 다닌다. 젊었을 때는 아내가 나를 졸졸 따라다녀 주길 바랐다. 아내가 나의 종속변수가 되어주길 바랐던 것이다.지금은 내가 아내의 종속변수로 산다. 아내와 외출 시 내가 주차하고 나면 벌써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독립변수인 아내가 그 새를 못 참고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종속변수인 내가 찾아 나서야지 도리가 없다. 경륜이 쌓이면서 아내를 찾아내는 노우하우도 늘었다. 옷 가게에서 발견할 확률이 제일 높다. 나는 아내의 종속변수가 되어 간다는 사실에 익숙하다. 자존심 상할 것도 없다. 남편을 떼어 버리고 혼자 나다니는 아내가 대세(大勢)인 오늘날, 아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직도 자신이 독립변수인 줄 알고 아내를 휘어잡으려 발버둥치는 남편들을 보면 안쓰럽다. 아내를 휘어잡아? 그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주위를 한번 돌아보라, 그런 남편이 있나. 만약 있다면 그 가정은 좀 위태한 상황이 아닐까?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지 말고 지금부터 아내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77세 영감이 체득(體得)한 교훈이다.왜 남편이 아내에게 순종해야 하는가? 그것은 모든 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수명이 남성보다 훨씬 길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남편은 아내를 못 이긴다. 오죽하면 “청년이여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결혼 전에 바꿔라, 결혼하면 티브이 채널 하나 네 마음대로 못 바꾼다”라는 말이 있겠는가?여성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사례는 수명 외에도 차고 넘친다. 예컨대 대부분의 아내는 암에 걸린 남편을 극진히 간호한다. 반면에 남편들은 이런 저런 핑게를 대고 아내 곁을 지키지 않는다. 심지어 아내를 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어떤 암 수술 전문의는 ‘남자들은 다 나쁜 놈들이예요’라고 했다.한 실험에서 침팬지 모자(母子)를 작은 방에 가두어 놓고 방바닥이 뜨거워지도록 아궁이에 불을 땠더니 엄마는 자식을 머리에 이고 발을 동동 구르더란다. 다음으로 부자(父子)를 넣고 관찰했더니 글쎄 아버지가 태연히 아들을 깔고 앉았더란다. 이처럼 부성애는 모성애의 발바닥도 못 쫒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디 그 뿐인가? 이해력, 기억력, 수다 등에서도 남편은 결코 아내의 적수(敵手)가 되지 못한다. 내 생각이 아니다. 어느 원로 교육학자의 주장이다. 이제 남편들은 다 항복하자. 더 이상 버티지 말자. 아내가 콩나물을 갖다 주면 잠자코 먹자.수명, 사랑, 이해력 등 모든 면에서 우월한 아내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로 순종하는 자유를 향유하자. 유비무환이 아닌가?
2024-07-10 13:28 |
[기고] <396> 약학의 특성-5 커리큘럼
심창구 교수. © 약업신문약학 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에게 의약품의 창조(창약학), 제조 (제약학), 사용(용약학) 및 사회성 (사회약학)에 관한 전문 지식과 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교수를 잘 뽑고 강의 커리큘럼을 효율적으로 짜야 합니다.학부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4분야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지식들을 교육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집합의 크기가 매우 방대하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 대한 누락이나 부족, 또는 중복이 없도록 완벽에 가까운 강의 커리큘럼을 구성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얼마전 50~60년전에 약대를 졸업한 대선배들을 만나, 최근의 약대 커리큘럼을 보여드렸더니 ‘학과목 이름이 너무나 친숙하다’고 신기해(?) 하더군요. 너무 구태의연하다는 말이지요. 혹자는 그 구태의연함의 원인이 약사국가고시 과목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만, 이유를 막론하고 첨단과학의 물결 속에서 약학의 존재가치를 드높일 수 있도록 커리큘럼 개혁을 해 오지 못한 점은 다 같이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약대 교육에서 강의 요목(要目, syllabus) 중에 어떤 요목은 중복되고 어떤 요목은 누락되어 있다면, 이는 그 대학의 교수진이 특정 전공에 중복 또는 누락되어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균형을 잃은 교수진이 균형 잡힌 커리큘럼을 구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서울대 약대의 전임 교수의 수가 50명을 넘었습니다. 우리나라 근대 약학교육 110년사에 기념할 만한 숫자이지요.