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기간 아침방송을 통해 소개된 한 사람의 인생 다큐멘터리가 잔잔한 감동과 함께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어른 김장하'라는 제목의 이 다큐는 올해 79세가 된 한 촌로(村老)의 평생에 걸친 기부행적과 인생역정을 다룬 내용으로 그동안 알려진 세상의 수많은 기부자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였기에 시선을 끌었다. 평생을 통해 선행과 기부를 이어왔지만 단 한번도 매스컴의 주목를 받거나 그 흔한 공로패 감사장도, 인터뷰 요청도 단호히 거부해 온 거인의 기행은 오랜 기간 주변을 취재하고 흔적을 뒤져 온 한 지방신문사 언론인과 지역방송 PD에 의해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다.
남성 김장하 선생은 진주 명신고등학교와 남성문화재단 전 이사장이자 남성당한약방을 수십년간 운영해 온 한약업사이다. 아픈 환자들을 통해 얻은 이윤을 자신을 위해 한 푼도 허투루 쓸수 없었다는 말로 기부배경을 대신한 김 선생은 함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나눌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나누고, 평범한 걸 사랑하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인물평을 받고 있다. 김 선생의 일대기를 취재하기 위해 약 100명 이상의 주변인들을 만난 기자는 거의 50년에 가까운 긴 세월동안 개인으로서는 결코 적지않은 금액(약 150억대 추정)을 기부하면서도 대가 없는 나눔과 간섭없는 지원을 실천한 본받고 싶은 어른이라고 말한다.
김장하 선생이 평생의 업으로 삼아 온 한약업사는 일제시대부터 이어져 온 보건의료업 종사자로 1983년 마지막으로 치러진 자격시험 이후 단 한명도 신규 배출되지 않았다. 사단법인 대한한약협회의 회원통계 현황에 따르면 최대 3천여명을 넘어섰던 전국의 한약업사 회원은 현재 6백명도 채 안되는 상황으로 평균연령도 거의 80세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한약업사 직능은 이제 정식 의료인인 한의사와 면허를 가진 약사와 한약사에 의해 일부 계승되고 있지만 한약업사들이 수십년에 걸친 임상과 투약을 통해 확인된 의미있는 처방들이 머지않아 고스란이 휴지가 될 상황에 처한것은 분명하다.
복지부는 20여년전인 지난 2003년 전통 한약처방의 임상적 가치를 계승 발전시키고 한약제제 또는 신약개발 등에 활용하기 위해 사장·멸실 우려가 있는 한약처방 약 900여개를 전승자 또는 보유자로부터 수집해 한약처방조사수록집을 공개한 바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끝이었다. 이 처방조사에 참여했던 수많은 한약업사들이 이미 사망했고 남성당한약방 역시 지난해 문을 닫고 영업을 종료했다고 한다. 기부천사 혹은 시대의 진정한 어른으로 존경받는 한약업사 출신 제2 제3의 김장하는 더이상 출현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