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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355> '박사 과정을 시작하며' - 삶 속의 작은 깨달음 10
편집부
입력 2022-09-14 16:18 수정 최종수정 2022-09-1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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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박사과정 입학 
유학을 갔지만 6개월 후에 박사과정 입학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는 생화학이었다. 대학 다닐 때 학장이셨던 K교수님으로부터 효소(酵素)한 챕터밖에 배운 것이 없어서 걱정이 되었다. 할 수 없이 일본어로 된 생화학책 하나를 사서 열심히 공부했더니 다행히 합격되었다.

마침내 1979년 9월1일, 나의 박사 과정이 시작되었다. 당시 제제학(製劑學) 교실의 교수님은 하나노(花野?)셨다. 드물게 도쿄대학 출신이 아닌 교수님은 약주를 좋아하고 학생들과 담소하기를 좋아하셨다. 매주 목요일 오후면 얼음 덩어리를 넣은 위스키 잔을 흔들며 실험실로 오시곤 했다. 그럴 기미가 보이면 약삭빠른 일본 학생들은 황급히 집으로 도망쳤다. 교수님께 한번 걸리면 두세 시간 붙잡히는 것은 예사였기 때문이다. 대신 애꿎은 나와 타이완 출신 유학생이 교수님과 대작(對酌)해 드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좀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간에 교수님의 인생관이나 학문관(學問觀) 같은 좋은 말씀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예컨대 “일본의 지도자는 미국과 소련(당시) 사이에 전쟁이 나면 언제 어느 편으로 어느 정도 가담해야 일본 국익에 도움이 될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제제학 교실에는 교수님 밑에 조교수 1명, 조수(助手) 2명과 교무직원 1명이 팀을 이루고 있었다. 조교수로는 훗날 도쿄대학 병원약제부장(교수)을 거쳐 일본약제사회 회장을 역임한 이가(伊賀立二) 박사가, 조수로는 니시가키(西坦) 박사와 스기야마(衫山雄一) 박사가 있었다. 
스기야마 박사는 나중에 도쿄대 교수 겸 세계적인 학자가 된 대단한 학구열의 소유자로 시종일관 학생들을 다그쳤다. 나는 니시가키박사 밑에서 지도를 받게 되었는데, 그는 학문에 대한 실력이나 열정은 스기야마만 못했지만 인품이 점잖았다. 실력이 부족하고 기(氣)가 약한 내가 스기야마 대신 니시가키의 지도를 받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 같다. 

(14) 와신상담(臥薪嘗膽)과 명예회복
박사과정에 들어가자마자 서울대 석사과정에서 수행한 연구를 발표해 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눈앞이 캄캄하였다. 도쿄대학에 와 보니 서울대와의 실력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나는데다가, 특히 내 석사학위 논문의 수준이 형편없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발표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1~2주간의 괴로운 나날을 보낸 후 안면몰수(顔面沒收)하고 발표를 하였다. 그런데 막상 발표를 마치고 나니 교수님이나 대학원생 중 질문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질문할 가치도 없다는 것 같았다. 나는 평생 이때의 창피함을 잊지 않고 와신상담해 왔다. 

하나노 교수님은 박사 과정 과제로 이온 대 화합물(ion-pair complex)에 대해 조사해 보라고 하셨다. Chemical Abstract을 찾아보니 이 키워드가 들어 있는 논문은 제목만 해도 수십 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이 중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공부를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고심하던 어느 날, 교수님은 ‘이온 대 화합물과 생체 흡수’에 대해 조사해 보라고 2차 지시를 하셨다. 이 주제에 한정해서 조사해 보니 그림이 좀 그려지는 것 같았다. 

과제를 받은 지 석 달쯤 지났을 때 그동안 조사한 내용을 교실 세미나에서 발표하게 되었다. 나는 이온 대 화합물의 흡수에 대한 기존 학설을 몇 개로 분류한 다음 각 학설을 그림과 함께 간단명료하게 설명하는 유인물을 만들었다. 물론 발표하는 연습도 성실히 하였다. 발표를 마치고 둘러보니 청중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 다들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대학원 후배이자 뒷날 도호쿠(東北)대학 약학부 교수를 역임한 데라사키(寺崎) 박사는 지금도 그날의 내 발표에 감동하였다고 말하고 다닌다.

이 발표를 통해 석사 논문 발표로 구겨진 내 명예(?)를 상당 부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훗날 세계적인 학자가 된 스기야마 등 당시의 동료와 평생 학문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교류할 수 있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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