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에 서거 5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작곡가 쇼스타코비치(D. Shostakovich, 1906-1975)를 기념하는 페스티벌이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얼마 전 전해졌습니다. 2025년 5월 15일부터 6월 1일까지 열리는 이 페스티벌에서는 쇼스타코비치가 남긴 모든 교향곡과 협주곡, 현악 사중주 그리고 2개의 오페라 등이 연주될 예정입니다.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D. Trifonov, 1991- )와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G. Capuçon, 1981- )등 화려한 협연자들이 등장할 협주곡 무대도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하지만 페스티벌의 중심은 아무래도 15곡에 이르는 교향곡 연주이겠지요.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A. Nelsons, 1978- )가 대부분의 관현악 음악회를 이끌게 되는 이 페스티벌에는 총 3개의 오케스트라가 참여합니다. 그가 상임 지휘자로 있는 두 개의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인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Gewandhausorchester Leipzig)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Boston Symphony Orchestra), 그리고 이 두 오케스트라의 아카데미 학생들로 이루어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입니다. 그런데,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7번 <레닌그라드> (Symphony No. 7 “Leningrad”) 공연에는 특별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오케스트라가 등장할 예정입니다. 바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합 오케스트라이죠. 각각 1743년과 1881년에 창단되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 함께 한 무대에서 연주한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연합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상당히 드물게 열립니다. 그 공연들 중에는 정치 사회적인 울림이 큰 공연들이 제법 있었음을 금방 알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1989년 가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기념하여 그 해 12월에 열린 음악회입니다. 번스타인(L. Bernstein, 1918-1990)이 제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참전국(독일,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모인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지요. 이듬해 이스라엘에서는 홀로코스트의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인 독일과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두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erliner Philharmoniker)와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Israel Philharmonic Orchestra)가 함께 연주하는 감동적인 무대가 열렸습니다. 검은 자켓을 입은 베를린 필 단원들과 하얀 자켓을 입은 이스라엘 필 단원들이 나란히 앉아 연주하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2000년에는 서울에서 2002년에는 평양에서 KBS 교향악단과 조선국립교향악단이 함께 연주했던 것이지요.
물론 이보다 보통의 음악회에 가까운 연합 오케스트라의 공연도 있는데 한 예가 2005년에 베를린과 빈에서 열렸던 베를린 필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iener Philharmoniker)의 합동 공연입니다. 당시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였던 래틀(S. Rattle, 1955- )의 주도로 이루어졌는데, 아쉽게도 음악적으로 별다른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단발성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서두에 언급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보스턴 심포니의 합동 공연이 여타의 공연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이벤트 성격이 강한 단발성의 공연들과는 달리 이 두 오케스트라의 합동 공연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오고 있는 두 단체 간의 협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공식적으로는 ‘동맹(Alliance)’라고 표기되는 두 오케스트라의 협력 관계는 2017/2018 시즌부터 본격화되었습니다. 두 오케스트라는 여러가지 의미있는 작업들을 함께 해 왔습니다. 작곡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한 후 완성된 작품을 두 오케스트라가 그들의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도 주요 작업 중 하나입니다. 한 오케스트라가 의뢰된 작품의 세계 초연을 담당하면, 다른 오케스트라는 유럽 혹은 미국 초연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지요.
교류의 측면에서도 의미있는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라이프치히에서는 <보스턴 주간(Boston Week)>을, 보스턴에서는 <라이프치히 주간(Leipzig Week)>을 만들었는데 이는 이를테면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보스턴에 가서 연주한다는 방문연주의 의미이기도 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두 오케스트라가 각자 강점을 갖고 있는 레퍼토리를 바꾸어 연주해본다는 의미였습니다. 예를 들어 라이프치히 주간에는 보스턴 심포니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유명한 레퍼토리인 바흐(J. S. Bach, 1865-1750)의 작품을 연주하고, 보스턴 주간에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20세기 미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는 것이었지요. 또, 마치 교환학생 제도처럼 두 오케스트라의 몇몇 연주자들이 일정 기간 동안 상대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프로그램도 멋진 발상으로 기록됩니다. 이에 덧붙여 실내악 공연을 비롯, 강연과 토론 프로그램도 진행되었습니다. 두 오케스트라의 이런 활발한 교류는 소속된 아카데미들 사이의 교류로도 이어져 젊은 음악가들도 보다 폭넓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요.
두 오케스트라의 협력은 이미 2019년에 보스턴에서 열린 최초의 합동 공연으로 빛을 발했습니다. 적어도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때문인지 그 이후로는 교류의 측면에서 크게 주목받는 소식이 줄어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와중에 들려온 2025년 쇼스타코비치 페스티벌 소식은 두 오케스트라 사이의 교류가 여전히 지속됨을 보여주는 듯하여 반갑습니다.
