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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353> '학교 연구실에서' - 삶 속의 작은 깨달음 8
편집부
입력 2022-08-11 14:03 수정 최종수정 2022-08-1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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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박사 학위의 위력을 깨닫다.
영진약품에 다니던 어느 날, 대학 동기K의 약혼식에 갔다가 한 초등학교 여교사를 만났다.충청도 공주(公州)에서였다.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은 끝에 1975년 11월 2일, 종로 5가에 있는 이화예식장에서 결혼하였다. 그때 나와 아내는 만 27세였다. 그리고 수유동 화계사 아래 작은 기와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였다. 

이 집은 초등학교 졸업 후 줄곧 떠돌이였던 내가 ‘이제는 서울에 거점(據点)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아버지가 그해 7월에 사주신 집이었다. 삼백만 원 정도에 샀는데, 그 집이 오늘날 내가 서울에 집을 갖고 살 수 있는 기본 자산이 되었다. 우리는 출가(出嫁)한 누님댁 등에 흩어져 살고 있던 동생들(여동생 2, 남동생 1)을 불러들여 함께 살았다. 그때는 그게 장남의 도리였다. 

그 집에서 뚝섬 경마장 옆에 있던 영진약품에 출근하려면 새벽에 버스를 타고 왕십리까지 간 다음 거기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했는데, 회사에 도착해보면 가끔 양복 단추가 떨어져 있을 정도로 승객이 많았다. 여성인 차장(車掌)이 버스에 사람이 못 타게 막아야 할 지경이었다. 퇴근해 집에 오면 거의 컴컴한 밤이었다. 

나는 회사에 다니면서 ‘적정법(滴定法)에 의한 앰피실린의 정량’이라는 논문을 써서 1976년 2월 26일 석사학위를 받았다. 불행히도 학위 과정 중 지도(指導)교수님의 지도를 거의 받지 못했다. 1947년에 경성약전(京城藥專)을 졸업하신 지도교수님은 실험에 사용할 시약도 사 주지 못하셨다. 그래도 나는 교수님이 나를 신뢰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였다.
3년 가까이 회사에 다녀보니 아무래도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977년 사표를 냈다. 회사는 처음엔 만류하였지만, 내 결심이 확고함을 알고는 끝내 양해해 주셨다. 퇴사 후 바로 서울대 약품분석화학 전공 박사과정에 풀타임 학생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지도교수님이 나보고 본인의 지도 학생인 Y선배님의 박사학위 논문 실험을 수행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Y선배님이 모 제약회사의 영업부장이라 학교에 나오기 어려웠던 때문이었다.

1977년 7월 낙성대 근처의 작은 기와집으로 이사를 왔다. 700만 원을 주고 산 집인데, 1년 전만 해도 400만 원이면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곳으로 이사를 온 것은, 나중에 혹시 서울대 교수가 될 생각이라면 서울대 바로 앞에 진(陣)을 치고 사는 것이 유리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신기하게도 정말로 나는 1983년 이 집에서 서울대 교수가 되었고, 훗날 집 앞에 낙성대 전철역이 생기는 바람에 집값도 많이 올랐다(1988년 4천만원).

회사를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오니 두 아들을 비롯한 4식구가 살 길이 만만치 않았다. 쌀은 농부인 아버지가 대주셨지만, 생활비는 매달 Y선배님이 실험 수고비 조로 주는 3만 원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고도의 절약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나는 하루에 10원도 쓰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출퇴근은 학교 버스로 하고, 점심은 도시락을 싸가 먹었다. 이렇게 지내도 마음이 가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Y선배님의 실험 주제는 ‘자근(紫根) 성분시코닌(shikonin)의 변색(變色) 지시약 특성에 관한 연구’였다. 시코닌의 이성체(異性體)인 알카닌(alkannin)이 pH에 따라 변색한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져 있어서 그리 독창성이 큰 연구는 아니었다. 우선 자근으로부터 시코닌의 결정을 얻어야 했는데 이게 영 쉽지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냉장고를 열어 보니 벤젠 추출액 중에 시코닌의 침상(針狀) 결정이 예쁘게 생겨 있었다. 기뻐서 사진을 찍으며 흥분했던 추억이 새롭다.

이로써 시코닌을 산-염기(酸-鹽基) 적정시의 변색 지시약으로 쓸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 논문으로 Y선배님은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 학위로 얼마 후 신설된 지방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당시의 박사 학위 위력은 이처럼 신묘(神妙)하였다. 박사학위를 받아야겠다는 내 결심도 더욱 굳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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