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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환자 중심적인 치료 (1)
편집부
입력 2022-02-28 17:29 수정 최종수정 2022-02-2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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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환자는 인슐린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약사 레지던트는 내 클리닉에 오늘 처음 방문하기로 되어있는 환자인 NP의 당뇨병 치료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나에게 말했다.  내 클리닉에 실습오는 수련인들은 클리닉이 시작하기 전에 환자들의 차트를 모두 읽고 자신만의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환자를 만나기 전에 나와 함께 이에 대해 토론한 다음 치료계획을 확정한다.  물론, 환자를 직접 만나는 동안 환자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면 이에 따라 치료계획을 수정해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환자를 만나기 전에 나와 함께 미리 치료계획을 세워보면 아직 임상 경험이 적은 수련인들이 환자를 좀 더 효율적으로 또 자신있게 볼 수 있다.

“좋은 생각이야. 이 환자는 메트포민 (metformin), 글리피지드 (glipizide), 리나글립틴 (linaglipitin) 등 세 가지의 당뇨병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긴 하지만 환자의 당화혈색소 (hemoglobin A1c) 수치가 너무 높아서 인슐린이 필요해 보여.”

NP의 당화혈색소 목표치는 7%미만이었는데 최근 측정한 당화혈색소 수치가 13.3%로 거의 두 배나 더 높았다.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들은 각각 당화혈색소를 0.5-1.5% 정도 떨어뜨리기 때문에 NP의 당화혈색소 수치를 목표치까지 낮추기 어려워 보였다.  따라서, 당화혈색소를 무한정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인슐린이 NP에게 가장 좋은 치료방법이었다.  

“그래, 어떻게 되었니?”
NP를 다른 진료실에서 만나보고 온 약사 레지던트에게 물었다.

“NP가 인슐린을 시작하는 것을 꺼려해요.”
“왜?”
“음식, 운동 등의 생활습관 조절을 먼저 해 보고 싶어해요.”
“그래?  같이 가서 NP와 얘기해 보자.”


우리가 NP를 만나자마자 레지던트는 인슐린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NP의 표정과 태도를 보니 인슐린을 처방받는다고 하더라도 안 사용할 것 같았다.  또, 그의 현재 사정을 들어보니 코로나로 인해 일자리를 잃어서 좀 힘들게 생활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굶는 날도 꽤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음식을 섭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슐린을 투여하면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는 저혈당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일단 생활습관 조절방법을 더 강화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나의 제안을 들은 NP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생활습관 조절로는 충분하지 않을수도 있으니 인슐린 대신 저혈당의 위험이 낮은 리라글루타이드 (liraglutide)라는 약을 오늘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기존에 드시고 계신 약들과 새 약, 그리고 생활습관조절을 3개월 시도해 보고 당화혈색소를 다시 측정해 봅시다.  만약 그 때에도 당화혈색소가 7%보다 더 높으면 인슐린을 시작해도 될까요?” 

NP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NP가 식사를 거르지 않도록 샌프란시스코시가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곳을 알려 주었다.

3개월 뒤, NP의 당화혈색소를 측정해 보니 11.3%로 목표치인 7%미만보다 아직 많이 높았다. 이러한 치료결과를 본 NP는 인슐린을 시작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래서, 나는 NP 에게 인슐린을 처방하고 2~3주간격으로 환자를 모니터하면서 인슐린 용량을 조절했다.  그리고, 3개월 뒤 측정한 당화혈색소는 7.9%로 크게 개선되었다.   

이처럼 치료방법을 결정할 때 환자의 의견과 생활환경을 반영하면 치료결과가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환자 자신의 선호도, 가치, 생활환경 등을 고려하여 환자와 함께 치료방법에 대해 결정하는 것을 환자 중심적인 치료(Patient-centered care)라고 부른다.  환자 중심적인 치료는 환자를 건강관련종사자의 지시에 따르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협력자로 대한다.  즉, 환자를 치료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대하는 것이다.  건강관련종사자는 환자에게 치료방법을 처방한다.  하지만, 이는 좋은 치료 결과를 위해서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처방이라도 환자가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 처방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료방법에 대한 환자의 동의와 참여는 좋은 치료 결과를 위해 필수적이다.

환자의 선호도, 가치, 생활환경 등을 반영하여 환자와 함께 치료방법을 결정하면 환자는 합의한 치료방법에 대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임하게 된다.  그리고, 위의 NP의 예처럼, 합의했던 치료방법으로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했을 때는 건강관련종사자가 제안하는 다른 방법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즉, 환자의 의견을 반영해 주기 때문에 그 치료방법에 대한 순응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환자 중심적인 치료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 같다.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등의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증가한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만성질환은 증상이 거의 없고 약을 이용한 장기적인 조절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환자의 치료방법에 대한 동의와 참여없이는 이 질환들에 대한 장기적인 조절이 쉽지 않다.  그런점에서 환자 중심적인 치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다음편에서는 환자 중심적인 치료를 위해 임상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 다루기로 하겠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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