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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354> '일본 유학을 떠나다' - 삶 속의 작은 깨달음 9
편집부
입력 2022-08-25 21:50 수정 최종수정 2022-09-0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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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유학의 길이 보이다
영진약품에 다닐 때 대학 동기이자 약대 조교인 C군이 일본 문부성(文部省) 장학생 시험에 붙어 도쿄 대학으로 유학 가는 것을 보았다. 우연히 유학가는 방법을 발견한 나는 그 길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험은 정식 조교(助敎) 발령을 받은 사람만 응시할 수 있는 시험이었다. 당시 약대 전체에 조교 TO가 3~4명밖에 없어 조교 발령을 받기가 매우 어려웠다. 나는 1년이상 대학원 분석실에서 백의종군하며 기다린 끝에 1977년 12월 9일 조교 발령을 받았다.

다음 해인 1978년 문부성 시험에 원서를 냈다. 시험 당일, 시험 장소인 한국외국어대학교에 가 보니 전국에서 응시생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인하대 출신인 이종 사촌 동생도 와 있었다. 집안에 소문이 날 걸 생각해서라도 시험에 꼭 붙어야만 했다. 시험과목은 일어, 역사, 상식이었다. 다행히 얼마 후 발표된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들어 있었다. 더구나 내가 이과(理科)에서 1등이란다. ‘목표가 있으면 길이 나타난다’고 했던가? 마침내 장학금을 받으며 유학을 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박사학위를 공부할 곳으로 도쿄(東京)대학 제제학(製劑學) 교실을 지원하였다. 석사학위를 받은 약품분석학에서 제제학으로 전공을 바꾼 것이다. 제제학이란 약효가 잘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는 제제(製劑)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영진약품 근무 시 그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12) 천식(喘息)의 나라 일본
1979년 4월 9일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난생처음 타보는 비행기였다. 유학생 일행은 모두 33인이었다. 아내와 두 아들은 일단 두고 가기로 하였다. 도쿄 나리타(成田) 공항에 내린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타고 고마바(駒場) 캠퍼스에 있는 도쿄대학 기숙사(瞭)에 도착하였다. 

약 석 달이 지나 도쿄 생활에 조금 감(感)이 잡혔을 때, 이타바시(阪橋)구 시무라사카우에(志村阪上)역 근처에 있는 다이쪼소(大長莊)라고 하는 2층짜리 허름한 아파트 하나를 빌려 가족을 불러들였다. 집세는 월 4만엔 정도였는데,당 시 월 17만엔인 내 장학금에 비추어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당시 엔:원 환율은 약 3:1이었다. 문부성 장학생은 고맙게도 학교 수업료와 각종 세금 일체를 면제받았다.

일본에서 아파트란 우리나라의 연립주택 비슷한 다세대(多世帶) 주택을 말한다. 이 아파트는 훗날 유학생인 C군, S군을 비롯하여 모교에서 도쿄대학을 방문하는 교수님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1층에 있는 우리 아파트는 6조(다다미 6장) 크기의 방 하나에 조그만 부엌과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다다미는 낡았고, 벽에서는 종이흙(紙粘土) 부스러기가 끊임없이 떨어지는 오래된 아파트였다. 고온다습(高溫多濕)한 도쿄 날씨에 1층 방이라 더욱 습기가 많았다. 당시에는 일본에도 아파트나 학교에 에어컨이 없었다.

결국 이 집에서 산 지 3개월쯤 되었을 때 두 아들이 모두 천식에 걸렸다. 알고 보니 일본은 소아(小兒)천식의 나라였다. 아이들이 모여 놀다가 천식 발작을 일으키면 스스로 동네 의원에 가서 현관에 설치되어 있는 분무기를 입에 대고 천식약을 흡입할 정도로 소아 천식이 만연(蔓延)하고 있었다. 두 아이의 천식은 일본에 사는 3년 6개월 동안 집요하게 우리를 괴롭혔다. 세월이 갈수록 발작이 심해져 한밤중에 아이를 들쳐 업고 응급실로 뛰어간 적도 몇 번 있었다. 구청으로부터 아이 당 매달 4만엔씩의 위로금을 받을 정도였다. 아이들때문에 라도 한시바삐 일본을 떠나고 싶었다.

학교까지는 미타(三田)선이라는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편도에 1시간 이상 걸리는 먼 거리였다. 점심과 저녁은 학교 구내식당이나 아까몽(赤門)밖에 있는 모리카와(森川)식당에서 사 먹었다. 아직도 문을 열고 있는 모리야 식당의 400엔짜리 참치덮밥은 정말 맛있었다.

좀 비싸더라도 학교 근처에 아파트를 정했더라면 통학 시간도 절약되고, 점심과 저녁을 집에서 먹을 수 있어 오히려 경제적이었을 텐데, 이를 깨달은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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