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은 감염병의 위험에 대한 큰 교훈을 남겼다. 코로나19가 등장하면서 한켠으로 밀려났지만 공중 보건을 오랜 동안 위협해 온 감염병이 있다. 바로 HIV다. 발견 초기만 해도 치료 방법이 없어 ‘죽음의 병’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제는 하루 한 알의 치료제로 관리할 수 있고 예방까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질환에 대한 낙인과 차별은 여전하다. 물론 검사를 회피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죽음의 그림자는 여전하고, 감염의 위험도 크다. 약업신문은 감염자에겐 올바른 관리법을 안내하고, 일반인에겐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HIV 특집을 6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주>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이하 HIV)는 치료제만 잘 복용하면 전파력이 ‘0’이 되지만, 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여전하다.
여러 나라의 사회문화적 가치를 조사하는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 WVS)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에이즈 이웃이 싫다’고 답한 비율은 92.9%에 이른다. 조사에는 참여한 64개국의 평균 비율이 38.4%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베트남에 이어 에이즈 이웃을 싫어하는 나라 2위에 올랐다.
에이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한 배경에는 ‘오해’와 ‘편견’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질병관리청과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2021년에 진행한 에이즈 관련 조사에서 ‘에이즈 환자와 음식을 같이 먹을 경우 에이즈에 감염될 수 있다’는 항목에서 오답을 말하거나 ‘모르겠다’고 답변한 비율은 39.6%나 된다. 에이즈의 원인체인 HIV는 식사를 같이 하거나 사우나를 같이 하는 등 일상적인 생활을 통해선 전파되지 않는다.
대규모 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에 따르면 적절한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ART)를 받아 바이러스가 미검출 수준이면 HIV의 전파는 불가능하다. 즉 치료만 꾸준히 받으면 타인에게 HIV를 전파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HIV에 감염되지 않은 비감염인 중 U=U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변한 비율은 16.6%에 불과하다.
러브포원(LOVE4ONE)에서 2022년에 실시한 HIV 감염인 대상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12개월 내 2주 이상 우울감을 호소한 감염인은 37.2%에 달할 만큼 감염인들의 심리적 압박 및 어려움은 크다.
약업닷컴은 20일 HIV 감염인 박광서(가명)씨를 직접 만나 HIV 감염 진단과 치료 과정, 나아가 낙인이나 차별로 인한 일상생활의 어려운 점들과 개선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한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서 최근 진행됐다.
Q. 처음 감염 사실을 알게 된 건 언제인가? 특별한 증상이 있었는지?
1994년 8월,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 응급실에서 검사하는 과정에서 HIV 감염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HIV 감염 전후 특별한 증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감염이 의심되는 시점에 약간의 몸살 기운이 있긴 했지만, 이러한 증상은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에 HIV 감염 여부를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Q. HIV 양성 진단을 받았을 때 당혹스럽고 불안했을 것 같은데, 당시 심정은 어떠했는지?
당시만해도 ‘에이즈에 걸리면 죽는다’라는 말이 많았고, HIV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었다. 또한 물어볼 곳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대체 언제 죽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가 더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 보건소에 연락했다. 요즘이야 HIV 관련 상담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전화해서 상담할 곳도 없었고 질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소통창구가 전혀 없었다.
겨우 연락이 닿은 응대자는 HIV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연락이 두절되면 격리시키겠다’ ‘감염 사실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해선 안 되고, 무덤에 갈 때까지 혼자 간직해야 한다’ 이런 말을 해 사람을 더 힘들고 불안하게 했다.
불안한 것을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Q. 현재 HIV 치료는 어떻게 받고 있는지?
치료 초기에는 3개월에 한 번씩 방문했고, 현재는 6개월 주기로 내원한다. 보통 진료일 15일 전 미리 혈액 검사를 받고 예약된 날에 진료받아 약을 처방받는다.
