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kv1EbzOSNN8?feature=shared
시, 그림 그리고 음악
시 '섶섬이 보이는 방'은 나희덕 시인에게 소월시문학상을 안겨준 작품 중 하나다. 과거 그 방에 살았던 화가 이중섭의 삶이 시의 주된 내용이다. '게를 그리는 아고리',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아이들과 해 질 때까지 놀았다' 등의 표현은 시인의 상상력이 화가가 남긴 그림들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예술 작품이 모티브가 되어 또 다른 작품을 낳은 셈이다.
생활고로 인해 일 년이 채 되지 않는 제주 생활이 끝나고 이중섭은 가족과 헤어져 홀로 남겨졌다. 천신만고 끝에 일본으로 건너가 있던 가족과 재회하였으나 며칠 만에 다시 헤어지고 만다. 가족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삼 년 남짓 버텨낸 그는 끝끝내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한다.
이건희 회장이 소장하고 있던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2021년 제주도에 기증되어, 이중섭미술관에서 보유하고 있다. 이중섭의 가족이 살던 서귀포 집 근방에 자리 잡은 이중섭미술관에서는 섶섬이 내려다보인다. 주변의 풍광은 달라졌어도 그 시절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는 섶섬만큼은 그의 그림에서처럼 한가로이 푸른 바다에 잠겨 있다.
국악곡 중에도 같은 제목의 창작곡이 있다. 계성원 작곡가의 ‘섶섬이 보이는 풍경’이다. 작곡가는 한때 이 한가로운 풍경 안에 있었던, 그리고 이후 그 풍경을 애타게 그리워하며 살았을 화가의 삶을 거문고와 18현 가야금에 담아 음악으로 표현했다. 서로 다른 색깔을 지닌 두 악기가 선율을 주고받으며 전개하는 명주실의 울림은, 흔들리는 물결 위에 흔들림 없이 솟아 있는 섬과 함께 위태로웠던 시대에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자 했던 화가의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이 곡은 가야금 연주자 정길선의 「가야금 창작음악 작품집Ⅱ」에 수록되었으며, 유튜브를 통해 여러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어볼 수 있다.
대금 연주자이자 지휘자이기도 했던 이상규 작곡가는 정악과 민속악을 아우르는 풍성한 음악적 자산을 기반으로 백여 곡을 창작해 창작 국악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의 작품 중에는 신석정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들이 많다. 작곡가에게 대한민국 작곡상 대통령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 역시, 신석정 시인의 시 ‘대바람 소리’에서 받은 감동을 악보에 옮긴 동명同名의 대금 협주곡이다.
시인 신석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그리고 제일의 전원시인이라 일컬어진다. 자연물이나 전원생활에서 소재를 찾은 그의 시들은 목가적이고 서정적이라는 평을 주로 받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식민 치하에서 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삶의 이력을 훑다 보면 지사志士와 같은 시인의 면모가 시에 스며있음을 깨닫게 된다. 신석정 시인의 마지막 시집 제목이기도 한 시 ‘대바람 소리’에서, ‘어찌 제왕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 하고 악지론의 마지막 구절을 읊는 화자의 모습에서는 야욕이나 탐욕 따위와 맞서는 초연함 혹은 결연함마저 느껴진다.
작곡가 이상규는 2004년 회갑을 기념해 작곡집 두 권을 엮고, 2006년 대금 곡들로만 엮은 세 번째 작곡집을 낸다. 작곡집의 부제는 ‘대바람소리’로, 첫머리에도 대금 독주곡 ‘대바람소리’의 악보를 실었다. 관현악과의 협주곡을 가야금, 장구 반주와 함께 연주하게끔 편곡한 곡이다.
대금 협주곡 ‘대바람소리’ 도입부는 현악기로 은은하고 느긋하게 시작해 관악기와 만나며 풍성해지고, 대금 독주로 이어진다. 대금은 특유의 청명한 음색을 청중에게 또렷이 각인시키며, 배경 음악처럼 잔잔하게 그리고 때로는 웅장하게 고조되는 관현악과 조화를 이룬다. 일본식 이름과 일문 시 쓰기를 거부하고 평생을 시작時作과 교육에 헌신한 시인과 국악 관현악단의 가운데에 지휘자로 우뚝 서 있는 백발의 작곡가. 대금이 홀로 연주하는 고요한 선율을 듣다 보면 그 두 사람이 언뜻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유튜브에는 작곡가가 직접 지휘한 KBS국악관현악단(1996년)과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2009년)의 ‘대바람소리’ 연주가 남아있다.