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특정 전공에 다수의 교수가 몰려 있는 반면, 꼭 필요한 전공의 교수는 없거나 모자라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만약에 교수 50명의 전공이 각자 다 다르게 분포되어 있다고 가정해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전공 지식을 균형있게 교육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전공의 중복에 따른 일부 강의 요목의 중복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또한 약학교육의 목표에 대한 교수들의 컨센서스를 도출할 때에 보다 중심이 잘 잡힌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종래에는 예컨대 약제학 교수가 한 명 정년 퇴임하면 그 자리를 다시 약제학 전공 교수로 채우는 식으로 교수를 채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새로운 전공 분야를 교육 과정에 도입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약대의 교과목 이름이 시대에 뒤떨어지게 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교수 채용제도 탓이었다고 생각합니다.제가 1980년초에 직접 봤던 일인데요, 일본의 동경대학에서는 한 전공의 교수가 퇴임을 하면 다른 전공의 교수들이 모여 그 자리를 어떤 전공으로 채울까 논의합니다. 만약 학문 발전 추이(推移)상 그 전공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판단되면, 하루 아침에 그 전공을 없앨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인지 오늘날 동경대를 비롯한 일본 약대의 커리큘럼은 우리에게 생소한 과목 이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다행히 서울대 약대는 지난번 오유경 학장(현 식약처장) 때부터 교수 공채 제도의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전공의 교수가 정년 퇴임을 하면 그 자리를 반드시 같은 전공의 교수로 채우지는 않도록 바꿨다고 합니다. 대신 미리 신규 채용이 필요한 전공의 우선 순위를 정해 놓고, 그 순서에 따라 교수를 채용한다고 합니다.요즘은 과거와 달리 약학 및 생명 과학 영역의 인재 풀이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마음만 잘 먹으면 새로운 전공의 교수를 얼마든지 모셔올 수 있습니다. 다만 노파심에서 한 말씀 추가하자면, 새로운 전공을 도입하거나 전공의 우선 순위를 정할 때에 현장의 실무 전문가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교수들은 현장을 잘 모르기 쉽기 때문입니다. 교수진을 잘 갖추고 나면 강의 실라버스를 1~6학년에 걸쳐 합목적적으로 배열해야 합니다. 그리고 누락되거나 중복된 부분은 없는지, 학년별 수준에 맞게 단계적으로 잘 배열되어 있는지 끊임없이 검토해야 합니다. 요컨대 1) 교수를 잘 뽑고, 2) 커리큘럼을 끊임없이 개선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2024-06-19 21:51 |
[기고] <395> 약학의 특성 - 4. 대표적인 평가과학
심창구 교수. © 약업신문약학의 특성을 여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약학의 평가과학(評價科學)적 특성’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과학은 크게 순수과학, 응용과학, 그리고 평가 과학의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우선 순수과학(pure science)이란 ‘사물의 메커니즘(why?)’ 즉 왜 그럴까를 연구하는 학문을 말합니다. 두번째, 응용과학(applied science)은 얻어진 지식을 실생활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how to apply?)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마지막 세번째 과학인 평가과학은 좋고 나쁨의 판단의 기준을 어디 (which)에 놓을까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영어로는 regulatory science라고 합니다만 우리는 규제과학, 일본은 평가과학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평가과학의 대표적인 학문이 바로 약학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약학의 사명 중 하나는 약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저울질해서 특정 질환의 환자에게 써도 좋을지 여부를 판단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어떤 약의 좋고 나쁨을 고정된 한 개의 기준으로 잘라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어려운 일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국가 기관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입니다.예컨대 항암제는 얼마나 안전하면 암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감기약에 대해서는 사소한 부작용만 있어도 개발을 승인하지 않는 식약처가, 항암제에 대해서는 탈모나 구토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경우에도 곧잘 개발을 승인합니다. 다소 부작용이 있더라도 암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개발을 승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약의 승인 기준은 그때그때 다르고, 또 달라야 합니다. 두 팔 저울을 사용하여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할 때에 두 팔의 받침돌을 어디에 놓아야 할까요? 이는 그 약을 무슨 병에 쓸 것인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평가를 내리는 사람의 역할은 법으로 치자면 마치 검사와 변호사의 의견을 종합하여 판결을 내리는 판사와 비슷해 보입니다. 