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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248> 내리 사랑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18-05-09 09:38 수정 최종수정 2018-05-0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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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연녹색 나뭇잎에 기분이 상쾌해지는 봄이다. 봄은 아마 네 계절 중 가장 “볼만’하다고 해서 ‘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같다. 봄이 볼만한 것은 꽃도 나무도 이 때 어린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고, 그 어린 모습이 예쁘기 때문이다. 어린 모습이 예쁜 것은 식물뿐 아니라 동물도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강아지가 개보다 귀엽고, 어린이가 어른보다 예쁘다.

반면에 늙거나 오래된 것은 사람, 동식물, 물건을 막론하고 솔직히 말해서 대체로 추하다. 얼마 전 모처럼 당구장엘 가봤더니 손님이라고는 몽땅 노인들뿐이었는데, 분위기가 좀 ‘거시기’하였다. 60대에도 경로당에 가기 싫어하셨던 어머니 마음이 대번 이해되었다.

사람이나 동물은 자기 자식(새끼)을 엄청 예뻐한다. 부모에게는 새끼가 정말로 예쁘게 보이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은 자식은 다 예쁘고, 늙으면 다 추해지도록 프로그램 해 놓으셨을까? 만약 아기가 팔구십 늙은이의 추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어땠을까?

아마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기 쉽지 않을 것이고, 그 결과로 종족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또한 사람이 늙어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의 모습이 갓 태어난 아기처럼 가장 예쁘도록 프로그램화 놓으셨다면, 자식들은 부모와의 헤어짐을 지나치게 가슴 아파하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늙은 모습을 추하게 만들어 놓으신 이유는, 부모와의 이별을 쿨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인지도 모른다. ‘종족의 보존’과 ‘쿨한 이별’을 위하여, 태어날 때 가장 예쁘고, 떠날 때 가장 추한 모습이 되게 만드신 하나님의 프로그래밍(섭리)에 감사 드린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쁜 새끼를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부모의 본능이다.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부모로부터 자식으로의 ‘내리사랑’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 사랑을 지나치게 자랑할 일은 아니다.

반면에 자식의 부모 사랑, 즉 효도는 물을 상류로 역류(逆流)시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효도는 인간의 본능이 아닌 모양이다. 나이 먹어 추한 모습으로 바뀐 부모를 예쁜 어린 새끼 사랑하듯 사랑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어느 정도는 억지로 해야 한다.

효도(孝道)! 오죽하면 효(孝)하기가 도(道)를 닦는 만큼이나 어렵다고 생각했을까? 그러므로 누구라도 부모를 자식의 반의 반만큼, 아니 자신이 매일 산보시키고 목욕시키는 애완견의 반의 반만큼만 챙겨드리는 사람은, 온 천지의 효자 칭송을 받아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요즘 세태는 꼭 그렇지도 않지만, 지금까지는 자식들이 섭섭해지기 시작할 때쯤이면 손주들이 태어나기 시작한다. 쓸쓸한 늙은이에게 천만 다행한 일이다. ‘내리사랑의 법칙’에 따라 자 손주들이 자식보다 훨씬 더 예쁘다. 손주들은 재롱을 떨어주고 아직 자식처럼 덤비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손주들도 머지 않아 할머니 할아버지 품을 떠난다. 그래도 자식보다는 손주들이 더 오랫동안 사랑해 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착각이라 해도 관계없다.

손주가 자식보다 더 예쁘므로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비결은 간단하다. 자주 손주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제는 요즘 손주들이 학원을 다니느라 너무 바빠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놀아 줄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국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인데, 정치지도자 중 이 측면을 고려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래서 내가 만약 집권하면(?)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다.

나는 가끔 자식들이 섭섭해지면 ‘나는 부모님께 잘 했는가’ 되돌아 본다. 늘 편찮다고 하시던 어머니를 귀찮아 하고, 부모님께 말대꾸 한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자꾸 부모님이 그리워진다. 곧 자식들에 대한 섭섭함이 중화(中和)된다.

어린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늙은 부모님을 귀찮아 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자 원죄(原罪)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성경을 비롯한 모든 도덕이, 자식 사랑은 억제하고 부모 사랑은 억지로라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닐까?

‘내리사랑’은 이러한 모습으로 반복되며 또 다음 세대(世代)로 흘러 내려 갈 모양이다. 예쁜 봄은 언제나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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