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참여형 뮤지컬의 정석,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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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머시브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이 재연으로 돌아왔다. 2021년 한국 초연 당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해 작품이 가진 매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없었던 아쉬움은 완전히 털어냈다. 그만큼 더 야심차게 준비했다는 이야기다.
레프 톨스토이의 명작 ‘전쟁과 평화’를 바탕에 두고 새롭게 창작한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방대한 분량 가운데 일부만을 발췌해 무대에 어울리는 옷을 입혀 만든 작품이다. 원작에는 러시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1812년 전쟁과 당시 각지에서 벌어진 전투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이뿐만 아니라 시대를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삶과 고뇌, 미래에 대한 좌절과 희망 등도 엿보인다. 그런 만큼 매우 복잡하고 어렵지만, 다양하게 그려낸 인간 군상과 그들의 심리 묘사를 토대로 각자 인생을 마주하는 자세를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뮤지컬은 피에르 베주호프와 볼콘스키 공작 가문 이야기를 중심으로 나타샤, 아나톨 등 이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와 심리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원제가 ‘나타샤, 피에르 & 1812년의 위대한 혜성(Natasha, Pierre & The Great Comet of 1812)’인 것을 보더라도 뮤지컬이 원작 중 어느 부분에 집중하고 있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다만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 러시아 소설로부터 출발한 작품인 만큼 등장인물의 이름과 관계를 빠르게 파악하기 쉽지 않아, 소설이나 드라마 등을 통해 ‘전쟁과 평화’를 먼저 접해본 적이 없는 관객이라면 ‘프롤로그’에 집중해야 한다. 물론 공연장 벽면에 비치된 인물관계도나 프로그램 북, 리플릿에 담긴 자료를 미리 챙겨봐 두는 것도 좋다.
배경은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으로 인해 여러모로 혼란스럽던 1812년 모스크바다. 러시아 백작의 서자로 태어난 피에르는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귀족이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아내이자 아나톨의 누이인 엘렌은 남편의 기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일상을 즐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 귀족 사회로부터 느낀 피로와 환멸, 삶에 대한 회의감으로 늘 술에 취해 권태롭게 살아가고 있던 피에르에게 순수함의 상징이던 나타샤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은 그가 무기력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머시브 공연답게 관객들을 작품 안에 끌어들이는 과정도 자연스럽다. 관객의 몰입을 높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이머시브 공연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모두 작품 안에 녹아들어 하나가 되게 한다. 그래서 날마다 다른 관객 성향이나 참여도에 따라 느낀 바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특히 ‘그레이트 코멧’은 무대 디자인부터 일반적인 뮤지컬과는 큰 차이를 두었다. 우선 가운데 둥근 원을 중심으로 상하좌우로 겹친 원의 형태를 한 무대 바닥을 넓게 설치했다. 각각의 원마다 높낮이를 다르게 하고 일부 좌석은 원안으로 삽입해 ‘코멧석’이라 불리는 특별석을 마련해 두었는데, 이 좌석은 일반 객석과 반대로 무대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색다른 관극 경험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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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진 역시 배우와 악기 연주자를 넘나들며 액터 뮤지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본 공연 시작 전 프리쇼가 펼쳐지는데, 이왕이면 여유롭게 공연장에 도착해 프리쇼를 충분히 즐겨보기를 추천한다. 배우들이 무대와 객석으로 하나둘씩 등장해 관객과 눈을 맞추며 말을 걸고,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어느새 작품 안에 깊숙이 빠져들게 되는 경험은 놀라우리만치 새롭고 수줍으면서도 재미있다. 이때 연주되는 간주곡은 마치 1812년 모스크바의 클럽 한복판을 연상케 한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순간은 여럿 있다. 배우의 손에 이끌린 관객은 사랑의 편지를 전달하는 매개 역할을 하거나, 정신이 온전치 못한 노인으로부터 청혼을 받는 등 극 중 상황을 현실로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작품은 실행 가능한 범위 안에서 관객 참여형 뮤지컬의 특성을 살려 끊임없이 소통하는 형태를 갖췄다.
또 ‘그레이트 코멧’은 팝, 일렉트로닉, 클래식, 록,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여타 뮤지컬에서 쉽게 만나보기 힘든 독보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끔 낯설게 느껴지는 구간도 있지만,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도구적 개념에서 무척 혁신적인 시도로 다가온다.
지난 3월 26일 서울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오는 6월 16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피에르 역에는 하도권, 케이윌, 김주택이, 나타샤 역은 이지수와 유연정, 박수빈이 맡는다. 또 나타샤의 마음을 사로잡은 탕아 아나톨 역으로는 고은성, 정택운, 셔누가 이름을 올렸으며, 소냐 역 효은, 김수연, 엘렌 역 전수미, 홍륜희도 함께한다. 이밖에 류수화, 주아(이상 마리아 D역), 윤지인(마리 역), 최호중, 심건우(돌로코프 역), 유효진(발라가 역), 오석원(안드레이, 볼콘스키 역) 등이 한층 더 뜨거워져 돌아온 ‘그레이트 코멧’을 완성한다. 예년보다 한층 더 뜨거운 계절이 머물 것으로 예상되는 올 상반기, 다시 찾은 일상에 넘치는 활기를 불어넣어 줄 작품을 꼭 한번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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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영 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 바 있다.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 왔고 현재 한국영상대학교 미디어보이스과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으며,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