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다른 나라서 태어났다면 치료받았을 것” 3억원 ‘럭스터나’ 급여 적용 힘든 이유는
망막질환, 시신경 질환 등 중증안과질환의 조기발견과 치료제의 접근성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이어졌다.17일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박주민, 서영석, 이수진 김윤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가 주관한 ‘중증안과질환 치료환경 개선 및 치료제 보험적용 요건 완화를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전문가와 환우들은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며 유병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녹내장, 황반변성, 당뇨망막병증 등 3대 실명질환관 중증 안과질환을 조기발견할 수 있는 안저검사에 대한 국가건강검진 포함, 혁신 신약의 급여 신속 등재 등을 촉구했다.서울대병원 윤창기 안과 교수는 국내 임상 중인 유전자 치료제가 많지만 치료제 도입 후 유전자 검사를 하면 치료시기가 늦어지고 치료 효과가 떨어지므로 유전자 검사를 통한 조기 발견과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윤창기 교수는 “경제활동이 활발한 나이에 대부분 실명에 도달하는 유전성 망막질환은 희귀질환이지만 매우 심각한 예후를 가지고 있다”며 “황반변성, 당뇨망막병증, 녹내장은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형 실명의 주된 원인이고, 이들 질환과 유전성 망막질환은 조기 개입 시 개선된 예후를 제공할 수 있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윤 교수에 따르면, 유전성 망막질환의 유전자 주입치료에 쓰이는 치료제 ‘럭스터나’는 야맹증에 대한 치료효과를 보여줬다. 3상 임상시험에서 21명에게 럭스터나를 투여한 후 1년 뒤 65%의 환자가 가장 어두운 조도에서도 저조도 미로탈출 시험 수행이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 전시야역치검사로 측정한 빛에 대한 민감도는 치료전과 비교해 약 100~350배 개선됐고, 이는 4년간 지속된 것으로 밝혀졌다는 설명이다.그러나 럭스터나의 보험급여 적용 기준이 까다로운 만큼 이의 치료혜택을 볼 수 있는 환자는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또 단안 3억여원, 본인부담 최대 800만원에 이르는 약값을 치료 후 장기 추적 관찰해 치료 효과를 판정해 약가를 지급하는 것도 치료제 사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고 전했다.또한 윤 교수는 대규모 유전자 검사 데이터베이스에서 발견된 RPE65 돌연변이 보인자의 비율로 추정한 유전성 망막질환의 숫자보다 국내에서 발견된 숫자가 크게 적었다며 아직 국내 미발견 환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특히 높은 비율로 보고되고 있는 레버선천흑암시가 많이 나타나는 어린이 환자가 없다는 점은 아직 미발견 증례가 많다는 강한 추정을 가능케 한다는 설명이다. 윤 교수는 현재 유전자 패널검사에서의 발견율은 50~60%이며 비용이 120만원 정도로 고가라면서 “1차 검사에서 발견되지 않은 경우 가족에게서 추가로 유전자 검사를 시행하고 전장유전체검사 등의 방법을 사용해야 하나, 이에 대한 보험적용 기준이 없으며 수백만원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고 국내 유전자 검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안저촬영을 통해 이들 실명질환의 경제적인 조기검진이 가능하므로 유전성 망막질환에서 유전자 검사의 접근을 쉽게 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고 말했다.또한 윤 교수는 “유전성 망막질환 환자는 유전자 검사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확대와 함께 진단 전문기관 육성, 공공 바이오인포매틱스 해석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며 “소득 수준이나 지역에 관계없이 검사 접근이 가능하도록 중앙-지역 연계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희귀질환 환자를 위한 정부 지원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중증 안과질환으로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하는 환우들의 간절함도 이어졌다.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는 환우 김상돈 씨는 자신의 투병사례를 공유하며 유전자 치료제 럭스터나 급여기준을 확대해줄 것을 촉구했다.김상돈 씨는 “지난해 럭스터나 국내 허가 소식을 듣고 병원을 3개월간 다니며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시력이 남아있다고 해서 치료를 받기로 결정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보험급여를 신청했다. 그러나 첫 신청에서 거절당했고, 이후 재차 이의심사도 거절 당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보험급여 적용 기준 때문”이라며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쯤 치료받았을 거다. 우리나라 환자들만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환자 입장에선 답답하고 원망스러울 뿐”이라고 울먹였다.김 씨가 언급한 럭스터나에 대한 국가별 보험급여 적용 기준을 확인한 결과, 현재 독일‧프랑스‧영국‧호주‧스코틀랜드의 경우 별도 제한이 없는 반면 우리나라는 적용 기준이 가장 까다로운 것으로 나타났다.미국‧캐나다‧이탈리아‧스위스는 △빛간선단층촬영 소견에서 후극부의 망막두께 >100㎛ △후극부 내 위축 또는 색소 변성이 없는 망막면적이 시신 경유두 면적의 3배 이상 존재 △시야가 중심 30도 이내에 남아있는 경우 중 하나에 해당해야 한다. 이 중 이탈리아‧스위스는 빛간섭단층촬영 소견에서 후극부의 망막 두께가 >100㎛에만 해당하면 급여가 적용된다. 한국은 이들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시신경척수염을 앓고 있는 박보람 씨 역시 럭스터나의 보험급여 기준을 확대해달라고 강조했다. 박보람 씨는 현재 국내의 급여 기준이 마치 사막 한 가운데에서 물병을 발견한 사람에게 졸도해 쓰러지면 물을 주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박 씨는 “새로운 치료제들은 다시 재발을 두 번이나 겪어야 급여가 적용된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재발’로도 일부 환자들은 실명이나 마비에 이를 수 있어 이는 너무나 극단적이고 치명적인 기준”이라며 “초기부터 질병을 관리할 수 있도록 급여기준의 수정이 절실하다”고 밝혔다.이에 대해 정부 측 패널들은 관련 기준을 재검토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치료 접근성을 높이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보건복지부 정혜은 건강증진과장은 2021년 황반변성에 대한 비용 효과성을 검토한 바 있으나, 당시 기준에는 미흡하다는 전문가 소견에 따라 국가건강검진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최근 건강검진항목의 추가 도입을 고민하고 있다며 검진 항목 도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혜은 과장은 “관련 학회들이 국내외 임상 결과와 역학자료 등 관련 데이터를 정부에 제시하고 검토를 요청한다면, 질병관리청 내 전문분과의 전문가 검토를 거치고 건강검진위원회를 통해 저희가 논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복지부 송양수 보험약제과장 역시 “중증 안과질환은 시력 상실 등 삶의 질에 직결되는 위험하고 비가역적인 손상이므로 조기 발견과 진단, 치료 접근성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급여 기준이 현장에서 필요한 수요에 못미치는 부분이 있다면 실제 데이터가 쌓이고 현장의 요청이 있을 경우 기준을 적극적으로 재검토하겠다. 중증도와 질환 특성을 반영해 급여기준을 보다 유연성있게 조정해 치료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심평원과 상의해보겠다”고 전했다.
이주영
2025.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