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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이시 조의 미니멀리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윤성은 기자 news@yakup.co.kr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수정 최종수정 2024-01-04 14:29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돌아왔다은퇴를 두 번이나 번복한 셈이지만 그의 컴백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은 따뜻하다유례가 없을 정도로 언론 배급 시사회를 포함홍보가 없는 것이 홍보였는데도 사전 예매량이 30만 장에 달했고 개봉 첫 날만 25만 명이 영화를 관람했다그러나 개봉 며칠 만에 실관람객의 별점 평가는 곤두박질쳤다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난해하다는 후기가 많다요약하자면 엄마를 화재로 잃은 11살 소년 마히토가 새엄마와 함께 살게 된 아버지의 고향에서 비범한 왜가리의 안내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작들에서 보아왔던 독특한 캐릭터들과 판타지 설정은 그대로 살아있지만 톤 앤 매너가 완전히 다른 것이 문제다특유의 유머나 박진감 넘치는 모험담이 아니라 어둡고 우울한 정서가 흐른다제작기간도 정해놓지 않고 마음에 들 때까지 완성도를 높인 작화도 그 심리적 부대낌을 상쇄시키지는 못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포스터 

미니멀한 음악에 대해서도 의견은 갈린다미야자키 하야오와 오래 호흡을 맞췄고 불멸의 스코어도 많이 작곡했건만 히사이시 조가 이번 작품을 통해 들려주는 것은 화려한 선율이 아니라 악기와 음의 움직임을 극도로 단순화한 미니멀 음악이다즉 장식적인 악기나 음은 완전히 배제하고 애초에 사운드 이펙트와 함께 디자인된 음악이 주를 이루는데음악만 따로 들어 보면 작곡과 연주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집요할 정도로 세심하게 해당 장면에 맞춰 컨트롤 했음을 알 수 있다이러한 음악도 서사에 주석을 달아주지는 않는다그러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흐르는 요네즈 켄시의 ‘Spinning Globe’만큼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전적 이야기가 녹아 있는 이 애니메이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났어그날과 변함없는 다정한 얼굴로 지금도 어딘가 먼 곳에바람을 맞으며 달려 잔해 더미를 넘어이 길의 끝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어” 

평생 전쟁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았던 거장에게 애니메이션은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는지 모른다진짜 은퇴작으로서 해야만 될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그러나 앞 일은 알 수 없다몇 년 후 그의 신작이 개봉한다면우리는 또 기꺼이 티켓을 예매하지 않을까

 

윤성은의 Pick 무비

 정지영의 열정은 식지 않는다, ‘소년들

 

영화 소년들 포스터 

정지영이라는 이름이 한국영화계에서 갖는 의미는 크다. 1946년생인 그는 치정 스릴러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1983)로 데뷔한 후, 80년대 후반부터 사회성 짙은 드라마를 선보여왔다한국전쟁의 비극을 조명한 남부군’(1990), 베트남 참전 용사의 파괴된 내면과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하얀 전쟁’(1992), 영화에 미친 할리우드 키드의 지난한 일생을 그린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 만으로도 그의 필모그래피는 꽤 묵직하다그런 그의 21세기 첫 연출작, ‘부러진 화살’(2011)은 부당하게 검거된 한 교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법정드라마로, 2012년 1월 개봉 당시 많은 관객들의 공분을 사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부러진 화살의 성공은 청각장애학교의 폭력 실화를 담은 도가니’(2011)와 마찬가지로 영화가 진실을 규명하고 대중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일조할 수 있음을 보여준 하나의 현상으로 회자된다이후그는 군부독재정권의 폭력성을 고발한 남영동 1985’(2012), 론스타 게이트를 쉽게 풀어낸 블랙머니’(2019) 등 비슷한 결의 영화들을 선보여왔다모두 실화 기반의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다

그가 4년만에 내놓은 신작, ‘소년들은 부러진 화살과 가장 유사한 맥락에 있다누명을 쓰고 수감 생활을 했던 소년들이 뒤늦게나마 자신들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목소리를 낸다첫 사건은 1999년에 일어났고재심은 2016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영화는 17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데처음에는 다소 혼란스럽다배우들의 머리는 희끗해졌고 경찰서의 집기들도 바뀌었지만내부의 강압적인 분위기는 과거와 현재가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한 슈퍼에서 강도치사사건이 발생한다. 3인조 강도가 침입해 주인 할머니가 사망하고 현금과 금품을 갈취한 것이다사건 9일 만에 동네 소년 3인이 용의자로 검거되고 자백과 함께 수사는 종결된다그러나 이 때 강력반 수사반장으로 부임한 황준철’(설경구)은 한 제보전화를 계기로 재수사에 나선다어긋난 진술조작된 증거가 발견되자 준철은 수사를 바로잡으려 하지만 전북청 수사계장 최우성’(유준상)을 비롯한 책임자들이 그를 협박하고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피해자인 윤미숙’(진경마저 그를 외면하면서 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17년 후 형을 마친 세 명의 소년들이 변호사를 선임한 미숙의 설득으로 결백을 밝히려 하면서 수사는 다시 시작된다현재로 시점이 옮겨지면, ‘소년들은 용기에 관한 이야기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지나간 일이라고 해서 간과하지 않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용기가 이 사건에 관계된 모든 인물들에게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그 중에서도 개과천선하여 가족까지 꾸린 진범에게는 자신이 살인자임을 고백해야 하는 엄청난 결단이 필요하다영화는 딜레마에 서 있는 여러 인물들의 내면을 추적하면서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정지영 감독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 부재한 정의와 양심을 건드리면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이런 부당한 사건이 내 가족과 이웃에게 벌어질 수 있음을 보다 더 강조한다데뷔 40주년을 맞았지만 아직 그는 할 말이 많이 남은 듯하다영화에 대한 애정더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하는 변함 없는 열정에 갈채를 보낸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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