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송 (The cold song)
헨리 퍼셀의 오페라 <아서왕>을 빛낸 겨울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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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영국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헨리 퍼셀의 '콜드송 (The Cold Song)'을 처음 접한 건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출신의 가수 스팅이 부르는 현대적인 리메이크 버전이었다. 클래식에 일가견이 있고 평소에 바흐를 추앙해 왔던 팝가수 스팅다운 시도라는 생각과 함께 이 곡이 불러일으키는 '스산함'에 단번에 도취 된 바 있다.
이 노래는 특유의 모던한 바이브 덕분에 장르의 벽을 허물며 다양한 버전으로 리메이크 되었고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비롯한 다양한 헐리우드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이는 분명 바로크 시대와 현대를 관통하는 클래식의 시대적 초월성일 것이다. '콜드송'으로 잘 알려진 이 노래의 원제는 '무슨 힘으로 (What power art thou)'로 1691년에 완성된 퍼셀의 오페라 <아서왕>의 3막에 등장하는 아리아다.
아서왕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중세 시대의 전설 속 인물로 색슨족을 물리친 브리튼의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는 판타지적 인물로 중세 영웅서사의 큰 축이었고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가며 판타지 문학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아서왕의 서사에 등장하는 원탁의 기사나 카멜롯, 멀린 같은 단어들은 중세 기사문학에 대한 일가견이 없어도 누구나 한번은 접해봤을 터. 아서왕의 전설은 수 세기를 거쳐오며 다양한 문학적 소재로 활용되어 누구에게나 친숙한 편이다.
영국 바로크를 대표하는 작곡가 퍼셀의 세미 오페라 <아서왕>은 총 5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색슨족의 왕 오스왈드에게 납치된 약혼녀 에멀린 공주를 구하기 위해 브리튼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선 아서왕이 색슨족과 싸워 승리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세미 오페라는 연극적인 대사와 음악이 분리되어 조합된 형태의 오페라로서 영국의 왕정 복고시대에 유행했다.) 오페라의 내용 속에는 신화적 요소들이 다분하기 때문에 음악이 신비감을 더하는데 콜드송은 깊은 숲속을 배경으로 한 3막 2장에 등장한다. 사랑의 신 큐피드가 겨울의 정령, 콜드 지니어스를 잠에서 깨우는 과정에서 콜드 지니어스가 부르는 아리아 콜드송은 마지못해 잠에서 깨어나는 겨울의 정령이 추운 날씨 속에 늙고 지친 자신의 서러운 처지를 한탄하며 자신을 다시 잠들게 놔두라는 엄포성 가사를 담고 있다.
이 오래된 바로크 시대의 아리아가 현시대 아티스트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21세기 동시대 작품같은 '현대미'가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일단 절제된 현악 반주와 쳄발로 사운드 위에 선율미가 느껴지지 않는 음표들을 건조하게 나열하는 듯, 한음 한음 끊어 부르는 주 멜로디는 분명 미니멀리즘의 음악어법과 궤를 함께 하며 세밀하게 감지되는 불협화음 또한 현대미를 배가시킨다. 덧붙여 전형적인 바로크풍의 화성 진행을 뛰어넘는 독자적인 화성 전개는 지극히 미니멀한 노래에 긴장감을 더하며 곡의 캐릭터에 멋지게 일조한다.
콜드송은 베이스를 위한 아리아지만 존재감 있는 캐릭터로 폭넓은 인기를 구가하며 카운트 테너, 바리톤, 메조 소프라노 등 음역대에 구애받지 않고 널리 불려지고 있다.
3분 남짓한 곡이지만 한번 들으면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겨울의 음악이다. 가수 스팅의 대중적이면서도 아카데믹한 해석과 클래식 성악가들의 오리지널 바로크 버전을 비교해 보면서 들어보는 것도 감상의 묘미다.
*유튜브 링크
1. https://www.youtube.com/watch?v=TNbKx2x3a9U
2.https://www.youtube.com/watch?v=Q8K8wFk-tn8&list=RDQ8K8wFk-tn8&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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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