혈액 검사에선 바이러스나 CD4 세포 수치를 확인한다. 몇 달에 한 번씩 성병 검사나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에 대한 동반 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
Q. 치료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HIV 치료를 받는 감염내과 진료에선 어려운 점이 없다. 다만, 타과 진료를 받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과거 서울 한 병원에서 HIV 감염인 치과 치료 과정에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의자와 기구를 비닐로 덮고 진료를 했다는 기사가 난 적 있다. 본인 또한 같은 일을 경험했다.
치과에서 HIV 감염인임을 알게 된 후 진료일 변경을 요청했다. 사유를 물으니 의자에 씌울 비닐이 준비되지 않았다며 예약 일자 변경을 요구했다. 결국 처음 진료받았던 진료실이 아닌 창고 앞에서 따로 진료를 받게 됐다. 진료 도구에도 크게 ‘HIV’라고 써 있었다.
감염내과 협진으로 외과 수술을 받을 때도 의료진이 우주복과 같은 수술복을 입고 수술을 진행한 적 있다.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감염인을 대한 것이다.
질병관리청에서도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HIV’ 감염인 진료를 위한 의료기관 길라잡이’ 등의 지침을 배포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도 많고 개선할 부분도 많다고 생각한다.
Q. 사람들이 HIV에 대해 가장 크게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3가지다.
우선 ‘동성애자가 HIV 확산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HIV는 동성애, 이성애의 여부에 따라 나뉘는 것이 아니다. 성매개 감염병이기 때문에 동성애나 이성애와 관계없이 확산될 수 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처음으로 HIV를 동성애자 질환이라고 발표한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HIV 감염은 문란한 성생활 때문이라는 것’이다. 감염됐지만 감염 사실을 모르는 파트너로 인해 자신까지 감염됐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문란하게 놀았으면 HIV에 감염되냐’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이는 감염인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
마지막으로 ‘같이 식사하거나 술을 먹으면 HIV에 감염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과거에 한 술집에서 겪은 사례다. 지인과 술을 마시고 술집을 떠났는데, 다른 손님을 통해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들은 가게 사장이 고무장갑을 끼고 내가 사용했던 식기를 모두 버리고 락스로 테이블과 인근 바닥을 닦았다고 들었다. 당시 HIV 감염인 친구가 해당 가게의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장의 대처를 보고 차마 본인도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사례를 들자면, NGO 단체에서 마련한 ‘중학생 대상 HIV 인식 개선 교육’에 강사로 참여했을 적 일이다. 당시 교육을 담당하던 선생님이 내 식사만 따로 접시에 담아 준 적이 있다. 그 때 ‘HIV에 대한 강의를 하는 강사조차 HIV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 학생들에게 과연 올바른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오해는 타인에게만 받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에게서도 받을 수 있다. 감염 사실을 알게 된 후 ‘생활비를 지원해 줄 테니 나가 살라’라든가, ‘같이 살더라도 밥 그릇이나 수건을 따로 쓰자’라고 하는 경우가 흔하다. 보통 질환을 앓게 되면 가장 의지할 대상은 가족이다. 하지만 감염인들은 가족들에게조차 외면받고 있다.
실제 러브포원 연구 결과에서도 가족과 함께 지내는 HIV 감염인들의 우울감이 그렇지 않은 감염인들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를 잘 받고 있는 감염인이나 전파가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감염인이라도 본인 때문에 가족도 아프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해 자존감이 매우 낮아지는 경우가 많다.
Q. 현재 HIV 감염인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데, 힘든 점은 없는지?
상담을 해주는 사람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연달아 들려오면 많이 힘들다. 처음에는 빈소를 찾아가 조문하기도 했는데, 자살 소식이 너무 많이 들리다 보니 어느 순간 감당이 안되는 수준까지 도달했고, 전화벨이 울리는 것조차 겁났다.