이중섭 ‘섶섬이 보이는 풍경’
(서귀포시 공립미술관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kv1EbzOSNN8?feature=shared
‘섶섬이 보이는 풍경’(작곡 계성원/가야금 문세미/거문고 나선진)
(KBS전주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q0sYyN7qtMw?feature=shared
대금 협주곡 ‘대바람소리’(작곡․지휘 이상규/대금 박용호/ KBS국악관현악단)
(KBS국악관현악단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e8iZAsSFJrU?feature=shared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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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kv1EbzOSNN8?feature=shared
시, 그림 그리고 음악
시 '섶섬이 보이는 방'은 나희덕 시인에게 소월시문학상을 안겨준 작품 중 하나다. 과거 그 방에 살았던 화가 이중섭의 삶이 시의 주된 내용이다. '게를 그리는 아고리',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아이들과 해 질 때까지 놀았다' 등의 표현은 시인의 상상력이 화가가 남긴 그림들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예술 작품이 모티브가 되어 또 다른 작품을 낳은 셈이다.
생활고로 인해 일 년이 채 되지 않는 제주 생활이 끝나고 이중섭은 가족과 헤어져 홀로 남겨졌다. 천신만고 끝에 일본으로 건너가 있던 가족과 재회하였으나 며칠 만에 다시 헤어지고 만다. 가족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삼 년 남짓 버텨낸 그는 끝끝내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한다.
이건희 회장이 소장하고 있던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2021년 제주도에 기증되어, 이중섭미술관에서 보유하고 있다. 이중섭의 가족이 살던 서귀포 집 근방에 자리 잡은 이중섭미술관에서는 섶섬이 내려다보인다. 주변의 풍광은 달라졌어도 그 시절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는 섶섬만큼은 그의 그림에서처럼 한가로이 푸른 바다에 잠겨 있다.
국악곡 중에도 같은 제목의 창작곡이 있다. 계성원 작곡가의 ‘섶섬이 보이는 풍경’이다. 작곡가는 한때 이 한가로운 풍경 안에 있었던, 그리고 이후 그 풍경을 애타게 그리워하며 살았을 화가의 삶을 거문고와 18현 가야금에 담아 음악으로 표현했다. 서로 다른 색깔을 지닌 두 악기가 선율을 주고받으며 전개하는 명주실의 울림은, 흔들리는 물결 위에 흔들림 없이 솟아 있는 섬과 함께 위태로웠던 시대에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자 했던 화가의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이 곡은 가야금 연주자 정길선의 「가야금 창작음악 작품집Ⅱ」에 수록되었으며, 유튜브를 통해 여러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어볼 수 있다.
대금 연주자이자 지휘자이기도 했던 이상규 작곡가는 정악과 민속악을 아우르는 풍성한 음악적 자산을 기반으로 백여 곡을 창작해 창작 국악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의 작품 중에는 신석정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들이 많다. 작곡가에게 대한민국 작곡상 대통령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 역시, 신석정 시인의 시 ‘대바람 소리’에서 받은 감동을 악보에 옮긴 동명同名의 대금 협주곡이다.
시인 신석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그리고 제일의 전원시인이라 일컬어진다. 자연물이나 전원생활에서 소재를 찾은 그의 시들은 목가적이고 서정적이라는 평을 주로 받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식민 치하에서 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삶의 이력을 훑다 보면 지사志士와 같은 시인의 면모가 시에 스며있음을 깨닫게 된다. 신석정 시인의 마지막 시집 제목이기도 한 시 ‘대바람 소리’에서, ‘어찌 제왕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 하고 악지론의 마지막 구절을 읊는 화자의 모습에서는 야욕이나 탐욕 따위와 맞서는 초연함 혹은 결연함마저 느껴진다.
작곡가 이상규는 2004년 회갑을 기념해 작곡집 두 권을 엮고, 2006년 대금 곡들로만 엮은 세 번째 작곡집을 낸다. 작곡집의 부제는 ‘대바람소리’로, 첫머리에도 대금 독주곡 ‘대바람소리’의 악보를 실었다. 관현악과의 협주곡을 가야금, 장구 반주와 함께 연주하게끔 편곡한 곡이다.
대금 협주곡 ‘대바람소리’ 도입부는 현악기로 은은하고 느긋하게 시작해 관악기와 만나며 풍성해지고, 대금 독주로 이어진다. 대금은 특유의 청명한 음색을 청중에게 또렷이 각인시키며, 배경 음악처럼 잔잔하게 그리고 때로는 웅장하게 고조되는 관현악과 조화를 이룬다. 일본식 이름과 일문 시 쓰기를 거부하고 평생을 시작時作과 교육에 헌신한 시인과 국악 관현악단의 가운데에 지휘자로 우뚝 서 있는 백발의 작곡가. 대금이 홀로 연주하는 고요한 선율을 듣다 보면 그 두 사람이 언뜻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유튜브에는 작곡가가 직접 지휘한 KBS국악관현악단(1996년)과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2009년)의 ‘대바람소리’ 연주가 남아있다.
이중섭 ‘섶섬이 보이는 풍경’
(서귀포시 공립미술관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kv1EbzOSNN8?feature=shared
‘섶섬이 보이는 풍경’(작곡 계성원/가야금 문세미/거문고 나선진)
(KBS전주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q0sYyN7qtMw?feature=shared
대금 협주곡 ‘대바람소리’(작곡․지휘 이상규/대금 박용호/ KBS국악관현악단)
(KBS국악관현악단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e8iZAsSFJrU?feature=shared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