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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준의 클래스토리
편집부
입력 2022-07-01 15: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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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장의 조건>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92년 7월 29일, 50대 초반의 한 남성이 잘츠부르크에서 차로 30여분 걸리는 조그마한 도시, 장크트 길겐(St. Gilgen) 근교에서 등산을 하다 추락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는 헬리콥터에 실린 채 급히 잘츠부르크의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빈 필)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가 바로 빈 필의 제 1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게르하르트 헤첼(Gerhart Hetzel, 1940-1992)이었기 때문이지요. 사고 당일에도 야나체크(L. Janáček, 1854-1928)의 오페라 <죽은 자의 집으로부터(From the House of the Dead)> 리허설에 참여했던 헤첼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말 그대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틑날 열린 오페라 <죽은 자의 집으로부터> 공연은 헤첼을 추모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지요.

헤첼이 빈 필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던 시점은 1969년, 그가 29세이던 때였습니다. 당시 빈 필의 악장 중 한 명이었던 발터 벨러(W. Weller, 1939-2015)가 지휘자로서의 커리어에 집중하기 위해 악장직을 갑자기 사임하였고 이에 악장 오디션이 열렸습니다. 1963년부터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활약하던 헤첼은 벨러의 후임을 뽑는 이 오디션에 응시하였습니다.

헤첼은 오디션에서 대단히 뛰어난 연주를 선보이며 결국 합격했지만 사실 빈 필 내부에서는 그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헤첼이 빈 출신이 아니며 빈에서 공부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것이 그렇게 큰 문제인가 싶은데 당시 빈 필의 상황을 보면 이는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헤첼 이전의 빈 필 역대 악장들은 빈 출신이거나 적어도 빈에서 공부한 인물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974년의 기록을 보면 전체 148명의 단원 중 3/4에 해당하는 109명이 오스트리아 출신이었으며 이 가운데 73명은 빈 출신이었습니다. 전체 단원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였지요. 빈 필은 그들만의 고유한 소리의 전통을 지켜 나가겠다는 의지가 강한 악단인데 상당히 국제화가 이루어진 현재보다 60여년 전에는 그 의지가 더 강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 출신의 독일인이며 독일과 스위스에서 공부
한 ‘이방인’ 헤첼의 등장에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빈 출신도, 빈에서 공부한 것도 아니었지만 헤첼과 빈 필 사이에 연결고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헤첼의 스승이 1938년부터 1949년까지 빈 필의 악장을 역임했던 명 바이올리니스트 볼프강 슈나이더한(W. Schneiderhan, 1915-2002)이었기 때문입니다.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좌)와 헤첼(우)
(출처: Wiener Philharmoniker-Facebook/사진: Vivianne Purdom)


반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실력으로 결국 악장으로 선임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헤첼이 내걸었던 조건이었습니다.
당시 빈 필에는 이제 막 퇴임한 벨러 외에 빌리 보스코프스키(W. Boskovsky, 1909-1991)와 발터 바릴리(W. Barylli, 1921-2022), 그리고 요제프 시보(J. Sivó, 1931-2007) 이렇게 3명의 악장이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헤첼은 가장 후임 악장이 될 예정이었는데 이는 연주회에서 선임 악장 중 한 명이 악장으로서 연주하면 후임 악장은 그 옆 자리에서 연주해야 함을 의미했지요. 그런데 헤첼은 “보스코프스키 옆에서 연주할 수는 있지만 바릴리나 시보 옆에서 연주하고 싶지는 않다”는 의견을 냅니다. 또 당시 뮌헨 음대의 교수로 재직하던 헤첼은 뮌헨에서 가르치기 위하여 1주일에 이틀은 휴무일(Free Days)을 달라는 것, 그리고 빈에서 뮌헨을 오가는 교통비를 지원해 달라는 요구를 하지요.

‘이방인’ 헤첼이 이렇게 빈 필 측에서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조건을 내걸었음에도 빈 필은 이를 수용하고 그를 악장으로 선임합니다. 그의 등장은 결과적으로 빈 필 악장의 세대 교체를 불러와 보스코프스키는 1970년에, 바릴리와 시보는 1972년에 악장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헤첼은 1969년부터 그가 갑작스럽고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1992년까지 악장으로 활약하며 당대의 빈 필을 대표하는 음악가 중 한 명이 됩니다. 1970년에는 빈 필 단원들이 주축이 된 빈 실내 앙상블(Wiener Kammerensemble)을 창단하여 실내악 연주와 녹음 활동을 병행하기도 하지요. 빈 필과도 여러 차례 협연 무대를 가졌는데 그중 1984년에 연주한 바르톡(B. Bartók, 1881-1945)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실황 녹음은 명연으로 남아있습니다. 또, 1982년에 밀스타인(N. Milstein, 1904-1992)이 연주 몇 시간 전에 건강상의 이유로 빈 필과의 협연을 취소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헤첼이 리허설 없이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던 일화는 그를 추억할 때 늘 회자되곤 합니다.

헤첼을 추억하는 여러 개의 글 중에서 빈 필의 제 1바이올린 주자이자 1997년부터 2004년까지 빈 필의 단장을 역임한 클레멘스 헬스베르크(C. Hellsberg, 1952- )의 글 일부를 인용하며, 헤첼에 대한 글을 마칠까 합니다.
“그가 23년간 악장으로 있었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게, 헤첼은 비할 데 없는 모범으로 남아있다.”

추천영상: 헤첼이 설립한 앙상블인 빈 실내 앙상블(Wiener Kammerensemble)이 1991년 가을, 일본에서 연주한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K. 287 영상입니다. 실내악을 연주하는 헤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영상이기도 합니다. 제 1바이올린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이 작품에서 빈틈없으면서도 우아하고 산뜻한 그의 바이올린 소리가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화질과 음질의 아쉬움이 다소 있지만 뛰어난 연주가 이를 만회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xkPOONtB2w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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