HIV 감염인 자살 심각성에 대해 알게 됐고, 관련 인식 조사를 했다. 과거 대비 치료 기술이 발전해 HIV 감염인도 비감염인처럼 건강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자살과 우울증 유병률이 높은지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그 결과, 2020년 기준 HIV 감염인의 자살 시도율은 동일 연령 비감염인 대비 40배 정도 높았다. 어떠한 상황에서 자살을 생각할 만큼 힘이 드는지 물었더니, ‘HIV에 대한 혐오 발언을 마주했을 때’라고 답 하더라. 때론 맞서 싸우고 싶지만 자살하고 싶을 만큼 힘들다고들 했다.
어느 정도 결과와 이유는 예상했지만, 막상 직접 들어보니 상황은 심각했다. 또 다른 연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9명이 ‘내 이웃으로 HIV 감염인을 두고 싶지 않다’고 답변할 만큼 HIV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심각한 것을 알 수 있다.
Q. 사회, 검사, 치료환경에서 개선됐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식 개선’과 ‘차별 및 낙인 해소’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먼저 우리나라에는 아직 ‘U=U’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 현재 에이즈예방법 19조에 따르면,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 전파매개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 여러 임상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처럼, 꾸준한 치료를 통해 바이러스 미검출 수준을 유지하면 타인에게 HIV는 전파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행법에서 바이러스 미검출 여부를 판단하기보다는 HIV 감염인의 성행위와 콘돔 사용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법원에서 U=U를 100%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지난해 12월, 질병관리청은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U=U가 포함된 인식 개선 포스터를 제작했다. 성소수자가 많은 이태원이나 종로에 부착하는 것을 제안했는데, 아직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개념이 어려울수록 대중에게 더 많이, 자주 노출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HIV는 치료 기술의 발달로 이제 더 이상 죽는 병이 아니다. 하루 한 알을 통해 관리가 가능하다. 결국 숨어있는 HIV 감염인을 찾아내 꾸준히 치료받게 하는 것이 HIV 종식을 이뤄낼 수 있는 길인데, 여전히 시선은 차갑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안타깝다. 이러한 HIV 감염인을 바라보는 사회 시각도 변화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HIV 감염인 상담사업 등 관련 사업이나 정책이 잘 시행되고 있는 편에 속하지만 여전히 개선할 부분이 남아 있다. HIV 감염인의 요양병원 입원은 힘들다. 질병관리청에서 의료법 시행규칙을 바꾸더라도 위반 범칙금이 너무 적다 보니 차라리 벌금을 내고 HIV 감염인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HIV 감염인도 적극적으로 상담 및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미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러브포원에서도 감염내과 최신 치료 지견, 상담 간호사와 함께 하는 일상생활 속 고민 상담 등을 공유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심리상담을 지원하는 센터도 안내하고 있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해 줬음 좋겠다.
Q.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HIV 감염으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HIV는 더 이상 죽는 질환이 아니다. 꾸준히 치료만 잘 받으면 비감염인과 동일한 수명을 기대할 수 있다. 결혼뿐 아니라 아기도 낳고 행복하게 지내는 분들도 많다. 치료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상담치료도 적극 권장한다. 본인이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우울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우울 증상이 심각해질 때까지 아무런 도움을 못 받고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심적으로 힘들다면 반드시 상담 받길 바란다.