이처럼 사안에 따라 저울의 받침대 위치를 바꾸어 가며 올바른 판단을 내릴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매우 균형 잡힌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런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바로 약학 교육의 사명입니다.순수과학자나 응용과학자들은 어떤 메카니즘을 규명하거나 응용가능성을 발견하면 금방 흥분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폴리머(polymer)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국제 학회에 가 봤더니, pH나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새로운 기능성 풀리머를 발견했는데, 이 물질이 새로운 의료용 물질로서 그 응용성이 크게 기대된다는 식의 발표가 많았습니다.그래서 제가 질문을 했습니다. 그 폴리머를 사람에게 쓸 수 있겠냐고요. 그랬더니 그거는 자기의 관심사가 아니래요. 자기는 이런 메커니즘이 재미있어 연구를 할 따름이라는 거예요. 자기가 재미있어서 연구한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그러나 인체에 대한 안전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아무리 기능성이 좋아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안전성을 입증하는 것은 새로운 약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쉽사리 그분들의 흥분에 동참할 수가 없었습니다.약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기능성(유효성)을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부작용(안전성)을 걱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폴리머의 신기한 기능성을 확인하고도 그 응용성에 대해 쉽사리 낙관하지 않습니다. 흥분하지 않는 것은 물론 종종 비관적인 견해를 갖습니다. 새로운 물질 하나를 얻었다고 흥분했다가 결과가 좋지 않아 머쓱해지는 사례를 많이 봐 왔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약학자들은 흔히 매사에 소심(小心)하다는 평을 듣습니다. 유효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고려하고 평가해보면 그 물질의 앞날에 대해 걱정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는 어떤 면에서는 평가과학자인 약학자가 기꺼이 감당해야 마땅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약학의 평가과학적 특성, 그리고 이에 따른 약학자의 소심성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이야기는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2024-05-22 11:29 |
[기고] <394> 약학의 특성 - 3. 교육의 목표
이제 오늘 강의의 본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약학 교육의 목표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아래 개념도를 봐 주시기 바랍니다.약학의 첫번째 목표는 새로운 약을 창조해 내는 창약학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창약학이란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 낸 용어인데요, 약학에서는 약물 분자의 창조로부터 신약개발에 이르는 과정에 필요한 제반 지식을 공부해야 합니다. 두번째 목표는 우수한 의약품을 경제적으로 제조하는 제약학입니다. 여기에서 유위해야 할 것은, 의약품의 품질을 평가할 수 있는 안목(眼目) 없이 우수한 의약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제약학은 평가 기술에 기반한 기술이자 과학이라는 점입니다. 세 번째 목표는 개발, 제조된 의약품을 환자에게 가장 유효하고 안전하게 사용하는 방법, 즉 용약학입니다. 대표적인 과목이 임상약학(臨床藥學)이지요. 네 번째 목표는 위에서 언급한 약학의 3대 핵심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사회와의 소통입니다. 이런 학문 분야를 사회약학(social pharmacy)이라고 합니다. 핵(核)에는 세포의 정체성이 들어 있지만 세포막이라고 하는 보호막이 없으면 핵도 세포도 결국 고사(枯死)하게 됩니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약학의 핵심 가치를 살리기 위한 사회약학의 중요성도 커지게 마련입니다. 약학 교육의 기본적인 목표는 이상에서 언급한 창약학, 제약학, 용약학 및 사회약학이라는 4대 분야에 대해 균형 감각을 갖춘 전문가를 길러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교과목을 통해 방대한 양의 지식을 교육해야 하고, 따라서 매우 긴 기간에 걸친 교육이 필요해집니다. 그래서 학부 과정에서는 부득이 4대 분야에 공통으로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우선적으로 교육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림에서 4개의 원이 겹치는 중앙 부분에 해당되는 지식입니다.조금 전에 ‘균형 잡힌’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창약 등 특정 목표에 편향된 지식만 가지고는 약의 창조, 제조 및 임상 응용 단계에 있어서 올바른 결론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특정 악기 연주에 편향되어서는 안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이야기는 뒤의 ‘평가과학’ 편에서 다시 설명하겠습니다.