두 오케스트라의 긴밀한 협력 관계는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2025년에 있을 쇼스타코비치 페스티벌은 협력 관계의 화려한 피날레가 될까요, 아니면 또다른 도약의 커다란 발판이 될까요? 모범적인 협력 사례로 오래도록 기억될 이들의 관계가 앞으로 더욱 풍성한 결실을 맺어가기를, 그리고 이러한 의미 있는 협력이 다른 곳에서도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추천영상: 2019년 가을에 보스턴에서 열린 두 오케스트라의 첫 합동 공연에서 첫 순서로 연주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축전 전주곡 (Festliches Präludium)>입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에 오르간까지 참여하는 큰 편성의 작품이며 지나치지 않은 웅장함과 무게감이 멋진 화성과 어우러져 깊은 인상을 남기지요. 이 연주는 넬손스가 두 오케스트라를 번갈아 지휘하며 남긴 슈트라우스의 오케스트라 작품집 음반에 수록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jbjE00PpE8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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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에 서거 5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작곡가 쇼스타코비치(D. Shostakovich, 1906-1975)를 기념하는 페스티벌이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얼마 전 전해졌습니다. 2025년 5월 15일부터 6월 1일까지 열리는 이 페스티벌에서는 쇼스타코비치가 남긴 모든 교향곡과 협주곡, 현악 사중주 그리고 2개의 오페라 등이 연주될 예정입니다.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D. Trifonov, 1991- )와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G. Capuçon, 1981- )등 화려한 협연자들이 등장할 협주곡 무대도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하지만 페스티벌의 중심은 아무래도 15곡에 이르는 교향곡 연주이겠지요.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A. Nelsons, 1978- )가 대부분의 관현악 음악회를 이끌게 되는 이 페스티벌에는 총 3개의 오케스트라가 참여합니다. 그가 상임 지휘자로 있는 두 개의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인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Gewandhausorchester Leipzig)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Boston Symphony Orchestra), 그리고 이 두 오케스트라의 아카데미 학생들로 이루어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입니다. 그런데,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7번 <레닌그라드> (Symphony No. 7 “Leningrad”) 공연에는 특별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오케스트라가 등장할 예정입니다. 바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합 오케스트라이죠. 각각 1743년과 1881년에 창단되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 함께 한 무대에서 연주한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연합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상당히 드물게 열립니다. 그 공연들 중에는 정치 사회적인 울림이 큰 공연들이 제법 있었음을 금방 알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1989년 가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기념하여 그 해 12월에 열린 음악회입니다. 번스타인(L. Bernstein, 1918-1990)이 제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참전국(독일,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모인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지요. 이듬해 이스라엘에서는 홀로코스트의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인 독일과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두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erliner Philharmoniker)와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Israel Philharmonic Orchestra)가 함께 연주하는 감동적인 무대가 열렸습니다. 검은 자켓을 입은 베를린 필 단원들과 하얀 자켓을 입은 이스라엘 필 단원들이 나란히 앉아 연주하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2000년에는 서울에서 2002년에는 평양에서 KBS 교향악단과 조선국립교향악단이 함께 연주했던 것이지요.
물론 이보다 보통의 음악회에 가까운 연합 오케스트라의 공연도 있는데 한 예가 2005년에 베를린과 빈에서 열렸던 베를린 필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iener Philharmoniker)의 합동 공연입니다. 당시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였던 래틀(S. Rattle, 1955- )의 주도로 이루어졌는데, 아쉽게도 음악적으로 별다른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단발성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서두에 언급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보스턴 심포니의 합동 공연이 여타의 공연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이벤트 성격이 강한 단발성의 공연들과는 달리 이 두 오케스트라의 합동 공연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오고 있는 두 단체 간의 협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공식적으로는 ‘동맹(Alliance)’라고 표기되는 두 오케스트라의 협력 관계는 2017/2018 시즌부터 본격화되었습니다. 두 오케스트라는 여러가지 의미있는 작업들을 함께 해 왔습니다. 작곡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한 후 완성된 작품을 두 오케스트라가 그들의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도 주요 작업 중 하나입니다. 한 오케스트라가 의뢰된 작품의 세계 초연을 담당하면, 다른 오케스트라는 유럽 혹은 미국 초연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지요.
교류의 측면에서도 의미있는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라이프치히에서는 <보스턴 주간(Boston Week)>을, 보스턴에서는 <라이프치히 주간(Leipzig Week)>을 만들었는데 이는 이를테면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보스턴에 가서 연주한다는 방문연주의 의미이기도 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두 오케스트라가 각자 강점을 갖고 있는 레퍼토리를 바꾸어 연주해본다는 의미였습니다. 예를 들어 라이프치히 주간에는 보스턴 심포니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유명한 레퍼토리인 바흐(J. S. Bach, 1865-1750)의 작품을 연주하고, 보스턴 주간에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20세기 미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는 것이었지요. 또, 마치 교환학생 제도처럼 두 오케스트라의 몇몇 연주자들이 일정 기간 동안 상대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프로그램도 멋진 발상으로 기록됩니다. 이에 덧붙여 실내악 공연을 비롯, 강연과 토론 프로그램도 진행되었습니다. 두 오케스트라의 이런 활발한 교류는 소속된 아카데미들 사이의 교류로도 이어져 젊은 음악가들도 보다 폭넓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요.
두 오케스트라의 협력은 이미 2019년에 보스턴에서 열린 최초의 합동 공연으로 빛을 발했습니다. 적어도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때문인지 그 이후로는 교류의 측면에서 크게 주목받는 소식이 줄어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와중에 들려온 2025년 쇼스타코비치 페스티벌 소식은 두 오케스트라 사이의 교류가 여전히 지속됨을 보여주는 듯하여 반갑습니다.
두 오케스트라의 긴밀한 협력 관계는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2025년에 있을 쇼스타코비치 페스티벌은 협력 관계의 화려한 피날레가 될까요, 아니면 또다른 도약의 커다란 발판이 될까요? 모범적인 협력 사례로 오래도록 기억될 이들의 관계가 앞으로 더욱 풍성한 결실을 맺어가기를, 그리고 이러한 의미 있는 협력이 다른 곳에서도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추천영상: 2019년 가을에 보스턴에서 열린 두 오케스트라의 첫 합동 공연에서 첫 순서로 연주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축전 전주곡 (Festliches Präludium)>입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에 오르간까지 참여하는 큰 편성의 작품이며 지나치지 않은 웅장함과 무게감이 멋진 화성과 어우러져 깊은 인상을 남기지요. 이 연주는 넬손스가 두 오케스트라를 번갈아 지휘하며 남긴 슈트라우스의 오케스트라 작품집 음반에 수록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jbjE00PpE8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