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의 황제가 뮤지컬을 만나다 - 엠제이 더 뮤지컬(MJ the musical)
마이클 잭슨은 미국 대중음악의 신화라 불린다. 1958년 8월 29일 인디애나에서 태어난 그는 가수 겸 작곡자이자 댄서, 박애주의자로 유명하다. 킹 오브 팝이라고도 불렸다. 누구라도 인정하는 20세기 가장 영향력이 높았던 인물 중 하나다. 문워크로 알려진 그의 춤사위는 마이클 잭슨의 상징으로 통한다.
8번째 자식이었던 그는 1964년 나이 많은 형들인 제키, 티토, 저메인 그리고 마론과 함께 잭슨 5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흑인 음반 레이블인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하며 성공가도를 걸었다. 물론 그룹의 리드싱어는 줄곧 마이클 잭슨의 몫이었다. 1979년 20대 초반의 나이에 솔로 앨범인 ‘오프 더 월’을 발표했다. 비트 잇, 빌리진 등이 엄청난 반향을 불러왔고, 뮤직 비디오는 1980년 등장한 MTV에 의해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1982년 발표된 두 번째 솔로앨범 스릴러는 피부색에 상관없이 그를 최고의 스타로 등극시켰다. 배드, 데인져러스, 히스토리 :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인빈서블 등을 발표하며 글로벌한 성공을 이어갔다.
스릴러는 지금까지 인류역사상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한 앨범이다. 지금까지 판매한 앨범만 무려 5억장이 넘는다. 빌보드 핫 100에 1위를 기록한 노래만 13곡인데, 이는 역사상 4번째로 많은 히트곡을 발표한 아티스트라는 의미도 된다. 15개의 그래미상, 6개의 브리트 어워드, 1개의 골든 글로브상, 39개의 기네스 레코드를 세웠다. 그중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엔터테이너”도 포함돼 있다.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는 두 번이나 헌정되는 묘한 기록도 수립했다. 하나는 보컬 그룹 부문이고, 다른 하나는 작곡가로서다. 또한 무용 분야의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유일한 ‘가수’이기도 하다.
마이클 잭슨의 전대미문인 기록들은 그러나 순탄치 않았던 가정사와 대비돼 측은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폭력과 학대를 받았고, 완벽에 대한 집착은 그로 인해 생겨난 정신적 트라우마였다. 솔로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가족과 아버지로 인해 그의 활동은 늘 제약됐다.
위대한 음악가이기도 했지만, 사회운동가로도 활동했다. 아프리카는 돕기 위한 USA for Africa에 주도적으로 활동하며 위 아더 월드를 불렀고, 힐 더 월드, 블랙 오어 화이트, 어스 송 등을 통해 인류 평화와 공존, 친환경, 반전, 반테러 등의 메시지를 알렸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도 공연을 가지며 통일을 기원했고, 실제 통일이 되면 다시 공연하겠다는 약속도 남겼다.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기부를 한 인물이다.
영광만이 전부는 아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성추문 루머가 등장하며 언론의 가십란에 오르내리는 불명예도 겪는다. 그를 정신병자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안타깝게도 그런 언론의 태도는 그가 사망한 지금까지도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5년 2차 아동 성추문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대부분의 활동을 중단하고 몇 년간 칩거 아닌 칩거를 했다. 그 과정에서 건강이 악화돼 사실상 정상적인 활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로 빠지기도 했다. 2009년 3월, 마이클 잭슨은 4년 만에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런던에서의 콘서트 투어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같은 해 주치의였던 콘레드 머레이의 프로포폴 과다 투여로 인한 심장마비로 향년 50세에 세상을 떠났다.
지속되는 그에 대한 수많은 더러운 루머들은 그가 남긴 문화적 유산들과 별개로 그의 위상을 추락시켰으며, 전문가들은 그의 이름이 음악사에서 잊혀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이후 그의 행적에서 발견되는 여러 선행들로 재평가가 시도되고,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대중음악의 영원한 전설로 남아 있다.
마이클 잭슨의 삶과 음악들로 구성된 엠제이 더 뮤지컬(MJ the musical)이 처음 시도된 것은 2020년 중반이다. 뜻하지 않은 코로나 팬데믹과 그로 인한 공연가의 셧다운은 뮤지컬에 대한 계획을 연기시켰고, 결국 애초 계획보다는 조금 늦은 2022년 뉴욕의 닐 사이먼 극장에서 개막됐다. 뮤지컬 제작진은 두 차례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는 흑인 인권운동가이자 여류작가인 린 노티지와 로열발레 단원으로 시작해 뉴욕 시티 발레단을 거친 전 무용수이자 안무가 크리스토퍼 윌든에 의해서였다.
