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유전자가위로 '싹둑' 자르는 시대 올까?
면역 기능 일부 잘라내 췌장 내분비 세포 정상화 유도 'VCTX210' 임상 1상 순항
입력 2024.10.02 06:00 수정 2024.10.0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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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가위 기술이 당뇨병의 근본적 치료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DALL-E

당뇨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으로 유전자가위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이 기술은 자가면역 반응으로 인슐린을 생산하는 췌장의 베타 세포가 파괴되는 제1형 당뇨병과 인슐린 저항성 및 대사증후군으로 발병하는 제2형 당뇨병 모두에 적용할 수 있어, 당뇨병 문제를 해결할 열쇠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 1형과 2형 당뇨병은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는 상황이다. 1형 당뇨병 환자는 평생 인슐린을 투여해야 하며, 2형 당뇨병 환자도 혈당 강하제를 사용하다가 결국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미국 당뇨병협회(AD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에서만 당뇨병으로 인한 연간 총비용이 4129억 달러(약 546조8860억원)에 달하며, 이 중 3066억 달러(약 406조917억원)는 직접적인 의료비용, 1063억 달러(약 140조6880억원)는 간접비용으로 집계됐다. 당뇨병 환자는 의료비가 당뇨병이 없는 사람보다 평균 2.6배 더 높고, 인슐린 비용은 지난 10년 동안 3배 증가해 2022년 223억 달러(약 29조5140억원)에 도달했다. 이러한 높은 의료비 지출은 의료 시스템과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유전자가위를 활용한 새로운 치료법이 제시되면서 당뇨병 극복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CRISPR-Cas9(크리스퍼-캐스9) 등과 같은 유전자가위 기술은 유전자 서열을 정밀하게 절단하고 교정할 수 있는 혁신적인 유전자 편집 기술이다. 이 기술은 세포 내에서 특정 유전자의 활성화와 비활성화를 선택할 수 있어, 질병 유발 유전자 교정, 치료 등 응용성이 크다.

최근 2형 당뇨병 치료를 위해 유전자가위를 사용해 DPP-4(Dipeptidyl Peptidase-4)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함으로써 GLP-1(Glucagon-Like Peptide-1)의 분해를 막고,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키는 방법이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DPP-4효소는 인체 내에서 GLP-1과 같은 호르몬을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GLP-1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혈당을 조절하는 중요한 호르몬이지만, DPP-4에 의해 빠르게 분해돼 그 효과가 오래가지 않는다. 따라서 2형 당뇨병 치료에서는 GLP-1의 분해를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널리 사용되는 DPP-4 억제제는 GLP-1의 분해를 막아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키고 혈당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매일 복용해야 하며 간 손상 등 부작용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해 유전자 편집 기술은 DPP-4 유전자의 특정 서열을 인식하고 결합하도록 설계된 sgRNA를 통해 DNA를 절단, DPP-4 유전자의 발현을 차단한다. 궁극적으로 GLP-1의 분해 속도가 감소하고, 인슐린 분비가 촉진돼 혈당 조절이 개선된다.

현재까지 유전자 편집을 통해 직접 DNA를 절단하는 당뇨병 치료제가 임상시험에 진입한 사례는 없으나,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해 줄기세포 기반의 베타 세포 복구에 초점을 맞춘 치료제는 임상시험에 진입했다.

크리스퍼 테라퓨틱스(CRISPR Therapeutics)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1형 당뇨병 치료제 'VCTX210'을 개발하고 있다. 이 치료제는 현재 1형 당뇨병 치료제를 목표로 개발되고 있으나, 췌장 내분비 세포의 정상화를 유도하므로, 2형 당뇨병 치료제로도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크리스퍼 테라퓨틱스는 올해 초까지 공동연구를 진행한 버텍스 파마슈티컬(Vertex Pharmaceuticals)에 인수된 비아사이트(ViaCyte)와의 파트너십이 종료된 후, 독자적으로 VCTX210 개발을 이어오고 있다.