바이러스를 무서워하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진정 주의하고 신경 써야 할 건 바이러스지, 감염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코로나19를 경험하다 보니 HIV 감염인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일부 확진자는 주변으로부터 차별과 낙인을 겪었다. 이러한 차별과 낙인이 결코 코로나19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우리 모두 배웠다. HIV도 아직 완치제가 나오지 않았지만, 콘돔, HIV 노출 전 예방요법(PrEP), HIV 노출 후 예방요법(PEP) 등 예방할 수 있는 방법도 많고 진단 후 HIV 치료만 꾸준히 받으면 전파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의 차별과 낙인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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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은 감염병의 위험에 대한 큰 교훈을 남겼다. 코로나19가 등장하면서 한켠으로 밀려났지만 공중 보건을 오랜 동안 위협해 온 감염병이 있다. 바로 HIV다. 발견 초기만 해도 치료 방법이 없어 ‘죽음의 병’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제는 하루 한 알의 치료제로 관리할 수 있고 예방까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질환에 대한 낙인과 차별은 여전하다. 물론 검사를 회피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죽음의 그림자는 여전하고, 감염의 위험도 크다. 약업신문은 감염자에겐 올바른 관리법을 안내하고, 일반인에겐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HIV 특집을 6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주>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이하 HIV)는 치료제만 잘 복용하면 전파력이 ‘0’이 되지만, 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여전하다.
여러 나라의 사회문화적 가치를 조사하는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 WVS)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에이즈 이웃이 싫다’고 답한 비율은 92.9%에 이른다. 조사에는 참여한 64개국의 평균 비율이 38.4%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베트남에 이어 에이즈 이웃을 싫어하는 나라 2위에 올랐다.
에이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한 배경에는 ‘오해’와 ‘편견’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질병관리청과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2021년에 진행한 에이즈 관련 조사에서 ‘에이즈 환자와 음식을 같이 먹을 경우 에이즈에 감염될 수 있다’는 항목에서 오답을 말하거나 ‘모르겠다’고 답변한 비율은 39.6%나 된다. 에이즈의 원인체인 HIV는 식사를 같이 하거나 사우나를 같이 하는 등 일상적인 생활을 통해선 전파되지 않는다.
대규모 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에 따르면 적절한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ART)를 받아 바이러스가 미검출 수준이면 HIV의 전파는 불가능하다. 즉 치료만 꾸준히 받으면 타인에게 HIV를 전파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HIV에 감염되지 않은 비감염인 중 U=U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변한 비율은 16.6%에 불과하다.
러브포원(LOVE4ONE)에서 2022년에 실시한 HIV 감염인 대상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12개월 내 2주 이상 우울감을 호소한 감염인은 37.2%에 달할 만큼 감염인들의 심리적 압박 및 어려움은 크다.
약업닷컴은 20일 HIV 감염인 박광서(가명)씨를 직접 만나 HIV 감염 진단과 치료 과정, 나아가 낙인이나 차별로 인한 일상생활의 어려운 점들과 개선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한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서 최근 진행됐다.
Q. 처음 감염 사실을 알게 된 건 언제인가? 특별한 증상이 있었는지?
1994년 8월,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 응급실에서 검사하는 과정에서 HIV 감염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HIV 감염 전후 특별한 증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감염이 의심되는 시점에 약간의 몸살 기운이 있긴 했지만, 이러한 증상은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에 HIV 감염 여부를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Q. HIV 양성 진단을 받았을 때 당혹스럽고 불안했을 것 같은데, 당시 심정은 어떠했는지?
당시만해도 ‘에이즈에 걸리면 죽는다’라는 말이 많았고, HIV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었다. 또한 물어볼 곳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대체 언제 죽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가 더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 보건소에 연락했다. 요즘이야 HIV 관련 상담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전화해서 상담할 곳도 없었고 질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소통창구가 전혀 없었다.
겨우 연락이 닿은 응대자는 HIV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연락이 두절되면 격리시키겠다’ ‘감염 사실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해선 안 되고, 무덤에 갈 때까지 혼자 간직해야 한다’ 이런 말을 해 사람을 더 힘들고 불안하게 했다.
불안한 것을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Q. 현재 HIV 치료는 어떻게 받고 있는지?
치료 초기에는 3개월에 한 번씩 방문했고, 현재는 6개월 주기로 내원한다. 보통 진료일 15일 전 미리 혈액 검사를 받고 예약된 날에 진료받아 약을 처방받는다.
