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에필로그
노류장화(路柳墻花)라 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사대부들이 기생(妓生)들에게 붙인 별칭이었다. 길가의 버들과 담 밑의 꽃이란 의미다. 하지만 ‘美人탐방 제2부’에 등장하는 시기(詩妓)와 의기(義妓)는 노류장화와는 의미가 다른 미녀들이다.
사대부들이 독차지 하고 싶어 경쟁적으로 다가가나 되레 그녀들이 물러서며 파트너를 골라서 선택하는 절세미녀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 불붙는 정렬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 양귀비 꽃 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 아...
2019-07-10 09:36 |
[문화] <159> 홍랑(洪娘) <제14話>
시묘(侍墓)살이 9년의 혹독한 사랑의 영혼은 제1회 파주 홍랑 문화예술제(회장 사영기)로 되살아났다. 무려 435년(2018년 4월 18일)만이다. 사랑이 문화예술로 승화된 아름다운 행사다.
홍랑과 고죽이 주인공이다. 사내는 조선팔도를 대표하는 풍류객이며 홍랑은 시와 노래, 그리고 가야금과 거문고까지 능수능란한 기생(前) 신분이다. 그들은 우연한 기회에 첫눈에 반해 부부가 되었다. 영원히 헤어져서는 못사는 부부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의 뜨거운 사랑을 시샘 했음인지 짧은 만남에 긴 기다림에 시달리는 ...
2019-07-03 09:36 |
[문화] <158> 홍랑(洪娘) <제13話>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한다 했던가? 고죽은 탄 말에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채찍을 날렸다. 한시라도 빨리 홍원에 가려는 속내다. 종성(鐘城)의 부사 겸 병마절도사를 겸한 발령을 받고부터 홍랑이 눈앞에 나타나 잠도 설쳤다.
종성군은 함경도 최북단으로 여진족 오랑캐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날뛰어 조선은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다. 때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7~8년 전이다. 선조(宣祖·1552~1608) 시대다. 고죽은 종성부사와 병마절도사를 겸한 부임길에 올랐다. 입법·사법·행정을 한손에 쥐고 종성으로 달린다.
가늘 길에 홍원...
2019-06-26 09:36 |
[문화] <157> 홍랑(洪娘) <제12話>
고향으로 돌아온 홍랑은 하루하루가 새롭다. 고죽을 한양으로 떠나보냈어도 뱃속엔 제2의 고죽이 쑥쑥 자라나고 있어서다. 울타리의 개나리와 산수유가 어느 해보다도 화려하고 예쁘게 피었다. 세상만사가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다. 배가 불러올수록 홍랑은 점점 더 행복하고 ‘내가 고죽의 여자다.’라고 저잣거리에서 목이 쉬고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소리치고 싶은 속내다.
하지만 속내는 그렇지가 않다. 고죽이 한양으로 떠난 날부터 소식이 기다려졌다. 하루가 여삼추 같이 길고 길다. 밤마다 꿈에도 잘도 나타나드니 한양으로 ...
2019-06-19 09:36 |
[문화] <156> 홍랑(洪娘) <제11話>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고죽이 등청을 하지 않고 있다. 어젯밤에 뼈가 녹도록 쌓였던 회포를 풀어 그러려니 하고 홍랑은 부엌에서 아침 준비에 부산하다. 홍랑의 입에선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경성에 와서 처음 신방 같은 잠자리였다. 홍원에서 화촉동방을 치른 후 처음이다. 홍랑의 콧노래가 문지방을 넘어 고죽의 귀에까지 들렸다.
그때였다 ‘억억억...’ 하고 헛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죽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그게 무슨 소리냐? 어디가 아프냐?” 고죽의 화들짝 놀라는 표정에 홍랑은 잔잔한 ...
