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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예술로 승화되는 민족의 힘, 그리고 이스라엘 필하모닉

편집부

기사입력 2021-05-07 11:19     최종수정 2021-05-07 11:33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들어보았는가. 이 노래는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며 나라에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불리곤 한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을 때 연주된 이 곡은 독재와 권위주의에 맞서는 저항가요이기도 하다. 칠레의 시위대도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시위 중 이 곡을 불렀다. 그 밖에 수 많은 예술가들이 민족과 국가가 위기 앞에 희망을 주는 예술 작품을 남겨왔다. 그리고 이런 작품들 저변에는 자신의 뿌리를 알고 지켜나가고자 하는 의지와 그를 뒷받침하는 교육이 있어 왔다. 유대인들에게도 힘든 순간마다 용기와 희망을 준 교향악단이 있다. 바로 이스라엘 필하모닉(이스라엘 필)이다.
 
번스타인▲ 번스타인

이스라엘 필은 1936년 폴란드계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 후베르만이 나치로부터 압박받는 유대인들을 위해 유럽 주요 악단의 유대인 음악가를 모아 만들었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중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중동지역에서 군인들의 사기 증진을 위해 공연했고, 이스라엘 독립 후 비어 세바 사막에서 유대계 미국인인 번스타인의 지휘하에 군인들 앞에서 공연했다. 주빈 메타는 제3차 중동전쟁 중 탄약이 가득 실린 비행기를 타고 와 전시상황에서 연주하며 유대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해주었다.
 
1987년에는 나치에 의해 큰 인명 손실을 입은 폴란드의 바르샤바, 크라코우, 카토위체 도시에서 유대계 오스트리아인인 말러 5번 교향곡을 연주했다. 이를 두고 주빈 메타는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정신적 승리’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저명 음악가들은 힘든 순간마다 주저 없이 본국으로 돌아왔다.이스라엘이 국가로서 존속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말이다. 망설임 없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뛰어드는 용기. 그 시작은 무엇일까?
 
필자는 사명감과 공동체 의식을 교육에서 찾았다. 그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이 바로 예술교육에 대한 무한한 투자와 열정이다. 그들은 교육 기금을 스스로 자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1967년 번스타인과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의 공연이다. 이 공연은 대통령조차도 표를 구매해 관람했는데, 티켓 수익의 전부가 유대인과 아랍 청소년 오케스트라 설립에 쓰였다. 

IPO WITH LAHAV2019▲ IPO WITH LAHAV2019

 1995년 주빈 메타는 팔레스타인과 유대인 어린이들을 위한 합동 공연을 하였고, 교육 부서를 설립, 많은 어린이에게 음악교육을 하고 있다. 또, 2005년 텔아비브 대학에 부흐만-메타 음악학교를 설립해 단원들이 차세대 연주자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스라엘 필 대표 아브라함 쇼사니는 신인 음악가 발굴이 오케스트라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 말한다. 그는 세계적인 유대계 음악가들이 이스라엘 필에서 신인 시절을 보냈으며 오케스트라의 자식과도 같다고 했다. 더불어 쇼사니는 이스라엘 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국립 오케스트라이며 동시에 세계 각국의 유대인을 하나로 묶어주는 ‘유대인들을 위한 오케스트라’이기도 하다.” 
 
지역을 넘어서 공동체 의식을 계승하고 공유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다. 이것이 다른 오케스트라들과 차이점이자 고유성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이 말을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필자의 뉴욕 필하모닉의 경험 덕분이었다. 뉴욕 필에서 일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받았던 교육이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그들의 요지는 이러했다.
“우리는 ‘뉴욕’필하모닉이다. 우리는 번스타인의 오케스트라이고 우리보다 번스타인의 곡을 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는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뉴욕이라는 뿌리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했으며 지휘자의 명예를 중요시했다.(물론 다국적 오케스트라로서 각 문화에 대한 존중이 기반되었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오케스트라의 뿌리를 지역(뉴욕)에 둘 것인가, 민족(유대인)에 둘 것인가의 문제에서 태생적으로 둘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 필은 장소에 국한된 오케스트라이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작은 의문이 생긴다. 유대인들의 ‘지역에 얽매이지 않는’ 정체성의 시작은 어디일까. 필자는 탈무드의 힘을 언급하고 싶다. 유대인 교육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인 탈무드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유대인으로서의 민족 정체성을 체득하게 한다. 내가 어디에서 나고 자랐으며 어떤 민족인지 인지하는 것은 정체성의 형성에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나의 뿌리를 알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하게 만드는 교육. 그것이 자기표현의 힘으로 이어진다. 힘든 상황에 닥쳤을 때 스스로를 위로하고 주변과 공동체 정신을 함양시키는 예술적 표현을 위해서는 건강한 정체성이 전제된다. 
  
세계 최고의 예술단체들은 단단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최고의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나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하고, 이 자신감은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정체성은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건강하게 소통하며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 나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유대인의 저력 역시 여기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유대인들이 역사적으로 겪어 온 고난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정체성 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필은 그 뿌리를 잊지 않고 이어나가는 ‘교육’에 어떤 오케스트라보다 열정을 쏟고 있다. 우리에게도 국민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문화와 교육의 힘이 있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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