크리스퍼 테라퓨틱스는 비아사이트의 CyT49 인간 배아줄기세포주에서 유래한 췌장 내분비 세포(PEC-01)를 유전자 편집했다. 해당 세포의 면역 기능에 관여하는 HLA 클래스 1(Human Leukocyte Antigen Class 1) 단백질을 제거하고, 면역 세포를 억제하는 분자를 추가해 자가면역 시스템의 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즉, VCTX210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부분을 유전자가위로 '싹둑' 자른 것이다. 이를 통해 베타 세포들은 파괴되지 않고 췌장 내분비 세포로 분화해 인슐린을 자가적으로 분비할 수 있게 됐다.

비아사이트는 이러한 베타 세포를 'PEC-Direct™'라는 세포 보호 장치에 이식해 혈관과 직접 접촉하도록 하고, 세포가 필요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으면서 혈당 변화를 감지해 인슐린을 분비할 수 있게 제작했다. 크리스퍼 테라퓨틱스와 비아사이트는 유전자가위 기술과 줄기세포 기술을 융합해 기존 면역억제제가 있어야 하는 세포 이식 치료법의 한계를 극복해 냈다.

VCTX210의 임상 1상은 2022년 첫 환자 투여 후, 총 7명 환자에게 투여됐다. 현재 환자 투약이 완료돼 안전성, 내약성, 면역 회피(Immune evasion)에 대한 장기 추적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해당 임상의 결과는 빠르면 2025년 상반기 발표될 예정이다.

VCTX210이 초기 임상 단계임에도 주목받는 이유는 비아사이트가 앞서 진행한 당뇨병 타깃 줄기세포 치료제가 임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두 기업이 함께 진행한 VCTX210의 동물실험 결과에서도 가능성이 증명됐다.

밴쿠버 종합병원 당뇨병 센터장(Director of VCH's Vancouver General Hospital Diabetes Centre) 데이비드 톰프슨(David Thompson) 박사 연구팀은 비아사이트 기술이 적용된 배아줄기세포를 시험관에서 배양해 만든 베타 세포를 ‘임플란트(VC-02)’에 넣어 환자의 피부밑에 이식하는 치료법을 진행했다. 이 임상은 인슐린을 생산하지 못하는 1형 당뇨병 환자 10명을 대상으로 했다.

배아줄기세포를 시험관에서 배양해 만든 베타 세포를 넣은 ‘임플란트(VC-02)’.©ViaCyte

임상 결과, 6개월 후 대상자 3명에게서 자가 인슐린 생산이 크게 증가했고, 임상 종료 1년 후에도 정상적인 인슐린 생산이 유지됐다. 특히 대상자 중 1명에게선 목표 혈당 유지시간이 55%에서 85%로 증가했고, 일일 인슐린 투여량은 44% 감소했다. 이 연구결과는 영국 과학전문지 '네이처 생명공학(Nature Biotechnology)'에 2023년 11월 '캡슐화된 줄기세포 유래 베타 세포는 1형 당뇨병 환자의 혈당 조절에 영향을 미친다(Encapsulated stem cell?derived β cells exert glucose control in patients with type 1 diabetes).'라는 제목으로 발표됐다.

또한 비아사이트 앨런 D. 아굴닉(Alan D. Agulnick) 세포공학 부문 이사는 동물실험에서 유전자 편집된 VCTX210 세포가 면역 시스템에 의해 파괴되지 않고, 비편집 세포보다 생존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면역억제제 없이도 장기적으로 환자 체내에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비아사이트에 따르면 마우스 동물 모델에 VCTX210을 이식했을 때, 포도당 자극에 대한 인슐린 분비 반응이 비편집 세포와 유사하게 나타났다. 이식된 세포는 포도당 증가 시 인슐린을 분비해 혈당을 효과적으로 조절했다. 특히 VCTX210은 유전자 편집 기술의 한계로 지적되는 오프 타깃(Off-target, 부작용)이 관찰되지 않았고, 유전체 안정성도 모두 입증됐다. 향후 임상시험에서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제시된 것이다.

국내 유전자 편집 기술 기반 신약개발 기업 관계자는 “유전자 편집 기술은 아직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는 1형 및 2형 당뇨병을 정복할 수 있는 핵심 열쇠”라면서 “현재 관련 임상시험이 초기 단계나,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한 희귀유전자질환 치료제도 최근 FDA 승인을 획득함에 따라 유전자 편집 당뇨병 치료제도 머지않아 탄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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