혈액 검사에선 바이러스나 CD4 세포 수치를 확인한다. 몇 달에 한 번씩 성병 검사나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에 대한 동반 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
Q. 치료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HIV 치료를 받는 감염내과 진료에선 어려운 점이 없다. 다만, 타과 진료를 받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과거 서울 한 병원에서 HIV 감염인 치과 치료 과정에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의자와 기구를 비닐로 덮고 진료를 했다는 기사가 난 적 있다. 본인 또한 같은 일을 경험했다.
치과에서 HIV 감염인임을 알게 된 후 진료일 변경을 요청했다. 사유를 물으니 의자에 씌울 비닐이 준비되지 않았다며 예약 일자 변경을 요구했다. 결국 처음 진료받았던 진료실이 아닌 창고 앞에서 따로 진료를 받게 됐다. 진료 도구에도 크게 ‘HIV’라고 써 있었다.
감염내과 협진으로 외과 수술을 받을 때도 의료진이 우주복과 같은 수술복을 입고 수술을 진행한 적 있다.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감염인을 대한 것이다.
질병관리청에서도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HIV’ 감염인 진료를 위한 의료기관 길라잡이’ 등의 지침을 배포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도 많고 개선할 부분도 많다고 생각한다.
Q. 사람들이 HIV에 대해 가장 크게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3가지다.
우선 ‘동성애자가 HIV 확산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HIV는 동성애, 이성애의 여부에 따라 나뉘는 것이 아니다. 성매개 감염병이기 때문에 동성애나 이성애와 관계없이 확산될 수 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처음으로 HIV를 동성애자 질환이라고 발표한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HIV 감염은 문란한 성생활 때문이라는 것’이다. 감염됐지만 감염 사실을 모르는 파트너로 인해 자신까지 감염됐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문란하게 놀았으면 HIV에 감염되냐’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이는 감염인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
마지막으로 ‘같이 식사하거나 술을 먹으면 HIV에 감염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과거에 한 술집에서 겪은 사례다. 지인과 술을 마시고 술집을 떠났는데, 다른 손님을 통해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들은 가게 사장이 고무장갑을 끼고 내가 사용했던 식기를 모두 버리고 락스로 테이블과 인근 바닥을 닦았다고 들었다. 당시 HIV 감염인 친구가 해당 가게의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장의 대처를 보고 차마 본인도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사례를 들자면, NGO 단체에서 마련한 ‘중학생 대상 HIV 인식 개선 교육’에 강사로 참여했을 적 일이다. 당시 교육을 담당하던 선생님이 내 식사만 따로 접시에 담아 준 적이 있다. 그 때 ‘HIV에 대한 강의를 하는 강사조차 HIV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 학생들에게 과연 올바른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오해는 타인에게만 받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에게서도 받을 수 있다. 감염 사실을 알게 된 후 ‘생활비를 지원해 줄 테니 나가 살라’라든가, ‘같이 살더라도 밥 그릇이나 수건을 따로 쓰자’라고 하는 경우가 흔하다. 보통 질환을 앓게 되면 가장 의지할 대상은 가족이다. 하지만 감염인들은 가족들에게조차 외면받고 있다.
실제 러브포원 연구 결과에서도 가족과 함께 지내는 HIV 감염인들의 우울감이 그렇지 않은 감염인들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를 잘 받고 있는 감염인이나 전파가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감염인이라도 본인 때문에 가족도 아프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해 자존감이 매우 낮아지는 경우가 많다.
Q. 현재 HIV 감염인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데, 힘든 점은 없는지?
상담을 해주는 사람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연달아 들려오면 많이 힘들다. 처음에는 빈소를 찾아가 조문하기도 했는데, 자살 소식이 너무 많이 들리다 보니 어느 순간 감당이 안되는 수준까지 도달했고, 전화벨이 울리는 것조차 겁났다.
