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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298> 우울증 - 네 자신을 알려 들지 마라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20-05-06 14: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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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아주 오래 전에 TV에서 본 이야기이다. 평생 우울증 환자를 치료해 온 어떤 명의(名醫)가 노년에 상처(喪妻)를 하고 우울증에 빠졌단다. 그는 자신이 우울증 환자에게 처방해 왔던 약을 먹으며 정신력으로 극복해 보려고 노력 하였다. 그러나 다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는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환자들을 치료해 왔구나” 깨달았다고 한다. 명의도 자기가 경험해 보지 않은 질병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할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나도 십오여 년 전에 우울증으로 몇 해 동안 고생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깨달은 것은 우울증은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병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혈압을 정신력으로 낮출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람들은 ‘집에만 박혀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 친구들도 만나고 하면 점차 좋아지지 않겠나’ 생각한다.

이는 우울증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밖으로 나가 사람 만나기를 싫어하는 병이 바로 우울증이기 때문이다. 내 담당 의사도 나보고 서울대학교 교내의 명상 겸 체조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라고 하였다. 한 번 가 봤더니 보통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 그 프로그램이 나에게는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그래서 바로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정신력으로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증상이 아주 가벼운 경우라면 아침 일찍 일어나 산보를 하거나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고민거리가 생기거나 정신적 충격을 받으면 급격히 증상이 심해진다. 그러지 않도록 주위 사람들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내가 아는 한 우울증 환자는 틈만 나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습관을 갖고 있다. 과거를 보면 뭐하고 살았나 싶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도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미래에도 이는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이렇게 살아 뭐하나 싶고, 매사에 의욕이 없어진다. 심하면 극단적인 생각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우울증 환자에게 가장 나쁜 것은 “네 자신을 알라”고 조언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깊이 성찰함으로써 ‘자신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철학적으로 더 성숙한 삶을 사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생 자체에 회의를 품고 힘들게 버티고 있는 사람에게 ‘네 자신을 알려고 노력하라’는 말보다 더 가혹한 말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제 분수를 모르고, 마치 영원히 살 사람처럼 일에 몰입(沒入)해서 사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더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일 수도 있어 보인다. ‘네 자신을 알려 들지 말고 되도록 시선을 밖으로 돌려라’. 이것이 내가 깨달은 우울증의 예방 및 치료법의 하나이다.

내 경우 시선을 밖으로 돌리는 방법은 손주들과 지내는 것이었다. 나는 마침 아들네 아파트 위 층으로 이사 가는 바람에 아침 저녁으로 손녀들과 봐줄 수 있었다. 그러면 구태여 내 자신을 돌아 보지 않고도 하루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손주들을 보면 저절로 사랑이 샘솟는데, 이 사랑이 우울증에 대한 백신 겸 치료제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럭저럭 한 5년이 지나자 나도 모르게 우울중의 검은 구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을 때 또 하나 괴로웠던 것은 식욕이 없어지는 증상이었다. 먹어야 사니까 나름 열심히 먹는다고 먹는데, 먹다가 밥그릇을 쳐다보면 아직도 밥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휴, 언제 이걸 다 먹나’ 한숨을 쉴 때가 많았다. 우울증이 회복되자 식욕은 덩달아 회복되었다.

요즘 이런 저런 이유로 혼자 사는 사람이 많다. 혼자 사는 것이 외롭다면 우울증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손주를 비롯한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이 최선이지만, 문제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 다시 손주들과 떨어져 살게 된 나는 되도록 뉴스를 멀리하려고 노력한다. 뉴스에 우울증 바이러스가 딸려 올까 두려워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끝으로 이상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에 불과함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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