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바람에 차가운 기운이 실렸다. 거침없이 세를 키우던 초록도 기운이 쇠한다. 자연도 마감의 시간에 돌입한 듯하다.
여름 끝자락에 백중(百中)이 있다. 불가에서는 승려들의 여름 기도인 하안거(夏安居)가 끝나는 백중날을 전후로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올린다. 부처의 제자인 목련존자가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수행승들에게 공양을 올린 데서 유래하여, 해마다 음력 7월 15일이 되면 전국 사찰에서 일제히 치러진다. 유명을 달리한 모든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천도재(薦度齋)로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합동 제사라 할 수 있다.
백중은 마지막 김매기를 마치는 '호미씻이'의 날로 예로부터 농부들의 명절이기도 했다. 여름내 구슬땀을 흘리며 매진했던 생업을 잠시 내려두고 목전에 둔 수확의 계절을 자축하며 풍요로운 결실을 기원하는 날이었다. 여염에서는 돌아가신 부모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망자의 넋을 달래고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무하는 날이 백중이다.
추모 의식이 축제의 형태를 띠는 예는 오래된 기록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수서(隋書)』 「동이전」 」 고려조(高麗條)에는 ‘처음과 끝에는 슬피 울지만, 장례 때에는 북 치며 춤추고 음악을 연주하며 죽은 이를 보낸다’고 적고 있다. 조선 시대에도 상가(喪家)에서 노래판을 벌였다거나 풍악을 울렸다는 기록들이 남아있다.
현존하는 사례로는 상여놀음을 들 수 있다. 상여놀이, 빈상여놀이, 호상놀이라고도 하며, 지역에 따라 생여도듬, 손모듬, 대돋움, 대뜨리, 대울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무병장수하며 행복하게 살다 간 사람의 초상일 때 출상 전날 빈 상여를 메고 노는 놀이이다. 북이나 장구 등을 치며 집집마다 돌아다니기도 하고 상여꾼들이 상엿소리를 하며 마당을 돌기도 한다. 망자를 떠나보낸 이들을 위로하는 한편 상여꾼들이 서로 입과 발을 맞춰보는 예행연습을 겸한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진도의 다시래기도 일종의 상여놀음이다. 다른 지역과 달리 이야기가 담긴 가무악극의 형태를 띠며 아이를 낳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점이 흥미롭다.
상엿소리는 죽은 이를 이승에서 떠나보내며 마지막으로 부르는 노래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대목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상엿소리는 망자의 여한과 유족의 슬픔을 표현하는 것 외에 상여를 나르고 묘지 만드는 절차에서 일꾼들의 힘을 북돋우는 노동요로서도 기능한다. 일련의 과정들에서 이름을 따 행상소리, 영장소리, 달구소리, 회다지소리 등으로도 불린다. 상여꾼들이 메기는소리와 받는소리로 나누어 노래하는데 지역에 따라 메기는소리를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거나, 여성 상여꾼이 함께 참여하기도 한다.
상장례 문화가 바뀜에 따라 오늘날 상여 행렬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상두계를 조직해 마을에 초상이 나면 상여를 함께 옮기던 상여꾼들도 없고 대부분의 상엿소리 역시 시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공주와 부여 등에서는 지난해와 올해 시연 행사가 열렸고 지역의 장례 문화를 특화한 횡성회다지소리축제는 올해 35회를 맞이했다. 지난해 나온 「남도무형문화예술시리즈 12 상여소리」 음반에는 6~70년대 연구자들이 채록한 옛 상엿소리 음원 열일곱 곡이 담겨 있으며, 국악아카이브 사이트(archive.gugak.go.kr)에서 들어볼 수 있다. 한편 「황민왕의 비나리」 음반에 실린 ‘상여소리’는 고성오광대 제5과장의 상엿소리를 들소리 2집 음반 「너허넘차」에 실린 ‘너허넘차’와 ‘산정풍류’는 경기도 양주와 포천의 상엿소리를 바탕으로 만든 곡들이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잠시 붙잡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