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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편집부
입력 2022-01-14 10:56 수정 최종수정 2022-01-1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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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다 준 열정의 힘

‘라보엠’, ‘아이다’, ‘나비 부인’ 등 최고의 오페라를 관람하려면 어디로 가야할까. 뉴욕에서 가장 화려한 밤을 맞이하는 곳. 바로 뉴욕 맨하탄 62번가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일명 ‘The Met(이하 메트)’은 1880년 창립. 1993년 구노의 ‘파우스트’로 개장해 현재까지 오페라계의 최고로 일컬어지는 극장이다. 로비 정 중앙에는 샤갈의 대형 작품 2점이 관객들을 성대하게 맞이하고, 객석에는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선물 받은 10만 조각의 수제 스와로브스키 샹들리에가 반짝거린다. 마리아 칼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리시도 도밍고 등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빛냈고 말러, 토스카니니, 라이너 등 당대 최고의 지휘자들이 거쳐간 무대. 매년 240회의 공연으로 뉴욕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문화예술 공간이며 링컨센터의 12번째 조직 중 하나이다.
 

                      <조셉 볼프> 

이곳을 세계 최고의 오페라 극장으로 성장시킨 장본인. 조셉 볼프(Joseph Volpe)는 여타 경영자들과 다른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브루클린 옷가게를 운영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브로드웨이 극장의 목수가 된 그는 24세가 되던 1964년 메트의 무대기술팀으로 합류했다. 1978년, 드디어 메트 무대감독이 된 그는 무대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무대기술팀 경력을 살려 무대의 제반 사항을 통제했는데 그가 기술팀 시절부터 갈고닦은 기술은 무대 전환에 있어 필요한 인건비를 절약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보통 스탭들이 30분에 걸쳐 해결할 무대 전환을 3분 안에 해결해내는 그의 능력을 메트에서 높이 사 1990년 드디어 오페라 극장의 대표가 되었다. 총 42년 세월 동안 메트에 몸담은 그는 대표 재임 기간 동안 4개의 세계 초연, 22개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초연, 47개의 뉴프로덕션을 성공시켰다. 그 밖에 유럽과 일본의 국제 투어 유치, 티켓팅 데이터 베이스 시스템 ‘Tessitura’ 개발까지 800만 달러의 재정 적자로 허덕이던 메트를 흑자로 전환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그의 혁신적인 경영은 뉴욕 대학교, 예일 대학교 등 세계 유명 대학에서 다룰 정도로 이슈가 되었으며 예술 경영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또, 그가 남긴 많은 혁신적인 성과들 중 ‘Met Titles’은 관객과 무대의 소통을 한 차원 격상시킨 시스템으로 평가받고 있다. (Met Titles는 관객석 의자 뒷면에 작은 스크린 창을 달아 노래 가사를 관객들이 바로 읽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메트에서 최고의 공연을 위해 볼프가 했던 많은 도전들은 경영이나 무대 기술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공연의 질과 팀워크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가차없는 선택을 할 때도 있었는데, 그 중 유명한 일화가 바로 소프라노 캐서린 배틀과의 사건이다. 당시 최고의 소프라노였던 그녀는 리허설에 매번 늦고 다른 음악가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콧대높은 태도로 팀워크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끼쳤는데 볼프는 소프라노로서의 명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메트에서 그녀를 해고해버렸다. 이 사건은 음악계에서 큰 이슈가 되었고, 이후 리허설 시간에 너무 늦거나 터무니없이 비싼 개런티를 요구하는 음악가들은 메트에 설 수 없게 되었다. 그의 행동은 몇몇 유명한 음악가들의 눈치를 보며 공연 준비를 하던 관례에서 벗어나 모두 함께 팀워크를 발휘해 공연을 만들어나가는 환경을 마련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나비부인의 한 장면>
 
그가 이렇게까지 메트 경영에 열정적이고 도전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 이유를 감히 “음악에 대한 열정”이라 정의해본다. 그는 목수였고 음악과는 먼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이었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열정가였으며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지만 오페라에 대한 사랑과 목수 시절 쌓은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무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했다. 노동자였고, 고집 세고 거친 성격으로 불편한 인물에 불과했던 볼프는 보수적인 예술계가 가진 한계에 정면으로 도전해 메트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고, 오페라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전문성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목수에서 세계 최고 오페라단의 수장이 된 조셉 볼프. 그가 이뤄낸 눈부신 성과들에는 우리 사회에서는 중요하나 그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학벌이다. 우리는 종종 학벌이나 스팩으로 상대를 평가하는 우를 범한다. 학벌이 마치 누군가의 꿈과 열정을 설명해주는 도구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볼프의 열정과 그가 이뤄낸 성과는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정말로 누군가의 능력을 평가하는 데 학벌이, 스펙이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는가.
 
그의 행보들을 되짚어보면 어쩌면 열정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유일한 수단이며 성공을 담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노력할 수 있게 만드는 힘, 즐길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에는 항상 열정이 있다. 조셉 볼프 뿐만 아니라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처럼 열정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우리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학벌이 성공을 담보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쯤에서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아이들이, 사회가 달성해야 할 것은 과연 학벌과 좋은 스펙인가 아니면 좋아하는 것을 뜨겁게 즐길 수 있는 열정인가.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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