균형 잡힌 약학 지식을 갖추는데 필요한 지식을 종합적으로 다 가르치려 들 수도 없습니다. 그러려면 아마 10년을 가르쳐도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 필요한 기본 지식을 중복이나 누락되지 않도록 효율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관건(關鍵)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커리큘럼을 정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서울대 역사상 최초로 교육전문가인 김 박사님을 약학 교육 담당 교수로 모신 이유가 바로 커리큘럼의 효율화에 있을 것입니다.한편 공통 기본 지식만 강조하다 보면 약학의 특정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낮아질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약학의 대학원 과정에서는 그림에서 중복도가 낮은 부분을 교육하게 됩니다. 즉, 학부에서는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지식을 교육하고 대학원에서는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을 교육하게 되는 것입니다. 약대 졸업생이 사회에 진출할 때는 보편적인 약학의 초급 전문가로 출발합니다. 그후 경험을 쌓으면서 고급 전문가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 때에 대학원에서의 공부가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다 경륜이 더 쌓이면 각 분야의 리더로 성장할 기회가 생기게 됩니다. 이 때에는 전문적인 지식에 더하여 다시 보편적인 지식이 필요해집니다. 약대 학부 때의 균형 잡힌 교육이 리더의 균형 잡힌 판단력에 다시 큰 힘을 발휘한다는 말씀입니다.요컨대 약학 교육의 목표는 창약 제약 용약 및 사회약학에 대한 균형 잡힌 전문가를 길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24-05-16 11:10 |
[기고] <393> 약학의 특성 - 2. 강의
1) 강의가 많았다.내가 1967~1971년에 약대에 다니면서 느꼈던 첫 번째 소감은 강의가 너무 많다는 거였어요. 일주일에 52시간씩이나 수업을 들었으니까요. 월~금요일까지는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8시간씩 강의를 듣거나 실습을 했고 토요일에는 5시간 강의를 들었어요. 수강 신청이란 개념도 없었어요. 마치 고등학교처럼 주 52시간짜리 강의 시간표에 따라 수업을 받았거든요. 강좌명도 무지하게 많았어요. 문화사, 사회과학개론, 영어, 국어, 독일어, 약학라틴어 같은 교양과목들과, 정성분석화학, 정량분석화학, 약용식물학, 생약학, 자연과학개론, 동물학, 화학공학개론, 농약학, 신약학, 물리약학, 천연물화학, 생화학, 위생화학, 식품위생학, 약품미생물학, 약제학, 이론약제학, 무기제약, 유기제약, 통계학, 본초학, 약물학 같은 전공과목들 및 실습과목이 있었어요. 덕분에 재학 중 주워들은 잡다한 지식들이 많았어요. 지식의 깊이는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당시 약대 졸업생들은 ‘모르는 것도 아는 것도 없다’는 평(評?)을 듣곤 했어요. 그때부터 왜 약대에서 이렇게 많은 걸 가르치는 걸까? 이게 늘 미스테리였어요. 다른 학과, 예컨대 화학과(化學科) 같은 데는 약대처럼 과목수가 많지 않다고 들었어요. 아무튼 약대는 정신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강의 과목 수가 너무 많았어요. 오늘날까지 약대에 과목 수가 많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강의 후반부에서 설명하겠습니다.2) 강의 수준이 높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당시의 강의 수준에 대해 언급하겠습니다.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의 약학 교육을 담당하게 되면서 부닥친 첫번째 어려움은 교수진의 확보였을 거예요. 경성약학전문학교(경성약전)가 문을 닫은 후, 잠시 과도기를 거치고 6.25 전쟁 중에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이 문을 열었지만, 그 와중에 교수진을 구해야 했으니까요. 경성약전 졸업생들 중에서 교수로 초빙된 된 분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분들은 사실 본격적인 연구나, 논문 쓰기를 해 본 경험이 별로 없는 분들이시잖아요. 그러니 그분들의 강의 수준이 그다지 높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요. 교과서를 읽어주는 수준의 강의도 있었어요. 게다가 무슨 대단한 이론에 대한 이해보다 단순히 암기해야만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과목들이 많았어요. 에피소드 하나 소개할까요? 동경대학에서 약학박사 학위를 받고 오셔서 3학년 생화학을 강의하시는 교수님이 계셨는데, 1년 내내 효소 한 챕터 밖에 안 가르치셨어요. 덕분에 ”효소는 단백이데이”라는 말씀이 귀에 박혔습니다만, 생화학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래저래 학생들은 학교 공부에 염증을 느끼곤 했지요. 일부 학생은 화학과로 전과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2013년 정년퇴직을 전후하여 약학대학의 역사를 좀 공부해 보니까 옛날 은사님들께 이러한 불평 불만을 할 상황이 아니더라구요. 