개막 초기 평단으로부터 긍정과 부정이 뒤섞인 반응을 받았지만, 대중들로부터는 엄청난 호평을 이끌어냈다. 결국 그해 10개의 토니상 후보에 올라 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 안무상, 조명상, 음향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하는 대파란을 연출했다. 2024년 6월 25일엔 2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단기간에 가장 성공한 뮤지컬 프로덕션이라는 타이틀도 갖게 됐다. 지금은 대서양 건너 영국 웨스트엔드에서도 막을 올려 글로벌 흥행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워낙 익숙하고 잘 알려진 노래들과 인간적인 마이클 잭슨의 다양한 이면, 그의 음악적 성과의 배경이 된 개인사들이 잘 구성돼 그를 기억하거나 추억하는 팬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와 환호를 받고 있다. 특히, 남자주인공으로 나오는 배우 마일스 프로스트는 마이클 잭슨의 환생이라 부를 만큼 완벽한 무대를 선보여 화제다. 춤과 노래는 물론 나긋나긋하게 말하던 마이클 잭슨의 모습을 완벽히 재연해 박수갈채를 이끌어낸다.
엠제이 더 뮤지컬의 극적인 재미는 1인 2역의 효과적인 활용에서 있다. 마이클 잭슨의 백 댄서이자 투어 공연을 준비하던 스탭들이 과거의 회상 장면이 나오면 그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로 삽시간 목소리 톤을 바꿔 등장해 보는 재미를 완성한다. 회상와 현재의 교차가 마치 영화의 순간적인 영상 변환처럼 자연스럽고 물 흐르듯 이어지는 재미를 찾을 수 있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적 성과와 특히 안무가로서의 재능을 극적으로 풀어낸 것도 묘미다. 항간에 마이클 잭슨은 모방의 천재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하다. 노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춤도 마찬가지다. 뮤지컬은 마이클 잭슨의 춤 문 워크가 과거 위대한 아티스트들의 업적들 – 예를 들어 찰리 채플린, 빌 베일리, 마임 아티스트인 마르셀 마르소, 그리고 뮤지컬 배우로 전성기를 보냈던 프레드 아스테어와 제임스 브라운, 밥 파시 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무대의 커튼 막에는 마이클 잭슨의 친필로 쓴 문구가 투영돼 있다. 그곳에는 스텝들에게 뮤지컬 시카고를 꼭 보고 밥 파시의 안무를 참고하라는 메모도 있다. 물론 가장 큰 볼거리는 음악과 춤이다. 마이클 잭슨의 노래들과 무대, 마치 그의 전성기 투어 현장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관객들의 함성과 환호, 박수를 자연스레 이끌어낸다. 우리나라 기업인 CJ ENM이 제작비를 투자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빠른 투어나 우리말 공연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이유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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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황제가 뮤지컬을 만나다 - 엠제이 더 뮤지컬(MJ the musical)
마이클 잭슨은 미국 대중음악의 신화라 불린다. 1958년 8월 29일 인디애나에서 태어난 그는 가수 겸 작곡자이자 댄서, 박애주의자로 유명하다. 킹 오브 팝이라고도 불렸다. 누구라도 인정하는 20세기 가장 영향력이 높았던 인물 중 하나다. 문워크로 알려진 그의 춤사위는 마이클 잭슨의 상징으로 통한다.
8번째 자식이었던 그는 1964년 나이 많은 형들인 제키, 티토, 저메인 그리고 마론과 함께 잭슨 5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흑인 음반 레이블인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하며 성공가도를 걸었다. 물론 그룹의 리드싱어는 줄곧 마이클 잭슨의 몫이었다. 1979년 20대 초반의 나이에 솔로 앨범인 ‘오프 더 월’을 발표했다. 비트 잇, 빌리진 등이 엄청난 반향을 불러왔고, 뮤직 비디오는 1980년 등장한 MTV에 의해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1982년 발표된 두 번째 솔로앨범 스릴러는 피부색에 상관없이 그를 최고의 스타로 등극시켰다. 배드, 데인져러스, 히스토리 :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인빈서블 등을 발표하며 글로벌한 성공을 이어갔다.
스릴러는 지금까지 인류역사상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한 앨범이다. 지금까지 판매한 앨범만 무려 5억장이 넘는다. 빌보드 핫 100에 1위를 기록한 노래만 13곡인데, 이는 역사상 4번째로 많은 히트곡을 발표한 아티스트라는 의미도 된다. 15개의 그래미상, 6개의 브리트 어워드, 1개의 골든 글로브상, 39개의 기네스 레코드를 세웠다. 그중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엔터테이너”도 포함돼 있다.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는 두 번이나 헌정되는 묘한 기록도 수립했다. 하나는 보컬 그룹 부문이고, 다른 하나는 작곡가로서다. 또한 무용 분야의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유일한 ‘가수’이기도 하다.
마이클 잭슨의 전대미문인 기록들은 그러나 순탄치 않았던 가정사와 대비돼 측은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폭력과 학대를 받았고, 완벽에 대한 집착은 그로 인해 생겨난 정신적 트라우마였다. 솔로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가족과 아버지로 인해 그의 활동은 늘 제약됐다.