2019-06-12 09:36 |
[문화] <155> 홍랑(洪娘) <제10話>
오랑캐들은 결국 경성에 쳐 들오지 못하였다. 몇 번이고 침공을 시도했다 고죽에게 대패하고 스스로 물러갔다. 고죽의 명성에 눌려 스스로 살길을 찾은 것이다. 몇 번의 침공을 해 봤으나 철벽수비로 수백 명의 사상자만 냈을 뿐 한 능선도 탈취하지 못해 스스로 후퇴하고 말았다.
한편 홍랑은 홍랑대로 밤낮으로 안달이다. 고죽 곁으로 오면 마음이 편하고 행복할 줄 알았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정반대다. 멀리멀리 떨어져 있을 땐 궁금하여 상상만으로 안타까웠는데 막상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속만 태우고 있으니 안 보느...
2019-06-05 09:36 |
[문화] <154> 홍랑(洪娘) <제9話>
비좁고 열악한 주거환경이지만 사랑하는 남녀는 행복하다. 지금 홍랑과 고죽이 그러하다. 언제 오랑캐들이 물밀 듯 쳐들어올지 몰라도 잠시 홍랑을 볼 수 있어 풍류객 고죽은 감격할 기쁨이다.
홍랑도 고죽의 마음과 같다. 종교 같은 사랑을 위해 불원천리 달려와 이제 잠시라도 고죽을 볼 수 있는 행복을 만든 자신이 대견하기까지 한 것이다. 홍원에서 이제나저제나 서찰이 오길 기다릴 때보다 마음이 한결 편하다.
하지만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홍원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아 아름다운 상상만을 했었는데 경성에 와 현실을...
2019-05-29 09:36 |
[문화] <153> 홍랑(洪娘) <제8話>
오매불망 고죽이 있는 경성에 홍랑이 닿았다. 20여일 만이다. 그러나 홍랑은 멀쩡한 모습이 아니다. 행색이 영락없는 거지꼴이다. 객관 앞에 쓰러진 채다. 밤새 달려와 기진맥진 객관 앞에서 기절했던 것이다. 이것을 병졸들이 발견하여 고죽에게 알렸다.
만약 고죽에게 알리지 않고 처치했다면 자칫 그들의 해후는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오랑캐들이 적정(敵情)을 살피려고 세작(細作·간첩)을 보낼 수도 있어 장검으로 난도질하여 땅에 묻어 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이 그들을 도왔다. “이제 정신이 드느냐? 어...
2019-05-22 09:36 |
[문화] <152> 홍랑(洪娘) <제7話>
거짓 군령(軍令)을 내리기로 결심하였다. 고죽의 단호한 충성심이다. 오랑캐(여진)들은 시시각각으로 경성을 향해 조여오고 있다는 첩보다. 병마절도사 김선삼을 며칠 동안 설득했어도 요지부동이다. 자신이 병석에 있는 동안 고죽의 잘되는 꼴이 배가 아파서 더욱 이 핑계 저 핑계로 군령을 내리지 않는다.
고죽은 결국 거짓 군령을 내려 경성을 지키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비굴하게 처신하는 것 보다 당당한 사내가 되자는 결단이다. 고죽은 한밤중에 내당으로 나와 천단(天壇)을 만들어 요배(遙拜)를 올리며 임금에게 헌시를 ...
2019-05-15 09:36 |
[문화] <151> 홍랑(洪娘) <제6話>
경성의 소식은 오지 않았다.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전해지지 않는 것이 지역적 거리다. 지금 경성에 있는 고죽과 홍원에 있는 홍랑이 딱 그러하다. 기다리다 지친 홍랑이 경성으로 고죽을 만나러 가려는 채비다.
어명(御命)에 얽매여 옴짝달싹 못하는 고죽보다 홍랑이 찾아가는 것이 나으리란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홍랑은 기적에서도 빠져나와 이젠 자유의 몸이 되었다. 고죽의 여자로만 살아가면 되는 여인이다. 하지만 고죽의 여인의 세상살이가 생각처럼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것만큼 고달픈 것은 없다....