HIV 감염인 자살 심각성에 대해 알게 됐고, 관련 인식 조사를 했다. 과거 대비 치료 기술이 발전해 HIV 감염인도 비감염인처럼 건강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자살과 우울증 유병률이 높은지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그 결과, 2020년 기준 HIV 감염인의 자살 시도율은 동일 연령 비감염인 대비 40배 정도 높았다. 어떠한 상황에서 자살을 생각할 만큼 힘이 드는지 물었더니, ‘HIV에 대한 혐오 발언을 마주했을 때’라고 답 하더라. 때론 맞서 싸우고 싶지만 자살하고 싶을 만큼 힘들다고들 했다.
어느 정도 결과와 이유는 예상했지만, 막상 직접 들어보니 상황은 심각했다. 또 다른 연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9명이 ‘내 이웃으로 HIV 감염인을 두고 싶지 않다’고 답변할 만큼 HIV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심각한 것을 알 수 있다.
Q. 사회, 검사, 치료환경에서 개선됐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식 개선’과 ‘차별 및 낙인 해소’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먼저 우리나라에는 아직 ‘U=U’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 현재 에이즈예방법 19조에 따르면,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 전파매개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 여러 임상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처럼, 꾸준한 치료를 통해 바이러스 미검출 수준을 유지하면 타인에게 HIV는 전파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행법에서 바이러스 미검출 여부를 판단하기보다는 HIV 감염인의 성행위와 콘돔 사용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법원에서 U=U를 100%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지난해 12월, 질병관리청은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U=U가 포함된 인식 개선 포스터를 제작했다. 성소수자가 많은 이태원이나 종로에 부착하는 것을 제안했는데, 아직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개념이 어려울수록 대중에게 더 많이, 자주 노출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HIV는 치료 기술의 발달로 이제 더 이상 죽는 병이 아니다. 하루 한 알을 통해 관리가 가능하다. 결국 숨어있는 HIV 감염인을 찾아내 꾸준히 치료받게 하는 것이 HIV 종식을 이뤄낼 수 있는 길인데, 여전히 시선은 차갑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안타깝다. 이러한 HIV 감염인을 바라보는 사회 시각도 변화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HIV 감염인 상담사업 등 관련 사업이나 정책이 잘 시행되고 있는 편에 속하지만 여전히 개선할 부분이 남아 있다. HIV 감염인의 요양병원 입원은 힘들다. 질병관리청에서 의료법 시행규칙을 바꾸더라도 위반 범칙금이 너무 적다 보니 차라리 벌금을 내고 HIV 감염인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HIV 감염인도 적극적으로 상담 및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미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러브포원에서도 감염내과 최신 치료 지견, 상담 간호사와 함께 하는 일상생활 속 고민 상담 등을 공유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심리상담을 지원하는 센터도 안내하고 있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해 줬음 좋겠다.
Q.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HIV 감염으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HIV는 더 이상 죽는 질환이 아니다. 꾸준히 치료만 잘 받으면 비감염인과 동일한 수명을 기대할 수 있다. 결혼뿐 아니라 아기도 낳고 행복하게 지내는 분들도 많다. 치료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상담치료도 적극 권장한다. 본인이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우울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우울 증상이 심각해질 때까지 아무런 도움을 못 받고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심적으로 힘들다면 반드시 상담 받길 바란다.
바이러스를 무서워하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진정 주의하고 신경 써야 할 건 바이러스지, 감염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코로나19를 경험하다 보니 HIV 감염인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일부 확진자는 주변으로부터 차별과 낙인을 겪었다. 이러한 차별과 낙인이 결코 코로나19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우리 모두 배웠다. HIV도 아직 완치제가 나오지 않았지만, 콘돔, HIV 노출 전 예방요법(PrEP), HIV 노출 후 예방요법(PEP) 등 예방할 수 있는 방법도 많고 진단 후 HIV 치료만 꾸준히 받으면 전파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의 차별과 낙인은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