위대한 음악가이기도 했지만, 사회운동가로도 활동했다. 아프리카는 돕기 위한 USA for Africa에 주도적으로 활동하며 위 아더 월드를 불렀고, 힐 더 월드, 블랙 오어 화이트, 어스 송 등을 통해 인류 평화와 공존, 친환경, 반전, 반테러 등의 메시지를 알렸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도 공연을 가지며 통일을 기원했고, 실제 통일이 되면 다시 공연하겠다는 약속도 남겼다.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기부를 한 인물이다.
영광만이 전부는 아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성추문 루머가 등장하며 언론의 가십란에 오르내리는 불명예도 겪는다. 그를 정신병자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안타깝게도 그런 언론의 태도는 그가 사망한 지금까지도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5년 2차 아동 성추문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대부분의 활동을 중단하고 몇 년간 칩거 아닌 칩거를 했다. 그 과정에서 건강이 악화돼 사실상 정상적인 활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로 빠지기도 했다. 2009년 3월, 마이클 잭슨은 4년 만에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런던에서의 콘서트 투어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같은 해 주치의였던 콘레드 머레이의 프로포폴 과다 투여로 인한 심장마비로 향년 50세에 세상을 떠났다.
지속되는 그에 대한 수많은 더러운 루머들은 그가 남긴 문화적 유산들과 별개로 그의 위상을 추락시켰으며, 전문가들은 그의 이름이 음악사에서 잊혀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이후 그의 행적에서 발견되는 여러 선행들로 재평가가 시도되고,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대중음악의 영원한 전설로 남아 있다.
마이클 잭슨의 삶과 음악들로 구성된 엠제이 더 뮤지컬(MJ the musical)이 처음 시도된 것은 2020년 중반이다. 뜻하지 않은 코로나 팬데믹과 그로 인한 공연가의 셧다운은 뮤지컬에 대한 계획을 연기시켰고, 결국 애초 계획보다는 조금 늦은 2022년 뉴욕의 닐 사이먼 극장에서 개막됐다. 뮤지컬 제작진은 두 차례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는 흑인 인권운동가이자 여류작가인 린 노티지와 로열발레 단원으로 시작해 뉴욕 시티 발레단을 거친 전 무용수이자 안무가 크리스토퍼 윌든에 의해서였다.
개막 초기 평단으로부터 긍정과 부정이 뒤섞인 반응을 받았지만, 대중들로부터는 엄청난 호평을 이끌어냈다. 결국 그해 10개의 토니상 후보에 올라 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 안무상, 조명상, 음향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하는 대파란을 연출했다. 2024년 6월 25일엔 2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단기간에 가장 성공한 뮤지컬 프로덕션이라는 타이틀도 갖게 됐다. 지금은 대서양 건너 영국 웨스트엔드에서도 막을 올려 글로벌 흥행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워낙 익숙하고 잘 알려진 노래들과 인간적인 마이클 잭슨의 다양한 이면, 그의 음악적 성과의 배경이 된 개인사들이 잘 구성돼 그를 기억하거나 추억하는 팬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와 환호를 받고 있다. 특히, 남자주인공으로 나오는 배우 마일스 프로스트는 마이클 잭슨의 환생이라 부를 만큼 완벽한 무대를 선보여 화제다. 춤과 노래는 물론 나긋나긋하게 말하던 마이클 잭슨의 모습을 완벽히 재연해 박수갈채를 이끌어낸다.
엠제이 더 뮤지컬의 극적인 재미는 1인 2역의 효과적인 활용에서 있다. 마이클 잭슨의 백 댄서이자 투어 공연을 준비하던 스탭들이 과거의 회상 장면이 나오면 그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로 삽시간 목소리 톤을 바꿔 등장해 보는 재미를 완성한다. 회상와 현재의 교차가 마치 영화의 순간적인 영상 변환처럼 자연스럽고 물 흐르듯 이어지는 재미를 찾을 수 있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적 성과와 특히 안무가로서의 재능을 극적으로 풀어낸 것도 묘미다. 항간에 마이클 잭슨은 모방의 천재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하다. 노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춤도 마찬가지다. 뮤지컬은 마이클 잭슨의 춤 문 워크가 과거 위대한 아티스트들의 업적들 – 예를 들어 찰리 채플린, 빌 베일리, 마임 아티스트인 마르셀 마르소, 그리고 뮤지컬 배우로 전성기를 보냈던 프레드 아스테어와 제임스 브라운, 밥 파시 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무대의 커튼 막에는 마이클 잭슨의 친필로 쓴 문구가 투영돼 있다. 그곳에는 스텝들에게 뮤지컬 시카고를 꼭 보고 밥 파시의 안무를 참고하라는 메모도 있다. 물론 가장 큰 볼거리는 음악과 춤이다. 마이클 잭슨의 노래들과 무대, 마치 그의 전성기 투어 현장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관객들의 함성과 환호, 박수를 자연스레 이끌어낸다. 우리나라 기업인 CJ ENM이 제작비를 투자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빠른 투어나 우리말 공연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이유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