2019-05-08 09:36 |
[문화] <150> 홍랑(洪娘) <제5話>
정원 연못가에 홀로서 있는 오동나무는 어느새 잎을 하나둘 떨어뜨리고 앙상하기 그지없다. 기적(妓籍)에서 빠져나온 홍랑(洪娘)은 쓸쓸하기 짝이 없다. 살림살이도 어려워졌으며 사람들이 그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홍랑은 고죽이 있는 경성으로 가려한다.
보통결단이 아니다. 함경도 국경지대는 전장에서 뼈가 굳은 장수들도 꺼리는 지경이다. 윤관장군의 전승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조차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으며 명재상 이색(李穡)이 떠나가는 어느 장수에게 간곡한 격려를 하였다. “장백산(백두산)은 높...
2019-05-02 09:36 |
[문화] <149> 홍랑(洪娘) <제4話>
하룻밤 사이에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만리장성을 그들은 쌓았다. 홍랑이 더 적극적 자세다. 고죽은 북평사(北評事) 임무를 맡고 가야 할 몸인데 풍류객 본색이 발동하여 잠시 직분을 잊었을 뿐 교지를 보인 후엔 머리가 곤두서고 마음이 바빠졌다.
홍원서 경성은 먼 길이다. 북청→단천→길주→명천 등을 거치는 머나먼 천리길... 홍랑은 고죽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변방은 오랑캐들이 들끓어 행여 잘못될 수도 있어 이번에 헤어지면 영영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까지 들어서다. 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적 ...
2019-04-24 09:36 |
[문화] <148> 홍랑(洪娘) <제3話>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으라 했더니 홍랑과 김별장이(고죽 최경창) 그러하였다. 하룻밤을 지냈어도 그들은 천생연분 연리지(連理枝)는 되지 못하였다. 아직도 그들은 홍랑과 김별장 그대로다. “아직 취침중인가 김별장?” 다그치는 이 사또의 목소리다. “어 이 사또 들어오게나. 홍랑과 정지상의 《대동강》 시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네...” 이 사또는 주저주저하다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여전히 남녀관계를 하지 않은 분위기다. 옷매무새가 가지런하고 표정이 정색 그대로다. “김별장 오늘은 경성 임지로 떠나...
2019-04-17 09:36 |
[문화] <147> 홍랑(洪娘) <제2話>
그들은 밤새 보낸 시간이 안타까운 듯이 뜨거운 살을 더욱 뜨겁게 부볐다. 하지만 홍랑은 마음은 주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사내 같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선 듯 열리지 않아서다.
옥골선풍의 모습이나 품행으로 봐 자신이 신격화(神格化)하고 있는 고죽 최경창과 너무 닮아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열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홍랑과 김별장은 등만 비벼댔을 뿐 얼굴은 마주 보지 않았다. 얼굴을 마주보면 심장이 멎고 정신을 잃을 것 같아서다. 홍랑은 이미 김별장이 최경창이란 것을 확신하고 있다. ...
2019-04-10 09:35 |
[문화] <146> 홍랑(洪娘) <제1話>
세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술 분위기는 밤이 깊어가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늘엔 둥근 보름달이 두둥실 떴다. 홍랑(洪娘)의 가야금 병창소리에 하늘을 날던 기러기들도 날갯짓을 멈춘 듯 울음소리가 멈추었다.
사또(李生麗)는 밤 분위기가 익어가자 자리를 피해주고 싶은 상황이다. 이생려와 최경창(崔慶昌:1539~1583)은 동문수학 죽마고우다. “허허, 나는 이제 그만 피곤해서 가서 자야겠네! 내일도 정무가 산적해 있어 두 사람은 술로 밤을 샐 듯하네!” 이 사또는 들었던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상위에 탕 소리가 ...
2019-04-03 09: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