경성약전을 나오신 그분들께서 약학 불모지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학문 체계를 세우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강의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은사님들의 노고에 새삼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그러다가 1960년대 후반부터 김병각, 이상섭, 김낙두 교수님 같은 분들이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강의 내용과 수준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1975년 약대가 관악캠퍼스에 합류한 이후, 즉 많은 약대 졸업생들이 미국, 독일, 일본 등 외국에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교수가 된 이후에는 강의 내용과 수준이 급격히 좋아졌어요. 예컨대 1982년에 K 교수가 부임해서 생화학을 가르쳤는데 학생들을 아주 혹독하게 훈련시켰어요. 그때부터 약대 학생들의 생화학 실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후로는 물론 다른 교수님들도 다 열심히 강의를 하셔서 약대생들의 실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어요. 한 10여년전부터는 약대가 연구를 잘하는 대학이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헸어요. 옛날 우물안에서 놀던 시절에 비하면 실로 놀라운 발전이지요 (다음호에 계속)
2024-05-16 11:07 |
[기고] <392> 약학이란 어떤 학문인가? - 1. 서론
심창구 교수. © 약업신문2022년 9월 30일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의 신임 교수 세 분에게 ‘약학이란 어떠한 학문인가?’를 주제로 강의를 한 일이 있었다. 이 분들은 약학대학 학부 출신이 아니었다. 대학에서는 이 분들에게 약학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좀 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그 때의 강의 동영상을 금년 초에 학교로부터 받았다. 화질이 그럭저럭 괜찮기에 페이스북에 올려 보았더니, 짧은 기간 안에 700회에 육박하는 조회수가 나왔다. 이 주제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그래서 그 동영상의 음성을 쳇지피티의 도움을 받아 문자화 한 다음, 이를 다소 수정 가감하여 약창춘추에 연재해 보기로 하였다. 연재에 앞서 독자 제현의 양해를 `구하는 바는, 여기에서 언급하는 내용은 필자의 생각일 뿐이라는 점이다. 감히 약학을 정의하는 것은 필자의 분수에 넘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독자들께서는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일람해 주시기 부탁드린다.강의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강의했을 때의 경어체를 그대로 살려 싣기로 한다.1.서론방금 들어보니까 세 분이 발령받은 지 한 달 정도 되었다고 그러는데 학교에서 신임 교수들을 위해서 이와 같은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을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러한 프로그램은 나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분이 이런 강의를 듣기 원했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굉장히 바쁘고 여러 가지로 정신이 없을 시기에 이 자리에 와 주신 것을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사실 제가 그 동안 공사석에서 ‘약학은 이러한 학문이다’라고 얘기를 좀 해왔지만 막상 귀중한 분들의 귀중한 시간을 할애 받아 이야기를 하려니까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걱정이 좀 됩니다. 앞으로의 교육과 연구 방향 정립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으실 수 있다면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크게 기대하지 마시고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우선 제 소개를 잠시 하면 저는 1967년도에 연건동에 있던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제약학과에 입학해서 1971년도에 졸업했어요. 1967년은 이화여대와 서울대에 제약학과가 처음으로 생긴 해예요. 그러니까 제가 우리나라에서 제약학과 최고의 고참 선배입니다.서울대 약학대학은 왜정 때인 1915년에 개교한 조선약학교를 거쳐 1930년 경성약학전문학교라는 이름으로 40년간 을지로6가에 있었어요. 그 시절에는 나름대로 교수들이 공부를 잘 가르쳤던 것 같아요. 동경대학 약학과 및 일본의 약학전문학교 출신들이 교수진이었어요. 그러다가 1945년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자, 경성약학전문학교는 1946년 사립 서울약학대학을 거쳐 6.25 전쟁 중인 1950년에 국립서울대학교 약학대학으로 편입되었어요. 6.25 전쟁 때는 서울대학교가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본부가 부산에 있었고, 입학시험도 부산에서 치뤘어요. 그러다가 전황이 좀 안정이 되자 을지로에 있는 약대 건물에 서울대학교 서울 분교가 생겼어요. 그리고 서울 거주자를 대상으로 신입생을 뽑았어요. 신입생들을 학과 구분 없이 이과 2반, 문과 2반으로 나누어 약 6개월 정도 강의를 하다가 9.28 수복 때 부산에 있던 서울대학교가 서울로 오면서 부산 본교 학생들과 서울 분교 학생들이 합치게 되었어요. 1959년 약학대학은 을지로에 있던 건물을 음악대학에 넘겨주고 종로구 연건동으로 옮겨와 거기에서 16년간 있다가 1975년에 관악 캠퍼스로 옮겨왔습니다.나는 연건동에서 공부했어요. 그리고 1979년에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동경대학에 가서 3년 반 만에 제제학(製劑學) 전공으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고 1983년 3월에 모교 조교수가 되었어요. 당시만 해도 학위를 받으면 바로 조교수가 될 수 있었어요. 지금에 비해 모든 게 수준이 낮았죠. 2003~2004년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하고 학교로 돌아와 .2013년에 정년퇴직해서 지금 명예교수로 있습니다. 약학대학의 상세한 역사는 ‘서울대학교약학대학 100년사 (서울대출판문화원, 2015)’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4-04-11 10:37 |
