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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 느림의 미학: 나잇값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편집부

기사입력 2021-07-28 15:43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어머니세요?
내가 근무하던 부대에는 ‘마리아 상사’라는 분이 있었다. “이누무 OO들 말이야, 말을 들어 먹지 않고 말이야” 식으로 말끝마다 ‘말이야’를 붙인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마리아’라는 별명이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사병들에게 엄청 무서운 상사였다. 휴가를 마친 사병들이 귀대할 땐 대개 그의 집에 들러 조그만 선물(뇌물)을 바치고 들어와야 마음이 편해질 정도였다. 그의 집은 선물 받기에 편리하게 부대 철조망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1973년인가 나도 정기 휴가를 다녀오면서 조그만 떡 보따리를 하나를 들고 그의 집을 찾았다. 저녁나절이었다. 마리아 상사가 들어오라고 해서 어둑어둑한 방으로 들어갔는데, 조금 앉아 있자니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한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조그만 밥상을 들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어머님 되십니까?” 인사를 하였다. 그건 대단히 예절 바른 행동이었다. 그런데 마리아 상사가 “아냐, 우리 마누라야”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난 이제 죽었구나’ 하는 낭패감이 엄습하였다. 부인을 어머니냐고 묻다니!!!! 내가 싸~한 분위기의 그 자리를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는 지금껏 기억나지 않는다. 

그 후 나는 ‘한 박자 천천히 반응하자’를 생활의 모토로 삼게 되었다.

결혼해야지?
오래간만에 제자를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각별한 친근감을 표시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한번은 오랜만에 만난 제자에게 그런 마음으로 “너 결혼 해야지?”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제자 왈 “지난번에 딸 낳았다고 말씀드렸었는데요” 하는 것이 아닌가? 괜히 친근감을 보이려다 망했구나 하는 민망함을 느꼈다.

또 한번은 우연히 만난 제자가 “교수님, 저 어디 다니는지 또 모르시죠?” 하는 것이 아닌가. 약대 교수들은 제자를 만나면 “너 요새 어디 다니냐?”고 묻는 습관이 있다. 약대 졸업생들이 특히 회사를 잘 옮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따로 물어볼 말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의 공격성 질문을 듣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아마 내가 과거에도 그에게 같은 질문을 했던 모양이다. 사실 교수들은 제자가 어디 다니고 있다고 대답을 해도 건성으로 듣기 때문에 그 대답을 오랫동안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수들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이후 나는 제자들에게 ‘어디 다니냐’고 묻지 않는다. 어차피 기억도 못 할 텐데 공연히 물었다가 다음번 만났을 때 공연히 제자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까 두렵기 때문이다. 기억 못 할 일은 아예 묻지도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아픈 애는 집에 있는데요?
친구가 병아리 개업 약사 시절에 경험한 일이라며 들려준 이야기이다. 하루는 한 아주머니가 아이를 업고 약국에 들어섰다. 아이가 매우 아파서 약을 지으러 왔다는 것이었다. 친구는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고 ‘아니 아이가 이렇게 아플 때까지 왜 가만 계셨어요?’ 하며 아주머니를 나무랐다. 그랬더니 아주머니 왈 “얘는 하나도 안 아픈 애예요, 아픈 애는 집에 있는데요.” 하는 게 아닌가. 순간 친구는 ‘망했구나’ 싶었다고 한다. 민망했다고 한다. 

그 후 그 친구는 다음과 같은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상대방이 다 말해 주게 되어 있다. 괜히 성급하게 먼저 아는 척하다가 망신을 당하지 말자.’ 

그 교훈 덕분이었을까? 그 친구는 약국으로 성공해서 노년을 잘 지내고 있다.

에필로그
나이가 들수록 잘 안 보이고 잘 안 들린다. 장모님은 이는 나이가 들수록 덜 보고 덜 들으라는 창조주의 섭리라고 하셨다. 나이가 들면 몸의 동작도 느려진다. 예전에는 아버지가 차에서 너무 느리게 내리셔서 짜증이 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내 동작이 그렇게 되었다. 느려지는 것도 장모님 말씀대로 창조주의 섭리라고 생각해 본다.

점잖은 사람, 즉 결코 젊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이 보고 듣고, 너무 빨리 반응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내가 바로 그렇다. 그래서 틈틈이 다짐해 본다. ‘덜 보고 덜 듣고, 한 박자 느리게 반응하자’. 혹시 이게 나잇값 하며 사는 방법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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