[기고] <391> 한 박자 쉬고
심창구 교수. © 약업신문교회에 처음 가는 사람은 목사님이 자꾸 자기를 보고 죄인이라고 하는 데 기분이 살짝 나빠진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이 내 죄를 어떻게 알았지?’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내가 죄인까지는 아닌데’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평생 죄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터이니 죄인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사람을 ‘걸린 죄인과 걸리지 않은 죄인’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였다. ‘걸린 사람은 벌금을 내거나 감옥에 갇혀 있지만, 걸리지 않은 사람은 여기 예배당에 와 있거나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것이다.기독교에서는 늘 죄를 회개하라고 한다. 우선 내가 죄를 지은 것을 깨끗이 인정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빌고, 그 다음에 옛 영혼을 몰아내고 정직하고 정결한 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말씀이지만 실행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이스라엘 역대 왕 중에서 다윗왕이 으뜸으로 꼽힌다. 그는 영적으로나 현실 정치에서 탁월한 균형감각을 가진 왕이었다고 한다. 그 다윗 왕이 우리아라는 장군의 아내인 밧세바를 뺏어 아내로 삼고 우리아를 죽게 만드는 큰 죄를 저질렀다. 그때 나단이라는 선지자가 와서 다윗왕을 꾸짖으며 죄를 회개하라고 했다. 이에 다윗왕은 자기죄를 즉시 회개하였다고 한다.다윗은 당시의 왕이었다. 지은 죄를 회개하는 대신 꾸짖은 사람 나단을 바로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다윗은 회개하였다. 그런 면에서 다윗을 훌륭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단이 선지자였기 때문에 그 꾸지람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컨대 평범한 목동이 다윗왕을 꾸짖었다면 목동의 생명이 위험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말은 내용보다 누가 말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훌륭하다고 인정을 받고 있는 사람이 하는 말에는 힘이 있다. 그러나 품행이 엉망인 사람이 아무리 명언을 쏟아낸들 누가 그 말을 듣겠는가? 그런 면에서 우리는 남의 죄를 나무라기에 앞서 그 말을 할 자격을 갖추는 일이 더 중요해 보인다.자기가 죄인임을 스스로 깨닫고 있는 사람도 누군가로부터 ‘회개하시오’라는 지적을 받으면 우선 불쾌한 마음이 든다. ‘회개를 해도 내가 알아서 할 텐데, 당신이 뭔데 나보고 회개하라고 하냐?’는 반발심도 생긴다. 그래서 남에 대해 ‘지적질’을 하고 싶을 때에는 서두르지 말고 우선 한 박자 쉬면서 나를 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덕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나니까 얘기해 준다’거나, ‘내 말이 뭐 틀렸냐?’며 하는 말은 비록 ‘바른 말’ 일지언정 부작용만 일으키기 쉽다. 상대방의 개과천선을 이뤄내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일부러 더 죄를 짓게 만들 우려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고 이어령 선생님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뜨거운 열정과 냉철한 이성이 아니라 따듯한 눈물 한 방울’이라고 하셨다. 그분 말씀대로 냉철한 이성에 근거한 비판, 지적질, 바른 말은 사회 질서를 바로잡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분열을 조장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수백마디 꾸짖음이나 지적질보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따듯한 눈물 한 방울이 우리 사회를 따듯하게 만드는데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는 그분의 말씀에 완전 공감한다. 끝으로 사족(蛇足) 한마디. 세상의 법망(法網)은 미리 쳐 놓은 거미줄과 같아야 할 것이다. 거미줄(법망)이 쳐져 있는 곳으로 지나가려고 하는 벌레는 영락없이 거미줄에 걸리게 마련이다.세상의 법망이 잠자리 채와 같아선 안될 것 같다. 잠자리 채는 들고 있는 아이가 선택한 먹이를 쫒아가 덮쳐 잡는다. 잡힌 벌레는 ‘왜 수많은 먹이 중 하필 나를 잡았느냐’고 투덜댄다. ‘운수가 나빴다’며 자기 행동을 회개하지 않는다. 그래서 잠자리 채를 휘두르는 방식은 세상의 죄를 방지하는 데에 효과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약 60년전 고등학교 일반사회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이다.
2024-04-05 11:32 |
[기고] <390> 수금푸
심창구 교수. © 약업신문군대에서 경상도 출신 고참병이 한 신병에게 “야, 수금푸 좀 갖고 온나”라고 명령을 내렸다. 신병은 수금푸가 뭔지 몰라 당황해서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가져가 봤으나 고참병은 매번 그게 아니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수금푸는 경상도에서 삽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몇 년 전에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름 경상도 방언 좀 안다고 하던 나도 매우 놀랐다. 경상도에서는 선반을 시렁, ‘매우 많다’를 ‘천지삐까리다’, ‘항거 많다’ 또는 ‘쌔빌맀다’라고 한다는 정도까지 알고 있던 나로서도 수금푸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후 나는 이 말이 어디에서 유래한 말일까 늘 궁금하였다. 그런데 차에 며칠 전 TV를 보는데 한 연예인이 길거리에서 뭔가를 사 먹으면서 이 스쿠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아마 아이스크림을 사는 중이었던 것 같은데, 상인이 큰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듬뿍 떠서 담아주자 연예인이 감탄하면서 ‘와! 한 스쿠푸 잔뜩 주시네요’ 하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이 스쿠푸가 영어로 scoop 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떠 올랐다. 즉시 사전을 찾아보니 scoop는 ’아이스크림이나 밀가루 등을 뜰 때 쓰는 작은 국자같이 생긴 숟갈’이라고 나와 있었다. 이 scoop가 어쩌다 경상도에서 스금푸로 바뀐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좀 더 확인을 해 봐야 할 일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식으로 외래어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발음이 바뀐 사례가 제법 있을 것 같았다.기왕 군대 이야기로 글을 시작했으니 사병의 계급에 대한 호칭 이야기까지 해보기로 하자. 군대에 들어가면 훈련소를 졸업하면서 계급장을 받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작대기 하나, 그 다음에는 작대기 둘, 그 다음에는 작대기 셋,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작대기 4개가 들어있는 계급장을 받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작대기 하나를 이등병, 둘을 일등병, 셋을 상등병, 넷을 병장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는 일등병, 이등병, 상등병, 병장 순으로 불러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그래서 여성이나 군대에 가보지 않은 남자들은 계급장을 보고 그 사병의 계급을 제대로 부르기 어려워한다. 나도 이게 늘 이상했는데, 어느 날 중국어에 능통한 동료 사병으로부터 그 이유를 듣게 되었다. 짧게 말하자면 중국에서 일이삼사(一二三四)라는 한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그 발음을 중국식으로 이얼산시(이일삼사)로 했어야 했는데 누군가의 착오로 일이삼사로 잘못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이었다.우리가 이등병, 일등병, 상등병 순으로 부르는 것은, 군대에서만 중국어의 발음인 이얼산시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건군 초기에 중국군의 제도를 모방하여 군 제도를 만들다 보니 계급장에서만 이얼산시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제대로(?) 된 발음인 이얼산시를 들여왔더라면 계급장의 호칭에 대한 혼란(?)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중국에서 한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실수로 잘못 들어온 예를 하나 더 소개하고자 한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에서 콜레라를 호열자(虎列刺)라고 불렀다. 이는 아마 콜레라와 발음이 비슷한 중국어 한자에서 유래했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콜레라와 호열자는 발음의 유사성이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군대 동료의 말이 원래 중국에서는 콜레라를 虎列辣(호열랄)이라고 썼었는데, 누군가가 이 단어를 우리나라에 들여올 때 랄(辣)자 대신 모양이 비슷한 자(刺)자로 잘못 들여와 사용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虎列辣의 중국식 발음은 콜레라에 가깝다고 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사소한 실수 하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잘못(?)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약학 용어 중의 엑기스, 충진, 캅셀도 각각 엑스, 충전, 캡슐의 잘못인데, 꼼꼼하게 따져보면 이런 류의 오류는 천지 삐까리로 많을 것 같다. 만약에 Scoop가 수금푸로 바뀐 것이라면, 이는 이얼산시가 일이삼사가 되고, 호열랄이 호열자로 잘못 바뀐 것 보다는 훨씬 애교 있는 실수가 아닐까?
2024-03-18 09:51 |
[기고] <389> 약학사회지 제6권
심창구 교수. © 약업신문작년(2023년)에 창립 9주년을 맞은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회장 김진웅)는 작년 4월 서울대 약대에서 제18회 약학사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심포지엄의 연제는 1. 대한약학회의 학술지인 ‘Archives of Pharmacal Research의 발전사’(이석용 성균관대 약대 교수), 2. ‘일제식민기의 여성약학도’(이영남 충북대 명예교수), 3. ‘해외 약학사학회의 최근 동향’(손일선 일본 약학사학회 국제위원)이었다.이어 11월에는 ‘코로나-19 팬데믹과 범 약계의 대응’이라는 주제 하에 제19회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는데, 여기서는 1. ‘코로나19 의료제품의 신속 허가 및 개발 지원’(정지원 식약처 사전상담과 과장), 2. ‘코로나 19 시대 대한약사회의 역할’(김대진 동국대 약대 교수), 3. ‘코로나 19 극복을 위한 병원약사의 역할’(황은정 양산부산대병원 약제부장), 4. ‘코로나 대응 국내외 제약업계의 활약’(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정책본부장)에 대한 발표와 5. 종합논평(심창구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이 있었다.2024년 초에는 약학사회지 제6권 제1호가 뒤늦게 발간되었다. 이번 호에는 「한국약제학회 학술지의 발전사 (신범수, 신소영, 김채환, 한효경)」, 「한국독성학회지 Toxicological Research의 발전사 (곽미경, 천영진)」 등의 원보와 함께 작년에 처음으로 개최된 ‘약학사 사랑방 좌담회’의 녹취록인 「원로 군진약사들의 회고담」 등이 수재되었다.한국약제학회 학술지인 ‘약제학회지’는 1971년에 창간된 이래 년 4회 발간하다가 2004년부터 연 6회로 증간하였다. 2010년 제40권 제3호부터는 학술지의 이름을 Journal of Pharmaceutical Investigation (JPI)로 바꾸고 전체 내용을 영문으로 발간하였다. JPI는 오랜 노력의 결과로 2021년 Science Citation Index Expanded(SCIE)에 등재되었는데, 2023년에 처음으로 발표된 인용지수(impact factor)가 무려 5.5로 해당분야 국제 학술지 중 상위 20% 이내에 랭크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한편 한국독성학회의 학술지인는 1985년 (사)한국독성학회/한국환경성돌연변이발암원학회의 공식 학술지로 창간된 『한국독성학회지』를 모태로 한다. 이 학술지는 2008년부터 Toxicological Research로 이름을 바꿔 연 4회 발간되고 있다. 이 학술지는 독성학 전반의 학문적 이해와 발전을 도모함을 목표로사람과 동물에 독성을 유발하고 이로 인해 공중보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의약품, 화장품, 생활용품 및 식품첨가물 등 화학물질 독성과 관련된 영역의 연구, 포럼, 종설 등의 논문을 게재한다. 이 학술지는 2005년 1월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로 선정된 이후, SCOPUS 및 PubMed에 등재가 확정됨으로써 국제적 인지도가 크게 향상되었다. 그 결과 2017년 12월 Clarivate Analytics의 Emerging Sources Citation Index(ESCI)에 등재되었고, 2019년부터는 SCIE 등재가 결정되었다. 2022년 발표된 SCIE의 첫 피인용지수(IF)는 3.019였다.이와 같은 약학 관련 학술지의 SCIE 등재는 늘 외국의 국제학술지를 동경해 오던 국내 약학계로서는 꿈만 같은 성취라 하겠다. 다음 번에는 대한약학회의 학술지인 Arch. Pharm. Res.의 SCIE등재에 관한 논문이 투고되기를 기대한다. ‘군진약사 좌담회’는 매우 흥미로우나 이미 약창춘추 376 (2023.8.16)에 소개된 바 있으므로 중복 설명을 생략한다.그 뒤에 일제 시대인 1932년에 발표된 ‘의약분업이 사회에 미칠 영향’이라는 논설(『경성약전 교우회지』, 심창구 번역)과 ‘제5회 아시아팜에 다녀와서: 베트남 전통의약박물관 방문기 (이영남)’가 실려 있고, 이어서 김영식 교수의 ‘헤파린 개발의 역사’, 약학사 관련도서 및 약학사 관련 국내외 논문,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제약사학회와 우리 약학사분과학회의 소식이 실려 있다.
2024-02-28 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